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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꿈을 이어가는 야구선수 김경주의 여정

-포기하지 마세요. 언젠가 기회가 옵니다./2025년 10월 5일, 미국 전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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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의 젊은 나이. 창원사파초에서 시작된 그의 야구 인생은 서울을 거쳐, 태평양을 건너 미국과 멕시코까지 이어졌다. 김경주는 지금도 여전히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단어로 자신을 소개한다. 

 

강인규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경주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27살 김경주입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고, 창원사파초서울 중대초이수중신일고를 졸업했습니다. 현재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거주하며, 시즌 중에는 멕시코 LMB 리그에서 프로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시즌에는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며 지내고 있습니다. 선수로 뛰는 일만큼, 아이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제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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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규 한국에서 운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진로를 옮기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김경주 이수중 시절, 부모님과 함께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본 야구 환경은 충격이었어요. 자유롭고 열린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즐기면서도 열정적으로 운동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때부터 막연히 언젠가 미국에서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죠.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라 방법을 몰랐고, 결국 한국에서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충암고에 진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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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남인환 코치님(현 중앙고 감독님)을 만나며 처음으로 야구 메커닉이라는 개념을 배웠습니다. 단순히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몸의 작용과 과학적 원리를 설명해주셨던 첫 지도자였습니다. 그때 처음, 저 스스로 제 투구폼을 선택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코치진 아래에서 무리한 훈련을 반복하다가 어깨 부상(회전근개)을 입었습니다. 최고 구속 142km까지 던지며 MLBKBO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부상으로 모든 게 무너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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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어서 매일 10시간씩 어깨 보강 운동을 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야구선수를 해야겠다는 꿈 하나로 버텼습니다. 결국 저에게 맞는 신일고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강혁 감독님의 섬세한 지도를 받아 다시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예전 같은 구속은 나오지 않았고, 현실의 벽이 높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국내 명문대의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지만, 마음속에서 다시 불타오르던 꿈이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가서 진짜 내가 원했던 야구를 해보는 꿈이었습니다. 

 

강인규 미국 진출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김경주 네 맞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텍사스 달라스에서 열린 Tryout Showcase에 참가했습니다. 그날 아시아인은 저 혼자였어요. 최고 구속은 86.8마일로 빠르진 않았지만, 제구와 변화구, 그리고 실전 피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D1을 포함해 여러 대학에서 제안이 왔지만, 영어와 토플이 가장 큰 벽이었습니다. 그때 정말 절망했죠. 

 

그러던 중 NCAA D3 리그의 Ozarks University 투수코치가 장학금을 제안했고, 토플 없이 입학할 수 있다는 말에 결심했습니다. 시골 학교였어요. 한국인도, 한식당도 없었죠. 처음 강의실에 들어갔을 땐 교수님 말씀이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매일 12시간씩 도서관에서 영어공부를 했는데도, 현실의 언어는 달랐습니다. 

 

하지만 야구부라는 공동체 속에서 점점 적응했고, 개인 튜터까지 붙여가며 끝까지 버텼습니다. 꾸준히 노력을 하다보니 영어가 조금씩 늘었습니다. 어느 순간 영어로 편하게 말하고 있는 자신이 신기하더라구요, 그 후 군복무를 위해 귀국했고, 독도경비대에서 복무했습니다. 사회와 분리되어있어서 힘들기도 하고 야구를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킨다는 뿌듯함과 대자연이 어우러진 독도에서의 시간은 저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미국 복귀를 준비했고, 전역 후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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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코치님이 다른 대학 감독으로 옮기며 전액 장학금을 제안해 주셨고, 미국 아이오와의 Dordt University로 편입했습니다. 야구 명문은 아니었지만, 약속과 신뢰 하나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끝내 졸업까지 마쳤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강인규 졸업 이후의 길은 어땠나요? 

 

김경주 졸업 후 워싱턴의 독립리그에서 제안을 받았고, 동시에 여자친구(현재 아내)가 애틀란타로 이주하면서 함께 그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꿈꾸었던 돈을 받고 야구를 하는 야구선수가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스프링캠프를 거쳐 마무리 투수로 시즌을 치렀고, 43경기에서 45.1이닝, 방어율 1.59, 28세이브. ‘최고의 마무리상올스타 선정이라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여태까지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는데,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얻은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에이전트를 만나 멕시코 LMB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화씨 110도의 무더위, 언어 장벽, 한식도 없는 낯선 환경이었지만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이겨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비록 멕시코에서는 시즌을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의 제 인생에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말 한국에서 미국, 미국에서 멕시코까지 왔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믿겨지지 않습니다. 힘들었지만 야구하는 순간만큼은 너무 행복했고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이 기쁨과 에너지를 여러분들에게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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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규 한국야구와 미국야구를 경험하셨는데요. 혹시 두 나라의 야구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김경주 가장 큰 차이는 훈련 문화입니다. 한국은 10시간 넘게 훈련하지만, 미국은 2~3시간이 전부입니다. 그 대신 이해 중심의 교육이 이뤄집니다. 한국이 주입식이라면, 미국은 토론식이에요.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선수 스스로 깨닫게 해줍니다. 

 

저는 그 차이를 지도할 때도 느낍니다. 무작정 팔 올려!”가 아니라, 투구 메커니즘의 원리를 설명해줍니다. 아이들이 이해하면 오래 기억하거든요. 

 

예를 들어 투구에는 5단계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킥킹2)스트라이트3)얼리코킹4)레이트 코킹5)팔로스로우. 이 과정에서 팔꿈치가 어깨선보다 낮아지면 부상이 유발된다는 것을 원리로 설명해주죠. 아이들은 늘 질문을 던지고, 저는 그에 답하기 위해 더 공부합니다. 그게 진짜 지도자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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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김경주 현재 미국에서 야구 아카데미 설립을 준비 중입니다. 단순히 야구를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한국의 선수들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의 고등학생 선수들은 재능도, 근성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환경이 좋지 않습니다. 그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싶어요. 야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더라도, 그 열정과 근성으로 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강인규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김경주 가장 힘든 시기가 가장 성장하는 시기입니다. 저 역시 수없이 넘어지고 부상으로 무너졌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인생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기회를 줍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제가 그 증거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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