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인협회(회장 김수복)은 서울시‘민간국제문화교류’지원 사업으로 오는29일(수)부터11월1일(토)까지4일간 국내외 시인300여 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가하는‘서울,세계 시 엑스포2025’를 건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새천년관 우곡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다.이번 대회에는 세계13개국 시인과 번역가,국내 문인,서울 시민 등이 현장 무대와 화상(Zoom)으로 동참해 시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한다.개회식-시와 공연이 어우러진 축제개막식(29일 오후5시)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축사와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배우 박정자,박 지일의 시 퍼포먼스를 시작으로,동양과 서양의 시가 어우러지는 특별 공연이 펼쳐진다.호적풍류,해금산조,성악을 중심으로 전통과 현대,동서양의 조화를 이루는 축하 무대를 선보인다.이번 대회 취지인“시의 빛으로!시의 미래로!”를 형상화한 축하 영상과 시 낭송을 통해 한국 시문학이 지닌 세계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릴 예정이다.국제 페스타-시와 인간·평화·빛·미래30~31일에는‘서울,세계 시 엑스포2025’의 핵심 프로그램인 페스타가4개 장으로 진행된다.이 자리에서 각국 시인들은 시가 단순한 개인의 고백을 넘어 시대의 기억을 환기하고,공동체의 미래를 성찰하는 공적 장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일깨운다.각 페스타는 낭송과 퍼포먼스,주제발표,번역의 목소리를 아우르는 다층적 프로그램으로 구성 함으로써 국내외 시인과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축제를 만들 계획이다.첫 번째 페스타는‘시와 인간’이라는 주제로,인간 존재의 내밀한 풍경을 시적 언어로 비추며,언어가 어떻게 인간을 위로하고 변모시키는지를 탐구한다.두 번째 페스타는‘시와 평화’를 주제로 분열과 폭력의 시대에 시가 평화의 언어를 어떻게 생산할 수 있는지 모색하며,갈등과 대립을 넘어 공존의 담론을 열어가는 시의 길을 제시한다.세 번째 페스타는‘시의 빛으로’를 주제로,어둠 속에서 던지는 시의 빛을 조명하고,예술적 상상력이 구현하는‘빛의 언어’를 통해 공동체의 미래를 희망과 비전의 관점에서 재구성한다.네 번째 페스타는‘시의 미래로’라는 주제로,디지털 시대와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시가 열어갈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다음 세대의 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논의를 번역 문제와 함께 살펴본다.이들 페스타에서는 잭 마리나이(미국),팔 다니엘 레벤테(헝가리),응우옌 티히엔(베트남),사가와 아키(일본),김상호(한국·대만)등 해외 저명 시인과 국내 시인들이 주제발표와 자작시 낭송을 통해 시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모색하고 시의 보편적 가치와 다채로운 목소리를 공유한다.폐막식과 서울 문학기행31일(금)오후에는 참가자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서울 문학기행을 함께 즐기며 한국의 전통과 문화적 교감을 갖는다.이날 폐막식에서는 국내외 시인의 합동 낭송회와 축하 공연이 진행된다.on-offline해외 초청 시인‘서울,세계 시 엑스포2025’기념 서울시집『시의 낙원』연간사화집『빛의 안부』간행이번‘서울,세계 시 엑스포2025’를 기념하여 한국 대표 시인들이 서울의 문화와 공간을 시에 담은 서울 테마 시집『시의 낙원』과 특별기획으로 국내외 시인461명이‘인간’, ‘평화‘를 주제로 쓴 시를 모은 사화집『빛의 안부』가 출간됐다.특히 서울 테마 시집『시의 낙원』은 허영자 신달자 시인을 비롯한102명의 시인들이 한강,광화문,북한산,고궁 등을 시적 감수성으로 승화시킨 매우 흥미로운 시작품들로 꾸며졌다.연간 사화집『빛의 안부』는 매년 발간되는 작품집으로,이번에는 엑스포의 의미를 회원들의 시로 새긴 사화집이다.시의 날 기념식과 시민 참여11월1일(토)시의 날 기념식에서는‘시의 날 선언문’을 낭독하며,시인22명이 무대에 올라 자유 낭송을 펼친다.재능시낭송협회 시낭송가들은 김남조 시‘시인 만세’,유치환 시‘행복’을 합송하며 한국시의 저변확대와 시민 참여 등 이번 세계 시 엑스포의 정신을 드높인다.해외 시인·번역가와 함께하는 국제적 교류이번 대회에는 해외 시인들과 번역가들이 화상(Zoom)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참여한다.번역가들의 시 낭송,서울 명소를 배경으로 한 특별 시 낭송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대회의 의의김수복 한국시인협회장은“이번‘서울,세계 시 엑스포2025’는 시라는 인류의 보편 언어를 통해 경쟁과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와 공존의 세계를 열자는 데 그 의의가 있다”며“시와 언어가 국경을 넘어 세계를 하나로 잇고,서울이 세계문학의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뜻깊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대만에서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 육군 대장 척살에 나서 당시 일본에 큰 충격을 안긴 조명하(趙明河·1905∼928) 의사의 순국 97주기 추모식이 10일 대만 타이베이 한국학교에서 열렸다.지난 10여 년간 옛 타이베이 형무소 자리에서 조명하의사연구회 주도로 열렸던 추모 행사는 올해부터 타이베이 한인회가 타이베이 한국학교와 공동으로 거행한다. 오늘 학교 공식 행사가 끝나고 일부는 옛 형무소 자리를 찾아 추모했다. 조명하 의사 연구회장인 김상호 대만 슈핑과기대 학장과 타이베이 한국학교 박성대 교장과 교직원, 이수정 대만한인회장과 임원, 대만 중국문화대학 한국어문학과 최세훈 교수, 정수하 대만대 한국유학생회장, 그리고 한국학교 학생 등이 참석했다.특히 대만 한국학교 어린이들이 〈홀로 아리랑〉과 〈캐논 연주곡〉을 연주하며 조 의사 의거를 기렸다.김상호 학장은 의거 한 달 후인 6월 14일 최초 보도된 대만 총독부 기관지 대만일일신보의〈호외〉와 이어서 일본에서 출간된 〈구니노미야 폐하께서 겪으신 사건의 진상〉, 〈타이중 사건과 그 후〉의 번역본과 대만 중산(中山)대 박사를 수료한 길정준 선생이 최근 번역한 〈타이중 사건에 관한 군부의 입장의 건〉 등을 종합해 볼 때 “대만 총독부에서 발표한 내용에는 중요한 핵심 사항이 빠져 있다.보고서에는 흉기가 신변에 닿지 않았고, 범인은 단지 자동차에 접근했을 뿐이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 상황은 이와 다르다고 전해진다. 정말 그런가?” 당시 타이중 법원 이시바시 검사장의담화는 “이처럼 치밀하게 준비된 범행이 정말 단순한 생활고에서 비롯된 것일까?” 의거 직전 종이에 싼 모르핀을 삼켜 의거 후 16일까지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나서도 20일까지 단호하게 아무것도 자백하지 않은 점, 육군 차관이 대만 주둔군 참모장에게 보낸 보고서에는 의거 당일 타이중 주(州) 당국은 제복 38명, 사복 17명을 동원하여 연도 경계에 임했음에도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 경호 실패를 행정경찰에 책임을 미루는 것과 암호 전보를 보내자 일 왕실에서 전보 내용을 전파하라는 내용, 독검이 구니노미야의 어깨를 스치고 운전사의 척추 좌측에 꽂힌 후 셔츠에서 발견된 0.5cm의 혈흔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조명하 의사가 의거 전날인 13일 오후에도 구니노미야의 동선을 예의 주시하며 따라다닌 점, 조 의사의 소지품은 가재도구와 서적 10권이 있었던 점, “글씨를 잘 쓰는 편으로 보이나, 편지는 한 통도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취조관에게 "이 자리에서 당장 죽여달라"고 외친 점, 부귀원 대만인 동료들 취조에서 조 의사는 단 한 번도 외박을 하지 않았고, 극도로 착실한 생활을 했으며, 특히 신문에 보도된 구니노미야의 동선을 의거 이틀 전부터 주의 깊게 응시했다고 증언한 사실 등이 새롭게 드러났다고 했다.이수정 대만한인회장은 추모사에서 “오늘 조명하 의사 순국 97주기를 맞아 한인회와 타이베이 한국학교, 조명하의사연구회가 공동으로 이 뜻깊은 행사를 치르게 된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며, 다시 한번 대만 한인회를 중심으로 하나가 돼 그분의 업적을 기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박성대 교장은 “조 의사는 민족의 독립과 자존을 지키기 위해 단독으로 희생을 감수하셨다. 마침, 지난 8월 국가보훈부의 보조로 교내 조 의사 동상 주변 정화 작업을 마무리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에서 본교의 어린 학생들이 조 의사 살신성인의 정신에서 내 나라 내 조국의 소중함을 배우길 바란다.”최세훈 교수는 〈청년 조명하, 그 정신의 계승과 오늘의 의미〉란 주제로 특별 대담을 진행하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조 의사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다. 그 소중함을 깨닫고, 그들의 희생을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다면, 잊혀졌던 그 이름들은 다시 밝게 빛날 것이다.”끝으로 김 학장은 “조 의사의 의거는 당시 일제의 역사 왜곡과 자기 사람이 아니라고 억지로 외면했던 상해임시정부 요인들의 무관심으로 오늘날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라고 했다.조 의사는 1928년 5월 14일 09:55 삼엄한 경비를 뚫고 독을 바른 단도를 들고 타이중시 도심 도로에서 자동차를 타고 지나던 구니노미야 대장을 급습했다가 현장에서 체포돼 그해 10 월 10일 타이베이 형무소 사형장에서 스물셋 나이로 순국했다.
