김용균 시집 '경계를 경계하다' 출간
변호사 시인 김용균이 신작 시집 『경계를 경계하다』를 출간했다. 법조인으로는 드물다 싶게 벌써 다섯 번째 시집이다. 그동안 이해하기 쉽고 마음에 울림이 있는 시를 꾸준히 써 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더 편하게 읽을 수 있고, 더 뚜렷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시들을 선보인다. 시집에는 4부로 나뉘어 총 94편의 시들이 실려 있다.한 편 한 편 시들을 읽다 보면, 시인의 시선이 고희를 넘어선 연륜에 걸맞게 깊은 사유와 성찰을 통해 세상 구석구석에 닿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생로병사의 고통, 사랑과 이별, 고독, 욕망 등과 같은 인생사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비롯하여, 우리 주변에 가까운 여러 다양한 삶의 모습, 사회 현상이나 자연의 이치 등에 대한 잔잔하고 내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시들이 주종을 이룬다.표제시 「경계를 경계하다」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의 집 뜰안의 주목나무에 둥지를 튼 새가 화자(話者)가 되어, 집을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고 집주인을 자처하며 ‘등기만 하면 영원한 내 것이라 뻐기’고 사는 시인에게 집은 ‘잠시 깃을 들이고 머무는 곳’이지 ‘추호도 내 것이 아’니라고, 경계에 집착하지 말고 ‘경계 모르고 사는 자유’를 배우라고 일갈한다. ‘경계 짓는 데 이골 난’ 이기적인 인간의 ‘착각과 오만’을 꾸짖으며, 그 이기심의 징표인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하고 있는 것이다.시집의 맨 첫 장에 수록된 시 「한결같아야 존귀하다」도 그렇다. 덩굴식물들의 줄기가 일정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에서 시인은 ‘한결같음’이란 삶의 덕목을 떠올린다. ‘모진 가뭄에도, 비바람 몰아쳐도’ 언제나 왼쪽으로만 뻗는 인동초에게는 ‘스스로 존엄’함을, ‘가시수풀 속에서도, 벼랑에 붙어서도’ 어디서나 각기 좌우로 일정하게 뻗으며 ‘갈등(葛藤)’하는 칡과 등나무에게는 ‘서로를 존중’함을 찬미하면서, ‘시류 따라, 이해 따라’ ‘언제 어디서나’ 쉬이 길을 바꾸는 사람들만 ‘한결같아야 존귀하다는 것을’ 모른다고 질타한다.김용균 시인내친김에 짧은 시 한 편을 읽어 보자. “두 이름말을 합쳐/새로운 말을 만들 때/서로를 잇는,/그래서 새 말뜻으로/앞말이 뒷말을 고스란히 품게 되는/사이시옷.//나뭇가지, 시냇물, 어젯밤, 잔칫날, 고깃집, 쌈짓돈……//그러니까 거짓말은/하얀 것조차도 아예 말아라./오해받을라."(「사이시옷」 전문) 위 시 「사이시옷」은 단어와 단어를 잇는 ‘ㅅ’의 조어(造語) 기능에 주목한다. 그 문법 현상을 살피다가 ‘거짓말’의 'ㅅ'도 사이시옷으로, '거지의 말', '거지 같은 말'이라는 뜻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하얀 거짓말조차 삼가야겠다는 시인의 발상이 가벼운 웃음을 자아낸다.시인은 이번 시집에 12‧3 비상계엄 사태에 관한 20여 편의 시들도 쏟아놓았다. 난데없이 발령된 어이없는 계엄으로 인한 대통령 탄핵 재판과 관련자들에 대한 내란 형사재판을 거치면서 수많은 법률적 이슈들이 온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시인은 혼란스러운 계엄 사태를 겪으며 그 불법성에 대한 법조인으로서의 준엄한 비판과 아울러 법조인이기 때문에 갖는 실망과 자괴감을, 절제되고 때로는 격렬하기도 한, 시어들로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그런 사회참여적인 시들을 모아 놓은 제2부의 첫 시이다."스산한 바람 끝이 날카롭긴 해도/그런대로 별빛 창연하던 그날 밤에/메마른 나무들끼리 서로 어깨 겯고/그나마도 평화롭던 그 숲의 정적은//난데없는 용오름의 몹쓸 저주로/당장 가상현실이라도 닥친 듯/검은 눈의 폭설에 갇히고 말았느니//믿기지 않는 살풍경에 놀란 나무들이/두려움보다는 분노를 못 참고/분노보다는 허탈감에 힘겨웠으나//다행히 숲은 성채처럼 끄떡도 않고/어김없이 또 새날은 밝아오는가//그래도 으슥한 곳곳에 똬리를 틀고/눈먼 광기들이 검은 눈을 또 기다리지만/아무리 질긴 어둠이 발버둥친들/새벽빛 한 줄기를 어찌 이기겠는가"(「검은 눈의 서사(敍事)」 전문)여러 번에 걸친 계엄의 불행한 역사를 딛고 자유민주주의 질서가 어렵사리 정착된 이 나라에서 헌정 질서를 책임져야 할 최고 통치권자가 군을 동원하여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한 헌정 파괴 사태는 법조인인 시인의 눈에 더욱 부끄러운 장면으로 비쳤을 것이다. 시인은 그런 사태를 '가상현실'과도 같은 '검은 눈의 폭설'이 쏟아진 '그날 밤'으로 상정하면서, 그로 인한 혼돈 속의 '두려움'과 '분노'와 '허탈감', 그리고 그 '믿기지 않는 살풍경'에 '끄덕도 않고' 다시 '새날이 밝아'온다는 안도감과 그래도 '검은 눈을 또 기다리'는 '눈먼 광기들'의 '질긴 어둠'은 '새벽빛 한 줄기'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희망을 묘사하고 있다.시인은 평소 시작 외에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도 관심이 깊다. 간간이 독립운동과 관련한 시들을 즐겨 쓰는 이유일 것이다. 올해는 가장 기개 넘치는 독립운동가요, 저항과 구도의 시인으로 유명한 만해(萬海) 한용운 선생이 한국문학사 최대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하신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님의 침묵』의 탄생을 기리는 시인의 시「님의 침묵 속에서」가 특별한 의미로 마음에 다가온다. 만해 선생의 나라 사랑의 절절한 시혼(詩魂)이 면면이 오늘로 이어져, 분단되고 분열하는 이 나라 이 땅에 통일과 통합의 국혼(國魂)으로 승화하기를 바라는 기도시이리라./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백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