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덕의 길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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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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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상사화

      선운사 골짜기로 상사화 만나러 갔습니다. 사람들 몇 출입을 막은 줄을 넘어가 가는 꽃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찰칵찰칵, 아직 마음 붉다며 화양연화를 증명하려는 듯했습니다. 다짐하듯 관리사무소에 확인까지 했건만, 아뿔싸 작년처…

안개꽃과 페이지 터너와

    가을 길목에 맨드라미가 피었습니다. 영락없는 수탉의 볏입니다. ‘화무십일홍’이란 말 무색하게 화단이 오래 붉네요. 한나절 꿈꾸는 맨드라미 뒤편에 병풍처럼 호박 덩굴이 들러리 섰습니다. 앞에는 일일초가 분홍 분홍거립니다. 한 폭 완성입니다. …

모정(茅亭), 세월

        띠 茅 자 모정(茅亭)입니다. 기와 올린 정자(亭子)와 달리 지붕이 띠나 볏짚이었지요. 사대부들의 풍광 좋은 풍류 터 말고, 마을 어귀 여름 사랑방이었지요. 주민 수와 뒷산에 자라는 나무에 따라 크기…

분수

    악을 씁니다. 느티나무 그늘 속 매미 울음이 한낮 땡볕보다 더 뜨겁습니다. 누가 그 입 속에 불땀 좋다는 보릿대 불을 지핀 걸까요 콩잎처럼 시든 삼복, 바닥 난 기력 돋우려 양은솥 걸고 무얼 구워삶고 있는 걸까요 저 녀석 세상이 제 맘에 안…

삼기 가는 길

     “지중해 연안 스페인 마요르카는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도망치듯 파리를 떠나온 쇼팽과 상드, 먼저 도착한 소문으로 거처를 구하기도 힘이 들었다지요. 피아노조차 세관에 묶여버리고,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한 건 세상의 시선과 냉대였다…

참새와 달팽이

    깜박 우산을 잊고 나왔습니다. 그냥 젖기로 합니다. 새벽까지 사납던 꿈자리 탓일까요 오늘따라 시오리 산책길이 아득합니다. 오락가락 사나흘 빗줄기, 징검다리가 넘칩니다. 콩 콩 건너던 길을 건널 수 없습니다. 멀더라도 저 아래쪽 다리로 돌아가…

장마

       매실 익는 시절에 내려 매우(梅雨)라고도 하지요. 해마다 6월 하순에 시작해서 한 달쯤 비는 계속되지요. 덥고 습한 북태평양 기단과 차고 습한 오호츠크해 기단이 서로 밀고 밀리기 때문이랍니다.   어인…

내 마음의 꽃밭

       농경 시대의 유전자였습니다. 보릿고개 설움이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땅만 보여도 고추, 상추, 오이, 가지, 파를 심었지요. 푸릇푸릇 생각만으로도 향기로웠지요. 골목을 오가는 이웃도 배가 불렀고요. 품이라도 팔아먹…

앤드 크레딧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가 시초지요. 숏(shot)이 신(scene)이 되고 신이 시퀀스(sequence)가 되고 시퀀스가 모여 한 편 영화가 됩니다. 현실의 극히 제한된 주인공 때문에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

눈을 막고 귀를 뜨고

    깍깍 깍 미루나무 우둠지 까치네요. 포르릉, 놀란 참새가 날아갑니다. 개개비는 마른 갈 숲에 내려 팥알보다 작은 심장을 할딱거립니다. 징검돌 틈을 빠져나가는 냇물, 있으나 없었습니다. 가끔 물멍이나 하던 삼천 변에 앉습니다. 한나절 눈을 막…

전설 1

- 복사꽃 피던 마을

     “복사꽃이 진다”는 말을 “아니 복숭아꽃이 벌써 져”라고 받더군요.    먼 산에 산벚꽃이 꼭, 탁탁 분첩으로 두드리던 사촌 누님의 얼굴인 듯 뽀얗네요. 산벚꽃 피자 복사꽃이 집니다. 저기 저 마을 개울에도 …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디다

      계절은 두부모처럼 뚜렷하지 않지요. 어제 날린 눈발에도 오늘은 정녕 봄입니다. “정원의 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났으니 뒤따라 앵두, 살구, 복사꽃이 차례로 피어”나겠지요. 그래요, 당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이 춘풍(春風)에…

귀로 듣는 향기

    화엄사 각황전 모퉁이가 붉다 못해 검네요. 매화는 설중매(雪中梅)와 납월매(臘月梅)를 꼽는다지요. 무심한 듯 가지 끝에 몇 송이 피웠다 사그라들어 다시 또 피워 올리는, 눈 속에 피고 싯다르타가 깨달음 얻은 섣달에 피는 꽃이 으뜸이라지요. …

한 톨 먼지

      보이저 1호는 1977년에 발사했습니다. 목성·토성 관측 탐사를 마치고 2012년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우주로 날아가고 있지요. 2030년쯤 지구와 통신 두절 된다지만, 멈추지 않고 더 먼 우주로 날아갈 것입니다. NASA 천…

수선화

      어둠을 뚫었습니다. 송곳도 아닌 여리디여린 손가락입니다. 수선화 새 촉이 언 땅을 열고 세상에 나온 것은 기적입니다. 혁명입니다. 싹이 돋고 꽃을 피우고 다시 또 어둠으로 돌아가는 한 생의 순환이겠으나, 한 치 남짓 저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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