2025-10-10 18:08:57공동주최 :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한국잡지협회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언론진흥재단,협찬 : 플랜티 엠, 리딩톡톡2025 근현대잡지특별전 ‘작지만 빛나는 순간’의 개막식이 9월 25일 오후 3시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2층 전시실에서 있었다. 이 자리에는 공동주최측 내외빈들과 축하객들이 참석하여 이 작고 빛나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이 특별전에는 지난 126년 동안 만들어진 어린이청소년잡지 80여 종이 소개되어 있다.주최측은 ‘전시를 열며’에 ‘잡지는 우리 시대의 다채로운 이야기와 숨결을 담아온 특별한 매체입니다. 과거에는 격동하는 시대를 기록하고, 새로운 지식을 향한 열정을 품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꿈과 희망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잡지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시대를 반영하며 살아 숨 쉬었습니다. …… 이번 특별전은 시간을 품고 빛나온 잡지를 통해 우리 사회가 걸어온 발자취와 그 안에 담긴 생생한 목소리들을 만나보는 자리입니다.’라는 말로 이 전시의 취지를 밝혀두었다.잡지의 날 제정 6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수십 년간 어린이와 함께해 온 다양한 잡지들을 한자리에 모은 뜻깊은 자리가 만들어졌다. 어린이 잡지의 역사와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위해 잡지 특별전 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개막식은 개막 선언 및 내빈 소개, 인사말, 축사, 탭 커팅, 사진 촬영 및 전시 설명 순으로 약 50분간 진행되었다.한국잡지협회 백동민 회장은‘그동안60년 동안 이어진 잡지인의 헌신과 노력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 특별전을 개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이번 전시회를 통해 다시금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소망한다.이번 전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뿐만 아니라 그 현대 어린이와 청소년 가족 잡지를 중심으로 그 안에 담긴 정신과 문화를 되새기며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하는 교육과 체험의 장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백동민 한국잡지협회 회장박주옥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관장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박주옥 관장은 ‘1965년 11월 1일을 아마 잡지의 날로 지정한 걸로 알고 있고 그래서 올해가 잡지의 날 지정 60주년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 2018년도 쯤 한국잡 협회를 방문을 했었다. 그때 이미 잡지협회는 잡지박물관을 구축하고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한국잡지협회 임하람 큐레이터의 설명
2025-09-26 09:12:42안채 전경1928년에 건립된 신문리 고택은 전통 한옥 구조에 일본식과 서양식 건축 요소가 함께 반영된 독창적 형태의 개량한옥이다. 색유리 창호와 헤링본 마루는 영국 성공회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으며, 대규모 2층 다락은 당시 강화도의 인삼·직물 산업의 활기를 보여준다. 또한 출입문과 창호의 세련된 장식성은 근대 건축의 새로운 미감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특히, 1946년 11월 백범 김구 선생이 강화도를 방문해 신문리 고택에서 기념사진을 남긴 기록은 이 고택이 지역의 역사와 기억을 간직한 상징적 장소임을 보여준다.인천시 문화유산위원회는 신문리 고택은 전통과 근대가 조화를 이룬 건축미와 강화 산업·생활사의 흔적, 김구 선생의 방문 기록이라는 역사성을 품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등록문화유산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인정했다.이번 등록은 개발행위 규제가 최소화된 등록문화유산 제도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등록문화유산은 생활공간 활용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보존을 실현할 수 있어, 시민 불편을 줄이고 문화적 가치를 함께 지켜낼 수 있다.인천시는 등록문화유산 제도를 기반으로 시민 생활 속에서 체감할 수 있는 문화유산 행정을 꾸준히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강화 신문리 고택은 안채는 갤러리, 바깥채와 공장채는 카페·기념품 판매소·관광안내소 등으로 운영돼, 지역사회와 방문객이 함께 향유하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윤도영 시 문화체육국장은 “강화 신문리 고택은 인천의 한 세기를 담은 소중한 자산이자, 일상 속에서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라며, “앞으로도 근현대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을 적극 추진하고,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문화유산 정책을 통해 인천의 역사적 가치와 정체성을 널리 확산시키겠다”고 말했다.부엌건넛방 및 누마루부엌 위 다락색유리창호 및 헤링본 마루앞마당 우물바깥채 전경(배면)바깥채 전경(정면)바깥채 상량문공장채 전경공장채 내부김구 선생 방문 기념사진인천광역시 등록문화유산 등록 고시'근현대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제39조,「인천광역시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조례」제35조에따라 다음과 같이 인천광역시 등록문화유산 등록을고시합니다.2025년9월22일인천광역시장1. 고시명 : 인천광역시 등록문화유산 등록 고시2. 고시내용가. 등록대상 문화유산명칭수량규모건립연대소재지소유자강화 신문리 고택3동연면적 240.75㎡(각 지상1층)1928년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남문안길 7개인(김○○)나. 등록 사유○「강화 신문리 고택」은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8년 한옥, 일본식 및 서양식을 혼합하여 건축한 주택으로, 본 고택의 가장 큰 특징은➊큰 규모의 2층 다락(6칸의 상당한 크기로 인삼 및 소창[직물] 등을 말리고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어 당시 강화도의 인삼 및 직물 산업의 번성기를추정할 수 있음), ➋다락 외부에 설치된 난간(다락 창호와 함께 가옥 전체의 인상을 크고 화려하게 부각), ➌출입문 및 창문에 설치된 요철또는 에칭 처리된 색유리, ➍대청마루 및 누마루에 설치된 헤링본마루에 있음.○당시 강화도에 종교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 영국 성공회의 영향을받은 것으로 보이며, 당시 주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희소성 있는특징으로 현재까지도 원형 보존이 잘 되어 있음.○1946년 11월 백범(白凡) 김구 선생이 강화도 방문 시 신문리 고택을방문하여 지역 유력 인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것으로 보아 당시 강화를 대표하는 가옥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음○전통 한옥 구조에 서양식 마감재(색유리, 헤링본 마루)를 사용한 희소성, 큰 규모의 다락에 창호와 난간을 설치한 장식성 등 건축적으로 다른 개량한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 있으며, 백범김구 선생이 방문한 기록이 있는 역사성 등을 종합 고려 시 인천광역시 등록 문화유산으로 등록할 가치가 있음3. 등록일자 : 시보 고시일4. 기타 자세한 사항은 인천광역시 문화유산과(032-440-4034)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5-09-24 09:53:03박찬선 관장신현득 선생제75회 낙강시제 문학잔치,제4회 낙동강문학회 연구 발표회가 지난 10월 19일(일) 오후 2시부터 낙동강문학관에서 진행되었다. 이 문학잔치는한국문인협회 상주지부와 낙동강문학관이 주최하였으며 주제는 '낙동강과 김구용 시인'이었다. 사회는 상주문인협회 오정석 사무국장이 맡았다.주제발표가 시작되기 전 '페드라 솔리스트 앙상블'의 아름다운 이태리 가곡이 참석자들을 매료시키며 박수갈채와 연이은 앙콜을 주문받았다.인사말에서 박찬선 관장은 이번 발표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구용 시인은 우리 고장 모동면 수봉리에서 태어나서 1950년대 한국 시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대표적인 시인입니다. 이번에 선생의 삶과 문학, 시세계, 그리고 시사적 위치에 대한 이야기를 세 분께서 밝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선생의 작품이 굉장히 어려운 작품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오늘 이 발표를 통해 우리는 구용 선생의 세계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축사는 93세의 고령에도 행사에 참석한 아동문학가 신현득 선생이 맡았다. ‘상주라면 오늘 박찬선 선생이 계셔서 이 낙동강문학관을 이루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이네 내가 죽기 전에 가 봐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작년부터 했어요. 몸이 좀 불편했지만 이러다가 죽고 난 다음에 갈 수는 없으니까. 이번에는 가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아주 굳게 하고 왔습니다.’장종권 시인손현숙 시인고명철 문학평론가이어, 발표가 진행되었다. ‘김구용의 삶과 문학’이 장종권 시인(리토피아 주간)에 의해, ‘김구용의 시세계’가 손현숙 시인(한서대)에 의해, ‘김구용의 시사적 위치’가 고명철 문학평론가(광운대)에 의해 발표가 진행되었으며 말미에 열띤 토론도 있었다.이 자리에는 발표자들 외에도 신현득 선생, 김주완 박사, 김인숙 교수, 최기식 회장, 최홍덕 회장, 손학수 회장, 오세진 교장, 권정환 의원, 황인식 회장, 황태훈 회장, 김동수 상주문협 회장, 이승진 전상주문협 회장,김광희, 천경호, 조재석 원장, 함창호 회장,안장수 작가, 김광원 작가, 김설희 시인, 김다솜 시인, 조재학 시인, 이외현 시인, 정치산 시인, 최춘희 시인, 이은란 문학평론가 등 많은 분들이 자리를 메웠다.끝으로 2025년 '낙동강시문집' 출판기념회도 진행되어 김선희 시인의 빼어난 시낭송도 있어 박수를 받았다.식전 축하공연-'페도라 솔리스트 앙상블'2025년 낙동강시문집 발간 출판기념회, 시낭송-김선희 시인김구용 선생 코너신현득 선생, 박찬선 관장이승진 전상주문협 회장, 박찬선 관장, 신현득 선생, 김다솜 시인, 김동수 상주문협 회장김다솜 시인, 박찬선 관장, 조재학 시인, 김설희 시인, 김광원 작가낙동강문학관 뷰
2025-10-22 16:09:28깊어가는 가을,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원주가 생명과 문학의 향기로 물들고 있다. 제23회 원주생명문학제가 치악산 황장목길과 박경리문학공원을 중심으로 다채롭게 펼쳐지며, 시민과 문학 애호가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이번 문학제는 지난 8월 말부터 시작된 시화전으로 문을 열었다. 치악산 구룡사 황장목길을 따라 원주 문인의 시 63편과 외부 초청 문인의 시 42편, 총 105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웅장한 황장목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 아래, 시 한 편 한 편이 생명의 울림을 전한다. 시화전은 오는 11월 15일까지 계속된다.문학제의 본행사는 오는 10월 26일 박경리문학공원 5층에서 열린다. 이날 행사에는 아침편지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이 문학 강연자로 나선다. 고 이사장은 400만 독자에게 매일 ‘마음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아침편지를 보내며 문학을 통한 치유와 성찰의 메시지를 전해온 인물이다. 그의 강연은 문학의 본질과 생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나누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같은 날에는 제14회 원주생명문학상 시상식도 함께 진행된다. 지난 7월 18일부터 8월 31일까지 진행된 공모에는 전국 각지에서 작품이 접수되었으며최우수상은 최인숙씨의 시 「가을, 반계리 은행나무」가 수상했으며, 우수상에는 민병식 씨의 수필 「연못」과 김준애 씨의 시 「봄꽃의 계보」가 각각 선정됐다.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상금이 수여된다.문학제에 맞춰 발간된 『생명문학』 제23호에는 원주 문인들의 창작 열정이 담겼다. 고창영 (사)한국문인협회 원주지부 회장은 발간사에서 “문학은 삶의 거울이자 영혼의 나침반”이라며 “한 편 한 편의 글이 독자들의 마음속에 작은 씨앗을 심고, 희망과 위로의 꽃을 피우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2003년 ‘치악산생명문학축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원주생명문학제는 20여 년간 지역 문인들의 헌신과 시민들의 지지 속에 성장해왔다. 현재는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원주의 위상을 드높이는 대표 문학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학을 통해 생명의 가치를 되새기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원주생명문학제는 올해도 깊은 울림을 남기며 가을의 끝자락을 수놓고 있다.
