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이름을 지운다/이성필
창틀의 먼지를 털다가 생각한다. 사람과의 긴 먼지 같던 시간들. 누구는 만나면 술 먹고, 누구는 만나면 얘기하고, 누구는 만나면 산에 가고, 그와는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이였음을, 먼지로 쌓인 날들이라고 탁탁 털 …
시계는 없어도 산다/이성필
생각나서 그냥 연락하고픈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목적 없이도 연락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시계도 전화도 귀해 첫눈 오는 날에 역전 시계탑 앞에서 만나자던 약속. …
살피는 마음/남태식
잃었던 익숙한 산을 다시 오른 산책길 길치의 직진을 접고 살펴 걷는 눈앞에 길 아닌 직진 길 비껴 드러나는 비탈길 저무는 해야! 오늘은 내가 되려 일없다.…
소중한 한마디/이성필
일주일 만에 만난 사람은 일주일만의 인사를 한다. 한 달 만에 만난 사람은 한 달 분량의 안부를 묻는다. 떠난 지 반년이 지나고 일 년이 다가오는 사람. …
세한도歲旱圖/남태식
뜨겁게 불타올라서 삭신이 다 녹았나. 마주 선 두 그루의 솔 식은 채로 서 있다. 조경수 호사 버려도 눈요기로 여러 해 입방아 그만 찧어라 …
비 오는 날/남태식
가는가 오는가성하盛夏궂은비가 오는 날 줄줄이 길을 건너는 색우산이셋이다. 찢어진 우산*은 없고앞을 보는하나에 눈 먹고 귀까지먹는 휴대폰이둘이다. * 윤석중 요, 이계석 곡의 동요 「우산」에서.&n…
순탄치 않은 비/이성필
좋은 분 같아요, 하는 말이 바보 같아요, 로 들릴 때가 있다. 호떡을 먹으면서 개떡을 먹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가 “호떡을 맛으로 먹냐!” 그러면 “그럼요!” 그래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용현…
밤에서 아침으로/신은하
소시적 영어단어 꽤나 외웠는데요. 그립다 소쩍 외롭다 소쩍 밤새도록 쓰는데요. 제 이름 새까맣게 채우며 잠도 안 자는데요. 십여 년 공부에도 코쟁이랑 얼굴만 붉히는데요. 엊저녁 끝낸 숙제인 줄 알…
담쟁이 보고서/신은하
어디든 못 갈 곳 없는 열정의 포복입니다. 봄 여름 신나게 놀며 오르막길을 냅니다. 별 닮은 꽃은 연둣빛 열매 송글송글하구요. 까맣게 익을 때 잎새는 붉게 물들어 가죠. 마지막은 잎새의 …
산으로 간 배/남태식
저 높은 산꼭대기로누가 배를 몰았나. 한 척의 배가산 위에덩그러니 떠 있다. 연모의 마음하나로바다 향해 섰어도 물길을 거슬렀으니나아가진못하리. 남태식 2003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