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야구단 창단한 이규형 감독
-인터뷰어 강인규/소설가, 편집위원
본문
리틀 야구를 지도하신 지 벌써 44년이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야구를 가르치신 건 아니라고요?
네, 맞아요. 처음엔 야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을 했습니다. 첫 직장은 섬유회사인 풍천화섬이었는데,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제약회사인 양지약품으로 이직하게 됐어요. 그러다 주말마다 집 앞에 모여 야구를 하는 동네 아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재미 삼아 지켜봤지만, 아이들과 함께 공을 던지고 놀면서 점점 더 진지하게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활동이 점차 체계적인 훈련으로 발전하며 리틀야구단 창단으로 이어지게 된 거죠.
그 작은 시작이 결국 리틀야구단 창단으로 이어졌군요. 당시 리틀야구연맹이 존재했나요?
네, 그때도 리틀야구연맹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야구부만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이언트 구락부, 청룡 구락부 같은 구락부 야구팀들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초등학교 팀과 구락부 팀들이 함께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제대로 된 팀을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리틀야구단을 창단했고, 연맹과 협력하며 경기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잠실 시영아파트에 살았는데, 근처에 운동장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안전하게 야구를 할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말마다 근처 공터에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공터는 바닥에 돌이 많아서 땅볼 연습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플라이볼 연습 위주로 기본기를 다졌습니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직접 돌을 치우고, 그물망과 울타리도 자재를 구해 하나하나 세워가며 훈련 환경을 만들어갔죠.
그렇게 해서 잠실 리틀야구단이 만들어졌군요. 이후 송파 리틀야구단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창단때부터 ‘잠실 리틀야구단’으로 불리며 활동했는데, 2009년부터 지역 이름 대신 구 이름을 쓰라는 지침이 내려왔어요. 잠실이 속한 행정 구역이 송파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송파구 리틀야구단’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죠. 그렇게 이름이 바뀌면서 송파구 전역의 아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더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송파구 전역을 아우르는 팀으로 성장한 거죠.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잠실이라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이름이 송파구로 바뀌자 송파구 전역에서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팀 규모도 자연스럽게 커졌고, 지금은 선수반 18명, 취미반 43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일요일 주 4회 훈련하고 있는데, 평일에는 2시간씩, 주말에는 4시간씩 진행하며 아이들이 언제든지 편하게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리틀야구연맹과의 협력도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고 들었습니다. 연맹에도 변화가 있었다고요?
1982년 리틀야구연맹이 더 이상 운영하기 힘들게되고 모든 팀들이 갈등을 겪고 있는 도중 서울시야구협회에서 1982년 9월 미쉐린 타이어대회를 주최하면서 이미 서울시야구협회에 등록되어 있던 구락부와 리틀야구연맹 산하의 팀을 모두 서울시 야구협회 하나의 단체로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1983년도부터는 모든 구락부는 서울시 야구협회 소속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89년까지 서울시야구협회 소속이었지만 이후 서울시야구협회는 학교팀 야구부에만 전념을 하게 됨에 따라 리틀팀은 다시 독립단체로 운영을 하게 되었고 1990년 새로운 리틀연맹(회장 정효헌)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탄생한 리틀연맹이 현 리틀연맹의 모체가 된 것입니다. 장충구장, 구리구장, 남양주구장 등에서 대회를 하였고, 지방에서도 대회를 하는 등 점차 발전되어가는 모습이 확실히 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2006년도에는 한영관 회장님이 부임하면서 야구팀이 140개가 넘게 되었고 무엇보다 야구장 부지에 헌신을 한 결과 지금의 화성 드림타운에 리틀야구장 단지가 조성되었다는 것은 리틀야구 역사에 있어 최고로 크나큰 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감독님께서 운영하시며 좋았던 순간이 있다면요?
아이들이 야구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과 야구할 생각에 마음이 설레서 심장이 두근두근 뛰어요. 아이들이 조금씩 실력이 늘고, 경기에서 협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44년이나 하다 보니 제자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제자들이 송파 리틀야구단에서 배운 정신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펼치며 살아가는 걸 보면 참 뿌듯합니다.
반대로 어려운 점이나 안타까운 순간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제가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었던 그물망이나 울타리가 홍수로 인해 떠내려가거나 파괴된 것을 보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직접 만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자식을 떠나보내는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고 개선되며 송파 리틀야구단이 지금의 모습이 된 거니까요.
이런 환경 속에서도 리틀야구단을 운영하시며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순수한 봉사정신으로 해야 하며, 그들의 성장과 배움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우리팀 구호도 그런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배워서 이기자, 참되게 자라자, 희생하자, 잊지 마라, 동기야.’예요. 최소한의 경비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장비도 고쳐쓰며 최대한 알뜰하게 운영하려고 합니다. 야구를 통해 아이들이 인내와 끈기를 배우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헌신이 리틀야구의 현재 모습을 만든 것 같습니다. 44년 동안 거의 매일 야구장에 나가셨다고 들었는데요.
네, 맞아요. 입원했던 한 주일을 제외하고는 신혼여행 날에도 야구장에 들렀을 만큼 항상 야구장에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정말 중요했어요. 몸이 피곤해도 야구장에 나가면 다시 힘이 나는 기분이었죠. 44년간 매일같이 기록한 구장일지에 당시의 아이들 모습이 들어있습니다. 제 좌우명의 1순위는 야구가 아닙니다. 1순위는 아이들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야구를 통해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리틀야구는 감독님께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저는 야구가 아이들에게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통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잠실에서 시작한 작은 팀이 송파구 전역을 아우르는 팀으로 성장했듯이, 아이들이 야구를 통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기회를 얻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진심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며, 이 전통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 정말 귀중한 말씀 감사합니다. 감독님의 헌신과 철학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것 같습니다.
1983. 사회진흥기 준우승
2014. 6. 제10회 남양주다산기 우승
2014. 8. 제4회 속초시장기 준우승
2017. 6. 제1회 화성드림기 우승
2022. 8. 대한야구협회 주최 아이-리그 우승
2023. 7. 아이리그 우승
2023. 9. 하반기 경기교육감배 우승
2024. 8. 아이리그 우승(3년 연속우승)
2024.10. 제5회 MLB대회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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