2025-10-11 15:06:12행복릴레이 나눔동행 기부금품 전달식 (좌로부터 구립강서구직업재활센터 조기형 원장, (사)하…
2025-09-30 11:32:15-
스포츠건강 +2 한국 최초의 '사나이', 인도차이나 야구 아버지, 헐크 이만수백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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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1 “인생은 점을 뿌리는 일… 실패를 발판 삼아 꽃을 피우다”새롭게 시작한 황준수(黃俊秀)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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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행사 +4 제15회 김구용문학제 3월 29일(토) 오후 4시 '소극장 돌체'에서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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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진 홍학의 기억, 색의 비상 – 서경애 작가 부스 개인전박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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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김구용 시인과의 가상 인터뷰박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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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이소애 시집 '동동구리무' 출간(리토피아)고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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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8 제15회 김구용문학제 성황리에 마치고, 계간 리토피아 100호 발행 준비박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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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북-잡지 +1 2025년 1봄 리토피아(제97호) 전자북백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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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김복근 시조인의 단시조집 '천지삐까리' 발간고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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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뮤지컬 +1 서울오페라앙상블을 30년째 이끄는 장수동 예술감독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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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시노래 시노래운동 이끌며, 노래지도자 양성하는 시인 작곡가, 나유성 교수장종권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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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갤러리 대구·청도·영천 1박2일 나들이박종부
이재명 정권에서 부동산 대책이 상당히 파급을 몰고 왔다."집 장만하려는 꿈을 원척적으로 막는다." "부동산 테러다."역대정권 모두 부동산 대책에 골머리를 앓는다.어느 부동산 전문가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한다.과연 그럴까?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동산 대책은 원칙만 바로하면 분명 해소된다.1. 누구든지 한 채의 집을 갖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면 된다.2. 청년은 10년을 저축하여 일정한 대출을 얹으면 집을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이면 된다.위와 같은 전제로 대책을 마련하면 의외로 쉬운 문제이다.첫째 : 인구 30만 이상의 도시의 평균 주택가격을 15평 기준 2억이면 된다.연봉 5,000만원의 청년이 매년 20%를 저축하면 10년이면 1억원이 된다. 여기에 1억원의 대출을 얹어 집을 구입할 수 있으면 청년에게 내집 마련은 그 자체가 희망이다.둘째 : 세제(稅制)로 주택의 합당한 소유자를 만들어야 한다.이를 위해 일정 금액 이하의 주택을 한 채만 소유한 사람에 대하여는 보유세를 지금보다 더 낮추어 보유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 일정 금액을 초과하거나 2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보유세를 중과하여야 한다. 중과세를 내고도 견딜만큼의 부를 소유한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능력을 존중하여야 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소유한 주택을 매도하면 된다.실제 대한민국의 주택은 보급률이 100%를 넘고 있다. 그런데도 매번 주택은 모자란다. 지어도 지어도 실제 보급률은 늘지 않는다. 왜그럴까? 한사람이 50채, 100채 이상을 갖고 있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매번 위정자는 공급만이 부동산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이건 허구다. 공급을 아무리 하더라도 보급률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어차피 갭투자나 돈있는 사람이 점령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부동산 버블이 일어나면 무리한 빚을 내어 집 장만한 서민만 또 죽는다.그런데 왜 정부는 보유세 부과를 주저할까? 사실은 부동산 보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에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택 가격의 붕괴다. 2채 이상의 주택 소유자에게 보유세 중과는 어지간한 소유자에게는 견딜 수 없는 아니 견딜 이유가 없는 보유의 포기다. 이는 바로 주택시장의 가격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급격한 주택 가격의 붕괴는 오히려 사회의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 이게 진짜 이유이다. 대다수의 위정자와 부를 축적한 사람, 언론사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 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재산 가치가 날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부동산 대책이 어쩌니 하면서 떠들어댄다. 답은 다른 데에 있는데 애꿎은 공급 타령만 하며 국민의 판단을 호도하는 것이다. 보유세의 중과는 부동산 페러다임을 변화시킨다. 더이상 부동산으로 큰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위와 같이 대책은 매우 간단 명료하다. 물론 보완은 필요하다. 부득이 주택을 2채를 보유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다주택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다주택이 합당한지 심사기구를 거쳐 보유세 중과를 해소하면 한다. 또한 취득세, 양도소득세는 모두 지금보다 현저히 낮추어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토지거래 허가제 같은 경우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규정이 필요 없을 것이다.자, 이제 답은 나왔다. 여기에서 아직도 못마땅한 사람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말해보라. 본론이 명확하면 지론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따라서 부동산 대책은 명확하다.1. 청년이 10년 동안 년봉의 20% 저축을 한 자산과 적절한 대출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주택 가격을 형성해야 한다.2. 모든 국민이 한 채의 주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보유세를 낮추고 특정금액 이상의 주택 및 두 채 이상의 주택에 대해서는 보유세를 중과해야 한다.3. 취득세, 양도소득세는 지금보다 훨씬 낮추어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더이상 국민이 속아서는 안된다. 다수의 집을 갖지 못한 서민들은 부동산의 권력자 놀이에 속아서는 안된다. 이제는 선진 대한민국이 의식주의 틀에서 마지막 남은 주(住)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
2025-10-24 11:34:45필자가 지방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자취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자취생활이 공부에 지장이 많아 하숙생활도 했습니다. 집안이 하도 궁색하여 어려운 상황을 아는 형과 누나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필자의 쓸데없는 자존심은 아마도 이 시기에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창피함을 견디는 데에는 자존심만 한 것도 사실은 없었지요.집안이 산산조각이 나서 공중분해가 되었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같은 도시에서 자취생활을 하는 한 학년 위 옆동네 누나가 저를 많이 챙겨주었습니다. 시골 바로 옆동네에 살고 있어서 우리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기도 했지요. 한번은 저녁식사를 해 먹여 보내려고 저를 그녀의 자취방으로 불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좀 늦게 돌아왔습니다.이튿날 학교 쉬는 시간 복도를 어정거리는데 담임선생님 지나가시다가 한 말씀 툭 던지시더군요. 별 문제 없는 거지? 저는 그냥 무심히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며칠 후 그 누나가 다시 자취방에 찾아왔습니다. 학교에서 무슨 일 없었느냐, 묻더군요. 없다 했지요. 웃더라고요. 주인아저씨가 양쪽 학교에 모두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 귀가 후 지도를 부탁했겠지요.별 문제가 없었다는 제 대답은 거짓인가요, 참인가요.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주인아저씨의 생각은 참인가요. 거짓인가요.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사춘기였잖아요. 지금 그 누나는 필자의 처형이 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필자를 챙겨주었고 소중한 동생까지 묶어 주었습니다. 지금도 참 편하고 고마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참과 거짓은 필자도 지금의 처형도 판단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참’과 ‘거짓’은 본인들도 잘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참’과 ‘거짓’은 정체불명입니다. ‘참말’과 ‘거짓말’은 정체불명입니다. ‘거짓말’보다 ‘참말’의 실체를 아는 것이 정체 파악에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부터 사실은 ‘참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인간은 평등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말 정도가 ‘참말’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이 말부터가 ‘거짓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인간은 정말로 불평등하고 불공평합니다. 너무 불평등하다 보니까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요.그뿐이 아닙니다. 우리는 배웠습니다.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까지의 최단거리는 ‘직선’이라 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게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고 말합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던가요? 이것은 유치원생에게나 어울리는 사고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도 ‘답’이 없는 시대에 진입해 있습니다. 과거의 ‘답’에 무차별적인 ‘오류’가 있다고 판단이 되는 시대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배움’이라는 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한시적인 ‘상식’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참말’이란 무엇인가요.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요. 여러분이 ‘참말’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정말 ‘참말’이 맞는지 생각은 해보셨을까요. 분명 ‘참’은 어딘가에 존재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믿습니다. 그러니까 ‘참말’에 운명을 걸고 사는 거지요. 하지만 ‘참’이나 ‘참말’은 결코 쉽사리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당연히 ‘거짓’으로 그리고 ‘거짓말’로 위장한 채 우리 앞에 서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그 얼굴을 볼 수가 없는 것이 비슷한 ‘진실’이 아니었던가요?현대에 와서도 존재하는 북쪽의 김 씨 3대를 바라보면 왕족의 혈통이 기본적으로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권력이 있든 없든 지구상에는 지금도 왕이나 황제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발전된 민주주의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재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의 ‘부’를 자식들이 그대로 넘겨받는 일이 그저 자연스럽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방법을 찾아찾아 상속을 받으려 무진 애를 씁니다. 이런 ‘세습’의 문제는 옳다, 그르다 할 문제가 사실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도 막강한 주변의 저항에 부딪히면 당연히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는 있습니다. ‘삶’의 문제이고 ‘생사’의 문제인 것이지요.그런데 공평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든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지만 결국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은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 ‘참말’이 여기에 하나 존재하는 것을 보면 그 외에도 ‘참말’이 존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 ‘참말’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죽은 후에도 죽지 않는 법을 고안해 냈고, 열심히 살다 보면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거짓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만약에 이 ‘거짓말’이 옳다면 세상에 오로지 존재했던 ‘참말’은 이제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우리는 ‘거짓말’ 속에서 살다가 죽습니다. ‘참말’이라고 교육받고 ‘참말’이라고 세뇌를 받고는 있지만 엄밀히 들여다보면 죽음 외의 ‘참말’은 찾기가 힘이 들지도 모릅니다. ‘참말’의 이면에는 강자들의 논리나 기득권층의 논리나 선각자들의 논리로서의 핑계와 유혹과 현혹이 숨어있습니다. 잘 분석해보면 그 ‘참말’에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그 문제점을 찾아내어 새롭게 ‘거짓말’임을 증명하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증명 자체도 일종의 ‘거짓말’이거나 ‘거짓말’로서이겠지요.우리는 ‘참말’로 위장된 ‘거짓말’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쩌면 ‘거짓말’로 위장된 ‘참말’일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참’이 없다면 ‘거짓’도 당연히 없는 것이 아닐까요? 이 세계에 ‘참말’이 없다면 당연히 ‘거짓말’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거짓’과 ‘거짓말’이 존재하지 않는 ‘참’과 ‘참말’을 앞세워 힘없는 백성들을 겁박하는 도구로 쓰이지 않기를 바랍니다.이제 ’거짓말‘을 부정하고 사악한 것으로 몰아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실은 ’거짓말‘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따뜻하고 떳떳한 인간의 언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거짓말‘이야말로 진정한 시인들의 가슴이고 꿈이고 언어임을 인정해 보는 일도 필요해 보입니다.
2025-10-08 14:48:09현재 대공연장 2층 로비에서 연장 전시 중인 작품들1994년 4월 8일 개관한 인천문화예술회관은 개관 31주년을 맞는 2025년 4월 8일, 리모델링으로 오랫동안 문을 닫았던 전시장을 재개관하며 문화예술회관과 인천시립예술단을 중심으로 인천 공공예술의 변천사를 조명하는 ‘시간의 조각展’을 개막한 바 있다.인천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인천시립예술단은 이들이 출연한 공연들은 기록으로 남겨지지만 그들의 얼굴을 기록하는 일은 없었다. 장기근속자 또는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땀과 헌신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인천문화예술회관 30주년을 목표로 준비되었고 어느덧 5년의 시간이 지났다. 여기에 차곡차곡 기록해온 인천시립예술단원 30인의 얼굴들이 유려한 곡선을 타고 전시되어 있다.지난 최초 전시기간을 놓친 분들을 위해 전시장을 옮겨 전시 기간을 연장했다.이 작업은 ‘창꼬’ 스튜디오 대표이며, ‘문화사진관’ 대표이기도 한 인천문화예술회관과 아트센터 인천 소속 사진가 유창호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OBS 로드다큐 등과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기록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또한 ‘웅진섬에 반하다’, 사진집 ‘미아(迷兒) : 길을 찾다’, ‘강화남산마을 결과보고서’, ‘강화의 포구’,‘조기의섬에서, 꽃게의 섬으로’ 등 숱한 출판물을 낸 바 있으며, ‘더 키즈’, ‘시니어’, ‘옐로우’, ‘굿모닝 인천’ 등 다양한 간행물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끊임없는 작품활동을 벌이며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유창호 사진작가인천시립예술단원 30인의 명단이다.최연순(인천시립합창단) / 김미예(인천시립교향악단) / 유희목(인천시립교향악단) / 유경애(인천시립무용단) / 이성림(인천시립교향악단) / 김경희(인천시립교향악단) / 송성주(인천시립무용단) / 권준순(인천시립교향악단) / 김경효(인천시립교향악단) 정난희(인천시립교향악단) / 임종구(인천시립교향악단) / 김태서(인천시림교향악단) / 최공주(인천시립무용단) / 윤서정(인천시립무용단) / 김용란(인천시립극단) / 김혜진(인천시립무용단) / 서좌백(인천시립극단) / 이범우(인천시립극단) / 김세경(인천시립극단) / 김진석(인천시립합창단) / 홍진기(인천시립합창단) / 박상길(인천시립합창단) / 오모세(인천시립합창단) / 박한석(인천시립교향악단) / 차광영(인천시립극단) / 강병진(인천시립합창단) / 박천훈(인천시립교향악단) / 조윤경(인천시립극단) / 심영민(인천시립극단) / 강주희(인천시립극단)지난 4월 최초 전시 중인 작품들
테리톤 석상근“성악가 석상근, 그 이름에 담긴 진짜 이야기가 무대에 오른다.”음악을 넘어선 ‘사람의 노래’… 클래식과 대중의 경계를 허물다서울 압구정 장천홀에서 성악가 석상근(테리톤, Matteo Suk)의 단독 콘서트가 오는 10월 10일(금) 오후 7시 17분에 열린다. 단순한 음악회가 아닌, 삶의 고비마다 예술을 품은 한 인간의 진정성이 스며든 무대가 될 예정이다.고등학교 졸업 후 뒤늦게 성악을 시작한 석상근은 남들보다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피에트로 마스카니 국립음악원을 수석 졸업, 세계적인 국제 콩쿠르에서 7차례 그랑프리 1위를 거머쥐며 유럽 오페라계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그는 독일 뮌스터 시립극장의 전속 솔리스트로 입단, 유럽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리골레토, 아이다, 나부코 등 수십 편의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았다.그러나 그를 진정 ‘대한민국 대표 성악가’로 만든 것은 화려한 이력만이 아니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공연이 멈춘 시기, 그는 경기도 이천 물류센터에서 1톤 탑차 배송 설치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냉장고를 나르고, 안마의자를 옮기는 일을 하며 결코 예술의 끈을 놓지 않았다.“공연장이 사라진 대신, 삶이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 시간 동안 ‘진짜 삶의 무게’를 경험했고, 이제 그것을 노래로 다시 풀어낸다. 테너와 바리톤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폭넓은 음역, 클래식 오페라에서 대중가요까지 넘나드는 진정성이 묻어나는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푸치니의 ‘별은 빛나건만’, 레온카발로의 ‘의상을 입어라’ 등 오페라 대표 아리아 임재범의 ‘너를 위해’, ‘Fly me to the moon’ 등 크로스오버 무대 35인조 오케스트라, 국악, 재즈 콰르텟, 바리올리니스트 이서현 협연 그는 클래식과 대중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음악의 본질인 ‘공감’을 전달할 예정이다.특별히 석상근은 이번 공연을 통해 제자 김봉중 바리톤을 돕고자 한다.바리톤 김봉중이태리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던 중 갑자기 박테리아 감염으로 두눈을 실명하게 되면서 오른쪽 눈을 2번 수술했으나 나아지지 않았고 급히 한국으로 돌아가 나머지 왼쪽 눈을 수술했으나 결국 1급 시각장애 판정을 받게 된다. 한동안 노래를 할 수 없었던 그는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나 대한민국 제2회 DGB With-U 전국장애인 성악 콩쿨대회 대상과 2024년 대한민국 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 대상을 거머쥐었다.그는 말한다.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누군가의 노래가 힘이 되었듯, 이제 내가 희망과 용기를 주는 목소리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공연 수익 일부는 바리톤 김봉중 제자를 위한 지원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석상근은 또 김호중의 독일 유학 시절 성악을 지도한 인연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독거노인·장애인·복지관 등에서 지속적인 자선 공연과 봉사 활동도 이어오고 있으며, 클래식 인문학 강연 ‘석상근과 함께 떠나는 클래식 오페라 상식’을 비롯해 동요 앨범 ‘Memory’,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영상스토리 콘서트에 참여 하는 등, 그는 단순한 예술인을 넘어 시대를 노래하는 문화인이다.석상근은 말한다. “노래는 무대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울릴 때, 그게 진짜 음악입니다.” 그의 무대는 기술보다 감동이 먼저고, 화려함보다 진심이 앞선다. 석상근 바리톤과 가슴이 따뜻해지는 100분, 오는 10월10일 그 감동을 함께 나누길 기대해본다.석상근과 김호중
2025-09-18 08:24:07'THE SCENE' 공연 사진인천 밴드음악의 부활을 기원하는 프로젝트 콘서트 ‘THE SCENE 2025’가 오는 9월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은 인천을 비롯해 서울, 부산, 도쿄 등 4개 도시 밴드들이 참여해 각 지역 밴드 ‘음악 씬(Scene)’의 현재를 조명하고, 교류와 확장을 도모하는 자리다.이번 무대에서는 서로 다른 배경과 개성을 지닌 밴드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며,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조화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관객들은 각 도시를 대표하는 밴드들의 음악을 통해 지역 정서와 풍경을 담은 생생한 울림을 경험하게 될 예정이다.이번 공연은 9월 19일부터 27일까지 총 4일간 이어진다. 첫날인 19일에는 인천을 대표하는 밴드 메탈코어와 포스트 하드코어를 기반으로 묵직하면서도 감성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는 ‘Casually Connected’와 익스트림 메탈 무대를 대표하며 최근 싱글 ‘Rusty Ground’로 주목받은 진격이 무대에 올라 인천 밴드 음악의 저력을 선보인다.이어 20일에는 ‘일상에서 느낀 경험을 우리만의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주제 아래, 다채로운 음악을 들려주는 ‘IO’와 섬세한 감성으로 주목받는 부산 인디밴드 ‘Hathaw9y’가 관객을 만난다.셋째 날인 26일에는 희망적인 에너지로 사랑받는 인천 밴드 ‘Row Brothers’와 일본 로커빌리 무대를 대표하는 ‘The Biscats’가 출연해 각기 다른 매력을 전한다.마지막 날인 27일에는 팝 펑크와 얼터너티브 록을 결합한 개성 있는 사운드의 ‘13Children’, 그리고 시나위 출신 김바다를 중심으로 폭발적이면서도 섬세한 무대를 펼치는 ‘Kimbada’가 출연해 서울 밴드 무대의 다채로움을 보여줄 예정이다.인천문화예술회관은 “이번 무대는 인천, 서울, 부산, 도쿄의 음악 무대를 대표하는 밴드들을 소개한다”며 “각 도시의 역사와 정서를 바탕으로 성장한 밴드들의 음악을 통해, 관객들이 저마다의 기억과 열정을 나누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이번 콘서트 ‘THE SCENE 2025’는 9월 19일(금)~20일(토), 26일(금)~27일(토) 총 4일간 인천문화예술회관 복합문화공간에서 개최되며, 개별 공연은 전석 2만 원, 4회 공연 패키지는 5만 6천 원에 판매된다. 초등학생 이상 관람이 가능하며, 자세한 문의는 인천문화예술회관(032-420-2735)으로 하면 된다.인천 록 음악 씬(Scene)의 부활을 위한 프로젝트 콘서트<THE SCENE 2025>□ 일시 : 2025년 9월 19일(금)~20일(토), 26일(금)~27일(토)금 19:30, 토 18:00□ 장소 : 인천문화예술회관 복합문화공간□ 관 람 료 : 전석 2만원□ 관람연령 : 초등학생 이상□ 주최/주관 : 인천광역시/인천문화예술회관□ 문의 : 인천문화예술회관 032-420-2735□ 공연 상세 일정9. 19. Fri. 19:30DAY-1 인천Casually Connected(캐주얼리 커넥티드) × 진격9. 20. Sat. 18:00DAY-2 부산IO(아이오) × Hathaw9y(헤서웨이)9. 26. Fri. 19:30DAY-3 도쿄로우 브라더스(ROW BROTHERS)× THE BISCATS(JP)9. 27. Sat. 18:00DAY-4 서울13Children(서틴칠드런) × 김바다출연팀 중 '진격'
2025-09-08 13:31:37인천시립무용단이 한국-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0주년을 맞아 오는 9월 20일과 23일 각각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와 오클랜드에서 기념 공연을 선보인다.이번 공연은 국가 주요외교계기 기념 문화행사 공모에 선정된 사업으로, 인천시와 인천시립무용단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 속에 알리고 양국의 경제협력을 넘어 문화 교류와 상호 이해를 심화하는 뜻깊은 자리이다.이번 뉴질랜드 공연을 위해 인천시립무용단은 해외용 브랜드 작품인 <춤, 풍경>을 준비했다. 전통무용의 아름다움과 창작 춤의 세련된 감각을 더해 우리 춤의 정경을 선보이는 이 작품은 다년간 국제 외교 행사 및 해외 공연을 수행하며 작품성과 완성도 면에서 찬사를 받아온 작품이기도 하다.인천시립무용단은 다년간 이어진 외교부와의 협력사업을 통해 공공외교 동반관계를 강화해 왔으며, 이번 공연 역시 문화예술로 국가 외교의 교류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인천시립무용단 관계자는 “뉴질랜드는 마오리 하카 등 전통예술을 중요하게 여겨, 서로의 전통예술에 대한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이번 <춤, 풍경>에서 선보이는 강렬한 창작춤이 신과 자연, 인간의 삶이라는 주제 면에서 뉴질랜드 전통과 통하는 바가 있어 더욱 깊은 감동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한국의 문화를 다룬 콘텐츠를 통해 해외 관객들이 한국 전통예술의 양식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며, “이번 공연을 통해 양국 간 보다 깊은 문화적 이해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인천시립무용단<한국-뉴질랜드 FTA 10주년 기념 공연>□ 일시 : 2025년 9월 20일(토), 23일(화)□ 장소 :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및 오클랜드□ 문의 : 인천시립무용단 032-420-2788
2025-09-04 13:39:53Photo&Dica-Poem
창틀의 먼지를 털다가 생각한다.사람과의 긴 먼지 같던 시간들.누구는 만나면 술 먹고,누구는 만나면 얘기하고,누구는 만나면 산에 가고,그와는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이였음을,먼지로 쌓인 날들이라고 탁탁 털 일만은 아닌 것임을.누구는 만나면 밥을 묻고,누구는 만나면 강을 묻고,누구는 만나면 말이 멈추는,그와는 그것으로 가고 가면서 남아있음을,마음에 쌓인 사람과의 시간이 털면 털어질 기억인가를.창틀의 먼지를 털다가 눈이 아프다.그와의 먼지들이 풀풀 날린다.이성필2018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한밤의 넌픽션』, 『달이달다』. 전국계간지작품상, 아라작품상 수상. 막비시동인.
숨겨도 밤은 밤대로 품은 빛이 있었나.한낮의 빛발에 견줄 수는 없을지라도한밤중 거실서 쳐다보는 하늘, 푸르다.푸른 밤! 푸르스름이 나를 끌어 올린다.남태식2003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으로 『망상가들의 마을』 『상처를 만지다』 『돌이나 물이나 그런』 등
생각나서 그냥 연락하고픈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목적 없이도 연락을 해주는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시계도 전화도 귀해 첫눈 오는 날에역전 시계탑 앞에서 만나자던 약속.하얀 그리움은 어디에서 죽었나.하얀 날들이 가고 햇볕 뜨거운 날.들여다보는 핸드폰에 당신들의 이름.누르면 천만리라도 달려갈 번호들.생각 없이 술 한잔하자고 나의 생을쪼개 달라고 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이성필2018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한밤의 넌픽션』. 전국계간지작품상, 아라작품상 수상. 막비시동인.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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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면 소재 남천사에서 10월 15일, 숭고한 충절과 학덕을 기리는 추향제를 후손 및 지역 유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건하게 봉행했다.남천사는 김후진, 안의, 손홍록, 김만정 선생을 배향하고 있다. 김후진은 임진왜란 당시 전남 장성 남문 창의에 참여하고 군량미를 모아 고경명, 민여운 등의 의병 군진에 보냈다. 안의·손홍록은 전주 경기전에 있던 태조 어진과 조선왕조실록, 태조 어진 등을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겨 보존에 공헌하였다.제례는 초헌관 정읍시 교육지원청 최용훈 교육장, 아헌관 칠보면장 김숙, 종헌관 손홍록의 후손 손성만이 헌작하였다. 분향과 헌폐례를 시작으로, 초헌례, 축문 낭독,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망요례의 전통 예법에 따라 경건하게 진행되었다. 아헌관으로 여성인 김숙 칠보면장이 참여한 것이 이채로웠다.집례를 담당한 김운기는, 남천사 배향 인물들의 역사적 공헌이 크다. 그러나 관련 유적은 가장 낮은 등급인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에 머물러 있어 공적에 걸맞은 합당한 예우를 위해 유적 등급 상향이 필요하다. 또 ‘임진 창의 김후진 유허비’가 문화유산 비지정 상태여서 안타깝다고 했다.김승범 정읍시의회 의원,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 관장, 이선수 전북 무형문화재, 박영일 안의·손홍록 선양위원회 회장, 손주호 정읍 귀리 대표 등 참석자들 또한 국난 극복에 공헌한 역사적 인물들이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와 학계, 시민 등의 지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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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박유빈이 국악크로스오버 장르의 첫 정규앨범 [U]를 발표하며,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앨범은 지난 9월 16일 정오에 공개되었으며, 아이틀곡 아리랑과 함께신뱃노래,군밤타령,태평가,꽃타령, 쑥대머리, 사랑이어라 총 7곡이 수록됐다.이번 앨범은 단순히 전통음악을 현대적으로 편곡한 결과물이 아니라, 한 청년 소리꾼이 걸어온 국악크로스오버의 연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유빈은 판소리 전공자로서 ‘본질을 흐리지 않으려는 고집’과 ‘현대인의 귀에 닿고자 하는 열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왔다.박유빈의 정규앨범 [U]에는 ‘전통의 무게를 품은 현대의 소리’를 담고 있다. 마지막 트랙 ‘사랑이로구나’에서는 써니힐 출신 가수 은주가 피처링으로 참여해, 전통성과 대중성이 한데 어우러지는 독특한 감성을 완성했다.박유빈은 이번 앨범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국악이 낯설지 않도록, 동시에 국악 본연의 정신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하는 그 균형을 스스로 찾아내려 노력했다.한편, 앨범 발매를 기념해 오는 10월 26일(일) 오후 5시, 광명전통무형유산전수관 공연장에서 단독 공연을 연다. 이번 공연은 광명시와 광명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진행되며, 앨범의 곡들을 포함해 1시간 동안 라이브 콘서트 형태로 선보인다.해당 공연에는 감각적인 브랜드들이 함께한다. 향기 브랜드 ‘탐향(TAMHYANG)'과 전통 의류 브랜드 ‘하보(HABO)’가 각각 공연장의 향기와 의상, 장신구를 통해 무대에 감각적인 깊이를 더한다.박유빈은 “전통의 소리와 전통을 후각화한 향기, 그리고 세련된 전통의복이 어우러져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문화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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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의 젊은 나이. 창원사파초에서 시작된 그의 야구 인생은 서울을 거쳐, 태평양을 건너 미국과 멕시코까지 이어졌다. 김경주는 지금도 여전히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소개한다.강인규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김경주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27살 김경주입니다.한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고, 창원사파초—서울 중대초—이수중—신일고를 졸업했습니다. 현재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거주하며, 시즌 중에는 멕시코 LMB 리그에서 프로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시즌에는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며 지내고 있습니다. 선수로 뛰는 일만큼, 아이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제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강인규:한국에서 운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진로를 옮기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김경주:이수중 시절, 부모님과 함께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습니다.그곳에서 본 야구 환경은 충격이었어요. 자유롭고 열린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즐기면서도 열정적으로 운동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때부터 막연히 ‘언젠가 미국에서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죠.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라 방법을 몰랐고, 결국 한국에서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충암고에 진학했습니다.그곳에서 남인환 코치님(현 중앙고 감독님)을 만나며 처음으로 ‘야구 메커닉’이라는 개념을 배웠습니다. 단순히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몸의 작용과 과학적 원리를 설명해주셨던 첫 지도자였습니다. 그때 처음, 저 스스로 제 투구폼을 선택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코치진 아래에서 무리한 훈련을 반복하다가 어깨 부상(회전근개)을 입었습니다. 최고 구속 142km까지 던지며 MLB와 KBO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부상으로 모든 게 무너졌죠.그때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어서 매일 10시간씩 어깨 보강 운동을 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야구선수를 해야겠다는 꿈 하나로 버텼습니다. 결국 저에게 맞는 신일고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강혁 감독님의 섬세한 지도를 받아 다시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예전 같은 구속은 나오지 않았고, 현실의 벽이 높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국내 명문대의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지만, 마음속에서 다시 불타오르던 꿈이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가서 진짜 내가 원했던 야구를 해보는 꿈이었습니다.강인규:미국 진출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김경주:네 맞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텍사스 달라스에서 열린 Tryout Showcase에 참가했습니다. 그날 아시아인은 저 혼자였어요. 최고 구속은 86.8마일로 빠르진 않았지만, 제구와 변화구, 그리고 실전 피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D1을 포함해 여러 대학에서 제안이 왔지만, 영어와 토플이 가장 큰 벽이었습니다. 그때 정말 절망했죠.그러던 중 NCAA D3 리그의 Ozarks University 투수코치가 장학금을 제안했고, 토플 없이 입학할 수 있다는 말에 결심했습니다. 시골 학교였어요. 한국인도, 한식당도 없었죠. 처음 강의실에 들어갔을 땐 교수님 말씀이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매일 12시간씩 도서관에서 영어공부를 했는데도, 현실의 언어는 달랐습니다.하지만 야구부라는 공동체 속에서 점점 적응했고, 개인 튜터까지 붙여가며 끝까지 버텼습니다. 꾸준히 노력을 하다보니 영어가 조금씩 늘었습니다. 어느 순간 영어로 편하게 말하고 있는 자신이 신기하더라구요, 그 후 군복무를 위해 귀국했고, 독도경비대에서 복무했습니다. 사회와 분리되어있어서 힘들기도 하고 야구를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킨다는 뿌듯함과 대자연이 어우러진 독도에서의 시간은 저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미국 복귀를 준비했고, 전역 후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이전 코치님이 다른 대학 감독으로 옮기며 전액 장학금을 제안해 주셨고, 미국 아이오와의 Dordt University로 편입했습니다. 야구 명문은 아니었지만, 약속과 신뢰 하나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끝내 졸업까지 마쳤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강인규:졸업 이후의 길은 어땠나요?김경주:졸업 후 워싱턴의 독립리그에서 제안을 받았고, 동시에 여자친구(현재 아내)가 애틀란타로 이주하면서 함께 그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꿈꾸었던 돈을 받고 야구를 하는 야구선수가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스프링캠프를 거쳐 마무리 투수로 시즌을 치렀고, 43경기에서 45.1이닝, 방어율 1.59, 28세이브. ‘최고의 마무리상’과 ‘올스타 선정’이라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여태까지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는데,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얻은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그 후 에이전트를 만나 멕시코 LMB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화씨 110도의 무더위, 언어 장벽, 한식도 없는 낯선 환경이었지만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이겨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비록 멕시코에서는 시즌을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의 제 인생에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말 한국에서 미국, 미국에서 멕시코까지 왔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믿겨지지 않습니다. 힘들었지만 야구하는 순간만큼은 너무 행복했고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이 기쁨과 에너지를 여러분들에게 나눠드리고 싶습니다.강인규:한국야구와 미국야구를 경험하셨는데요. 혹시 두 나라의 야구가 어떤 차이가 있나요?김경주:가장 큰 차이는 ‘훈련 문화’입니다. 한국은 10시간 넘게 훈련하지만, 미국은 2~3시간이 전부입니다. 그 대신 이해 중심의 교육이 이뤄집니다. 한국이 주입식이라면, 미국은 토론식이에요.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선수 스스로 깨닫게 해줍니다.저는 그 차이를 지도할 때도 느낍니다. 무작정 “팔 올려!”가 아니라, 투구 메커니즘의 원리를 설명해줍니다. 아이들이 이해하면 오래 기억하거든요.예를 들어 투구에는 5단계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킥킹→2)스트라이트→3)얼리코킹→4)레이트 코킹→5)팔로스로우. 이 과정에서 팔꿈치가 어깨선보다 낮아지면 부상이 유발된다는 것을 원리로 설명해주죠. 아이들은 늘 질문을 던지고, 저는 그에 답하기 위해 더 공부합니다. 그게 진짜 지도자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강인규: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김경주:현재 미국에서 야구 아카데미 설립을 준비 중입니다. 단순히 야구를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한국의 선수들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의 고등학생 선수들은 재능도, 근성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환경이 좋지 않습니다. 그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싶어요. 야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더라도, 그 열정과 근성으로 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강인규: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김경주:가장 힘든 시기가 가장 성장하는 시기입니다. 저 역시 수없이 넘어지고 부상으로 무너졌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인생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기회를 줍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제가 그 증거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파이팅입니다.
스포츠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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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중인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 관장앤디 워홀 작품 앞 회원들가깝고도 먼 길 50m였다. 2025년 9월 30일 깊어 가는 가을날, ‘정읍예총 시창작반’ 회원들이 미술관으로 프롬나드했다. 9월 4일부터 12월 14일까지 정읍시립미술관 ‘개관10주년기념’ 특별기획전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금번 기획전시의 주제는 ‘RE:MUSE 삶 속의 초상’이다. 이날 특별 도슨트로 쏙쏙 스미는 해설을 한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 관장은, 예술가들에게 상상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술은 결국 상상력의 승부인 것 같다며 ‘그림과 상상력’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눈이 가는 한 작품을 집중해서 감상하는 게 좋다며, 앤디 워홀의 작품 ‘마릴린 먼로’와 POP ART에 대한 깨알 같은 설명을 이어갔다./그림설명 : 좌)앤디 워홀마릴린 먼로 mariyn monroe 91x91cm 실키스키린 피린트. 중앙)탐 웨슬만 리즈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lie 실키스키린 판화 151x145cm관람을 마친 시창작반 회원들은 미술관 1층에 있는 카페 까미나레에서 오래 여운을 즐겼다.이응노 나부 1939 종이에 수묵채색 37x28cm권옥연 인물 캔버스에 유채 96.3x63.3cm
문화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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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함박마을 문화축제’가 오는 10월 4일(토) 장미근린공원에서 개최된다.이번 행사는 2023년 고려인문화주권선포식 및 축제 지원 협약에 따라 추진되며, 고려인의 이주 역사를 기리고 지역 주민과 고려인 동포 간 화합을 다지는 대표 문화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려인은 1860년대 이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지로 이주해 정착한 한민족 후손을 의미하며, 현재 전 세계에 약 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특히 연수구 함박마을은 1990년대 이후 다수의 고려인 동포가 정착해 ‘고려인 마을’로 불린다. 현재는 다양한 국적과 세대가 공존하는 다문화 상징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이번 축제는 추석 연휴와 10월 5일 ‘세계한인의 날’을 기념해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준비됐다. 특히 러시아·중앙아시아 문화와 함께 어우러져 이국적이고 특색 있는 분위기를 선사한다.주요 프로그램으로는 ▲기념식 ▲마을주민과 함께하는 강강수월래 ▲고려인 어린이의 편지 낭독 ▲연수관악단 및 고려인 무용팀 공연 ▲태권도 시범과 러시아 레파토리 성악 공연 등이 펼쳐진다.또한 ▲고려인 동포 전통의상과 음식 체험, ▲이주역사 전시 ‘함박마을의 과거와 현재’ 등 다채로운 체험·전시 프로그램이 마련돼, 주민들과 고려인 동포가 함께 어우러지고,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 교류의 기회를 제공한다.지난해 열린 제1회 축제에는 1,000여 명이 참여해 지역민과 고려인 동포 간 따뜻한 연대감을 형성한 바 있다. 올해 제2회 축제는 그 성과를 바탕으로 규모와 프로그램이 한층 확대돼, 지역 문화 활성화와 사회 통합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윤도영 시 문화체육국장은 “함박마을 문화축제가 고려인 동포와 인천시민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며,“앞으로도 인천이 다문화 화합의 대표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화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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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나온 길에는 풀이 자란다.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풀이 자란다.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풀이 자란다.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게 풀이 자란다.내 발자국을 풀이 덮는다.내 기침소리를 풀이 덮는다.내가 지나간 길에는 풀이 자란다.내가 지나온 자리에는 풀이 자란다.나는 가고 가기만 할 뿐 무엇도 남지 않는다.종종 새들이 울 뿐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내 슬픔을 풀이 덮는다.내 사랑을 풀이 덮는다.이성필2018년《리토피아》로 등단.시집『한밤의 넌픽션』.전국계간지작품상,아라작품상 수상.막비시동인.
2025-10-15 09:25:12가수 임희숙 씨비가 내리는 가운데 경기도 오산시 세교샘너싱홈요양원에서 뜻깊고 의미있는 …
2025-09-25 07:46:57Sports&Health
27살의 젊은 나이. 창원사파초에서 시작된 그의 야구 인생은 서울을 거쳐, 태평양을 건너 미국과 멕시코까지 이어졌다. 김경주는 지금도 여전히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소개한다.강인규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김경주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27살 김경주입니다.한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고, 창원사파초—서울 중대초—이수중—신일고를 졸업했습니다. 현재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거주하며, 시즌 중에는 멕시코 LMB 리그에서 프로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시즌에는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며 지내고 있습니다. 선수로 뛰는 일만큼, 아이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제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강인규:한국에서 운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진로를 옮기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김경주:이수중 시절, 부모님과 함께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습니다.그곳에서 본 야구 환경은 충격이었어요. 자유롭고 열린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즐기면서도 열정적으로 운동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때부터 막연히 ‘언젠가 미국에서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죠.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라 방법을 몰랐고, 결국 한국에서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충암고에 진학했습니다.그곳에서 남인환 코치님(현 중앙고 감독님)을 만나며 처음으로 ‘야구 메커닉’이라는 개념을 배웠습니다. 단순히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몸의 작용과 과학적 원리를 설명해주셨던 첫 지도자였습니다. 그때 처음, 저 스스로 제 투구폼을 선택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코치진 아래에서 무리한 훈련을 반복하다가 어깨 부상(회전근개)을 입었습니다. 최고 구속 142km까지 던지며 MLB와 KBO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부상으로 모든 게 무너졌죠.그때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어서 매일 10시간씩 어깨 보강 운동을 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야구선수를 해야겠다는 꿈 하나로 버텼습니다. 결국 저에게 맞는 신일고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강혁 감독님의 섬세한 지도를 받아 다시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예전 같은 구속은 나오지 않았고, 현실의 벽이 높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국내 명문대의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지만, 마음속에서 다시 불타오르던 꿈이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가서 진짜 내가 원했던 야구를 해보는 꿈이었습니다.강인규:미국 진출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김경주:네 맞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텍사스 달라스에서 열린 Tryout Showcase에 참가했습니다. 그날 아시아인은 저 혼자였어요. 최고 구속은 86.8마일로 빠르진 않았지만, 제구와 변화구, 그리고 실전 피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D1을 포함해 여러 대학에서 제안이 왔지만, 영어와 토플이 가장 큰 벽이었습니다. 그때 정말 절망했죠.그러던 중 NCAA D3 리그의 Ozarks University 투수코치가 장학금을 제안했고, 토플 없이 입학할 수 있다는 말에 결심했습니다. 시골 학교였어요. 한국인도, 한식당도 없었죠. 처음 강의실에 들어갔을 땐 교수님 말씀이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매일 12시간씩 도서관에서 영어공부를 했는데도, 현실의 언어는 달랐습니다.하지만 야구부라는 공동체 속에서 점점 적응했고, 개인 튜터까지 붙여가며 끝까지 버텼습니다. 꾸준히 노력을 하다보니 영어가 조금씩 늘었습니다. 어느 순간 영어로 편하게 말하고 있는 자신이 신기하더라구요, 그 후 군복무를 위해 귀국했고, 독도경비대에서 복무했습니다. 사회와 분리되어있어서 힘들기도 하고 야구를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킨다는 뿌듯함과 대자연이 어우러진 독도에서의 시간은 저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미국 복귀를 준비했고, 전역 후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이전 코치님이 다른 대학 감독으로 옮기며 전액 장학금을 제안해 주셨고, 미국 아이오와의 Dordt University로 편입했습니다. 야구 명문은 아니었지만, 약속과 신뢰 하나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끝내 졸업까지 마쳤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강인규:졸업 이후의 길은 어땠나요?김경주:졸업 후 워싱턴의 독립리그에서 제안을 받았고, 동시에 여자친구(현재 아내)가 애틀란타로 이주하면서 함께 그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꿈꾸었던 돈을 받고 야구를 하는 야구선수가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스프링캠프를 거쳐 마무리 투수로 시즌을 치렀고, 43경기에서 45.1이닝, 방어율 1.59, 28세이브. ‘최고의 마무리상’과 ‘올스타 선정’이라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여태까지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는데,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얻은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그 후 에이전트를 만나 멕시코 LMB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화씨 110도의 무더위, 언어 장벽, 한식도 없는 낯선 환경이었지만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이겨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비록 멕시코에서는 시즌을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의 제 인생에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말 한국에서 미국, 미국에서 멕시코까지 왔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믿겨지지 않습니다. 힘들었지만 야구하는 순간만큼은 너무 행복했고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이 기쁨과 에너지를 여러분들에게 나눠드리고 싶습니다.강인규:한국야구와 미국야구를 경험하셨는데요. 혹시 두 나라의 야구가 어떤 차이가 있나요?김경주:가장 큰 차이는 ‘훈련 문화’입니다. 한국은 10시간 넘게 훈련하지만, 미국은 2~3시간이 전부입니다. 그 대신 이해 중심의 교육이 이뤄집니다. 한국이 주입식이라면, 미국은 토론식이에요.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선수 스스로 깨닫게 해줍니다.저는 그 차이를 지도할 때도 느낍니다. 무작정 “팔 올려!”가 아니라, 투구 메커니즘의 원리를 설명해줍니다. 아이들이 이해하면 오래 기억하거든요.예를 들어 투구에는 5단계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킥킹→2)스트라이트→3)얼리코킹→4)레이트 코킹→5)팔로스로우. 이 과정에서 팔꿈치가 어깨선보다 낮아지면 부상이 유발된다는 것을 원리로 설명해주죠. 아이들은 늘 질문을 던지고, 저는 그에 답하기 위해 더 공부합니다. 그게 진짜 지도자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강인규: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김경주:현재 미국에서 야구 아카데미 설립을 준비 중입니다. 단순히 야구를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한국의 선수들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의 고등학생 선수들은 재능도, 근성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환경이 좋지 않습니다. 그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싶어요. 야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더라도, 그 열정과 근성으로 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강인규: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김경주:가장 힘든 시기가 가장 성장하는 시기입니다. 저 역시 수없이 넘어지고 부상으로 무너졌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인생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기회를 줍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제가 그 증거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파이팅입니다.
2025-10-13 10:32:18강인규: 간단하게 본인 소개와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허준성: 저는 2000년생 허준성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길동초, 자양중, 배명고를 거치며 학창 시절 대부분을 운동과 함께 보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처음 시작했고, 고등학교 졸업까지 약 10년 동안 선수로 지냈습니다. 당시 제 하루는 거의 운동장에서 시작해 운동장에서 끝났죠.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중심이자 전부였습니다.강인규: 오랜 시간 한 가지에 몰입했던 경험은 어떤 영향을 줬나요?허준성: 돌이켜보면, 야구는 저를 다듬어준 시간이었어요. 매일 반복되는 훈련 속에서 체력만 단련된 게 아니라, 태도와 감정까지 정리되는 기분이었죠. 자기관리에 대한 감각, 팀 안에서의 역할, 또 책임에 대해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물론 그만큼 놓친 것도 있었어요. 한 방향으로만 달려오다 보니 세상에 대한 시야가 좁아졌고, 부상은 언제나 따라다녔죠. 하지만 그 시절의 몰입과 강박은 지금의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강인규: 결국 야구를 놓게 된 건 부상 때문이었겠죠?허준성: 네, 마음은 여전히 운동장에 있었지만, 몸이 점점 신호를 보내더라고요. 생각보다 조용하게 끝이 왔어요. 선수 생활을 접을 때는 마치 오랜 시간 쌓아온 세계가 무너지는 듯했죠. 그 시간을 공백으로 두기 싫었고, 그래서 다시 몸을 움직였습니다. 헬스를 시작하면서 다시 나를 만드는 시간을 갖게 됐고, 그것이 트레이너로 이어졌어요.강인규: 트레이너로 일하면서 어떤 경험들을 하셨나요?허준성: 처음엔 단순히 운동을 가르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한 사람의 운동과 생활 습관을 바꾼다는 건 신중하면서도 섬세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변화의 순간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스스로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을 보며, 그 여정 안에 제가 있다는 사실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반대로, 단기간의 결과만 바라는 분들과 마주할 때는 벽도 느꼈고요. 그럴 땐 이 일이 가진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강인규: 트레이너라는 길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요?허준성: 저는 몸을 쓰는 삶을 멈추고 싶지 않았어요. 야구를 하며 가장 크게 배운 건, 몸은 자신의 상태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라는 점이었어요. 잦은 부상과 재활, 수많은 진단과 통증을 겪으면서, 저의 몸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죠. 그 시간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몸을 이해하는 일을 평생의 방향으로 가져가야겠다고 느꼈고, 그 연장선에 트레이너라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근육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움직임과 기능, 심리, 더 나아가서 삶을 살아가는 의욕까지 함께 설계하는 일. 그래서 지금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 일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요.강인규: 미스터 인터내셔널 코리아 대회에 출전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트레이너에서 무대라는 전환은 꽤 큰 변화였을 것 같아요.허준성: 제 인생은 늘 운동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야구든 피트니스든,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고, 그 안에서 성취를 쌓아가는 일은 언제나 저를 살아있게 해줬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너무 한 가지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나 자신에게 질문이 생겼던 시기였죠. 그래서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운동이라는 기반을 가지고 보여지는 세계에 발을 들여보고 싶었고, 미스터 인터내셔널 코리아는 저에게 그 첫 문을 열어준 계기였습니다.강인규: 무대에 서보니, 어떤 점들이 가장 크게 다가왔나요?허준성: 무대는 분명 새로운 세계였어요. 좋았던 점은 단연 확신이 생겼다는 겁니다. 이 길이 나에게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이 경험이 분명 내 인생에 있어 하나의 발판이 될 거라는 확신이었죠. 하지만 동시에 쉽진 않았습니다. 저는 끼가 많은 성격도 아니었고, 사람들 앞에 서는 걸 편하게 여기는 스타일도 아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를 전면에 드러내야 하는 구조가 꽤 버겁기도 했습니다. 보여지는 걸 피하던 사람이, 그 무대의 한가운데에 선다는 건 큰 도전이었죠.강인규: 그 낯선 무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허준성: 결국엔 연습이더라고요. 어색함도, 부족함도 하나씩 반복하면서 익숙해졌습니다. 카메라 앞에서의 표정, 워킹, 포즈까지 하나하나 다듬으며 몸으로 익혔어요. 노력은 감춰지지만, 감각은 쌓인다는 걸 알게 됐죠. 익숙해지는 과정이 저를 바꿔줬고, 그 안에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어요.강인규: 그리고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셨죠. 그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시나요?허준성: 네, 아직도 또렷합니다. 제 인생에서 1등이라는 자리를 경험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마지막 무대, 제 이름이 불렸고, 가운데에 서 있었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기쁨이라고 하기엔 더 깊은 감정이었어요. 마치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무언가가 스르륵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무대를 내려오면서 생각했어요.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구나.'강인규: 대회 이후, 모델로서의 길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허준성: 사실 대회에 나섰을 때만 해도, 모델 활동까지 이어질 거라는 예측은 하지 못했어요. 단지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스스로를 밀어보는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특히 해외 모델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을 땐, 저 자신도 놀랐어요. 그 무대가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결과로 끝났겠지만, 저에게는 다음 문이 열리는 시작이었습니다.강인규: 이후 본격적으로 모델 활동을 시작하셨죠?허준성: 네, 현재는 국내외에서 모델 활동을 병행하며 기반을 다지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미스터 인터내셔널 코리아와 공식 계약을 맺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대 위에서 단순히 서 있는 것을 넘어서, 보여지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조금씩 체감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한국과 해외를 넘나들며 모델은 물론 배우 활동까지 폭을 넓혀보고 싶습니다. 단순히 한 가지 타이틀에 머무르기보다는, 여러 가지 꿈과 특기를 확장해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강인규: 이제 시작점에 선 느낌이시겠네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다짐을 들려주세요.허준성: 요즘은 무대에 설 때마다 확신이 조금씩 자라고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 런웨이 위에서, 사람들 앞에서 내가 가진 것을 꺼내 보여줄 수 있는 순간이 참 행복하더라고요. 앞으로 더 단단해지고 싶고, 더 많은 것들을 흡수하고 싶습니다.새로운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무대가 어디든 주저 없이 올라서 볼 생각이에요. 아직 보여드릴 게 많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묵묵히, 꾸준히, 그리고 진심으로 임하겠습니다.
2025-09-16 11:34:34강인규: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골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김다은: 안녕하세요. 국가대표 출신 KLPGA 프로골퍼 김다은입니다. 저는 골프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 모두 골프 레슨 프로였고,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연습장 분위기에 익숙해졌어요. 아버지와 함께 새벽부터 저녁까지 지방에서 훈련하며 지낸 시간이 제 골프의 초석이 되었죠. 그렇게 첫 시합부터 차근차근 목표를 이뤄나갔고, 국가대표 발탁, 프로테스트 단번 합격, 점프투어 우승으로 정회원 승격까지……. 어느새 KLPGA 정규투어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강인규: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김다은: 단연코 첫 우승 순간이요. 그날은 연장전이었고, 정말 많이 떨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연장 첫 홀에서 침착하게 버디를 잡았고, 바로 우승을 확정지었어요. 그때 부모님께서 너무 좋아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고생하셨던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보답한 느낌이었죠.강인규: 티칭 프로로 전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김다은: 부상은 없었지만, 솔직히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던 시기였습니다. 완전히 골프를 놓은 건 아니고, 투어와 레슨을 병행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레슨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그 과정에서 제 골프 인생에서 놓치고 있었던 부분들을 많이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내가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레슨 쪽으로 전향하게 되었습니다.강인규: 레슨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김다은: “기본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맞춤 레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리하게 남의 스윙을 따라 하기보다는, 각자의 몸에 맞는 시퀀스를 찾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단순히 스윙만 코칭하는 것이 아니라, 멘탈 관리와 습관까지 함께 코칭해서 골프를 오래도록 건강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게 돕고 싶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골프 스윙보다, 오랫동안 흔들리지 않는 골프가 훨씬 멋지다고 생각해요.강인규 : 현재 브랜드 활동도 함께 하고 계시죠?김다은 : 네, 현재 보이스캐디, 혼마골프 미디어 프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혼마 골프채는 완성도와 안정감이 정말 뛰어나고, 프리미엄 브랜드답게 초보자부터 시니어까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장비들이에요. SNS뿐 아니라 실제 제 레슨을 받는 분들께도 자신 있게 추천드리고 있습니다.강인규 : 요즘 어떤 곳에서 레슨을 하고 계신가요?김다은 : 지금은 여의도 파워유 골프아카데미에서 수석 프로로 활동 중입니다. 200평대 규모의 프라이빗 연습장에서 프리미엄 레슨을 진행하고 있고, 골프 인플루언서로서 많은 골퍼들과 소통하는 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레슨을 통해 만나는 분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요즘 저의 큰 즐거움입니다.강인규: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김다은: 우선, 더 많은 분들이 골프의 매력을 알고 오래도록 즐기실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저만의 아카데미를 만들어 저의 철학과 경험을 온전히 담아낸 교육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골프를 통해 삶이 변화하는 분들을 만나는 일이 저에게는 가장 큰 보람이에요.강인규: 마지막으로, 이제 막 골프를 시작하는 초보자(골린이)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김다은: 요즘 많은 분들이 골프를 접하고 있는데, 사실 골프는 시간 투자가 많은 스포츠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효율이 낮아 보일 수도 있고, 성과가 더디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가장 중요한 건 기본기입니다.처음엔 공만 맞히는 데 집중하지만, 그게 반복되다 보면 잘못된 습관이 굳어져 나중에는 교정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시간을 들이더라도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제가 겪어보니, 처음에 어떻게 배우느냐가 그 사람의 골프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더라고요. 골프를 시작하신 모든 분들이 조급함보다는 즐거움을 느끼며 자신의 속도대로 꾸준히 걸어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2025-09-15 10:31:22'인형계'는 인형을 마치 자식처럼 아끼며, 인형에게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돌보는 놀이를 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콘텐츠 창작자의 유형 또는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한다.'인형계'는 인형에게 밀가루 등으로 음식 모형을 만들어 먹이고, 이를 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해외에서는 'Plush Parent'라고도 불린다.인형에게 이유식이나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이는 장면이 주로 등장하며, 식판이나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이는 등 실제 육아를 연상시키는 연출이 많다.2020년대에 잠시 유행했다가 2024년 이후 다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주로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인형계'는 인형놀이의 한 형태로, 실제 육아를 모방하거나 인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표현하는 놀이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전문 '네이버 AI 브리핑' 인용초등학생들 사이의 ‘인형계’ 놀이는 단순히 인형을 가지고 노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 놀이는 인형을 실제 인격체처럼 돌보고 상황극을 펼치는 새로운 놀이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인형에게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다양한 과정을 연출하며 적절한 소품과 배경을 활용하기도 한다.부모들은 집안 전체가 소품장이나 작업장으로 변하여 불편하기도 하고, 학교공부보다 더 열심인 아이들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창의적인 놀이라는 데에는 별로 이견이 없어 보인다.‘인형계’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인형과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책임감과 감정 표현이 가능해지며, 창의적인 놀이를 통해 온갖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세상의 변화에서 기인하는 또래문화라는 소속감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5-10-08 11:05:05AI 단편 영화 ‘COZI’ 포스터(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2025년 5월 23일 -- 한…
2025-05-23 18:10:08글 고나연 기자2008년 10월 ‘리토피아’(주간 장종권)와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공…
2025-03-15 14:2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