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오페라앙상블을 30년째 이끄는 장수동 예술감독 > 무용뮤지컬

본문 바로가기

무용뮤지컬


서울오페라앙상블을 30년째 이끄는 장수동 예술감독

-인터뷰어 강수 시인/사진제공 강희갑·서울오페라앙상블

본문

장수동표지1-1000.jpg

 

선생님은 열악한 우리나라 오페라계의 토대를 다지고, 국내 오페라의 새 지평을 개척하는 데 평생을 바쳐오셨습니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은 선생님의 분신과 같은 오페라단인데요, 이 오페라단이 그동안 해 온 작업을 보면, 선생님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 오페라 앙상블’은 어떤 단체인가요? 


1994년 5월에 '오페라의 전문화’, ‘한국 오페라의 세계화·대중화’를 목표로 창단했어요. 지금까지 30여년간 꾸준히 신작 오페라를 공연해 온 오페라공연 전문단체예요. 우리 활동은 크게 네 가지로 간추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국내 창작오페라의 활성화, 둘째, 한국 오페라의 세계화, 셋째, 소극장 오페라의 활성화, 넷째, 현장 중심의 오페라 작업입니다. 


처음에 94년에 서울오페라앙상블을 만들 때에는 소극장 운동을 하고 싶었어요. 대중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대중화시키기 위한 방안이 무엇일까하는 고민을 했거든요. 그러면서 우리의 얼굴을 한 오페라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 오페라를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지요. 그렇게 해서 우리 오페라를 세계화시킬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지요. 요즘 K-컬쳐가 빛을 보고 있잖아요. 오페라는 K-컬쳐가 집대성되어 있는 분야거든요.


<백범 김구>,<운영>,<붉은 자화상>, <취화선> 등의 창작 오페라를 제작해서 공연하는 데 온 힘을 쏟았지요. 사실 이 작업은 국가에서 맡아야 하는 작업입니다. 창작오페라 한 편을 공연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큽니다. 매번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우리 나라 오페라의 기틀을 다져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텨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오페라의 새로운 모습을 실험하기도 했는데요. ‘우리의 얼굴을 한 오페라 시리즈’인 <서울*라보엠>, <섬진강 나루>로 공연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어요.


그리고, 북경국제음악페스티벌, 밀라노세계EXPO초청 공연 등을 통해 ‘한국오페라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는 오페라 대중화는 소극장오페라가 알맞다고 생각해요. 저는 초창기부터 소극장오페라연합회 회장을 맡아서 활동을 했고, 법인으로 바뀐 다음에는 이사장을 맡아서 근 20년 이상을 이끌어 왔어요.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서울소극장오페라축제 주관단체의 하나로 지난 20년간 이 축제에 참여해 왔고, 상암월드컵 야외오페라 <투란도트>, 정명훈 지휘 야외오페라 <라보엠>등 수 십 편의 오페라의 협력 단체로서 ‘현장 중심의 오페라 작업’을 펼쳐 오기도 했죠. 한 마디로 서울오페라앙상블은 ‘한국오페라의 세계화’를 위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도약하고 있는 민간오페라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시와 음악이 만나는 가곡운동’을 시도하고 있어요. 현대적 감성에 어울리는 모던가곡을 만들어 가곡의 대중화를 추구하는 겁니다. 일반인들이 오페라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가곡운동을 해야 되겠구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가곡은 오페라의 아리아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페라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업들이 우리 오페라를 세계화하는 데 밑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시인들과 교류하는 기회를 만들어서 시와 음악의 앙상블을 이뤄내는 기회로 삼고 싶습니다.

6a129c354910408e62377d379b56a722_1742199882_9079.jpg근 30여년의 시간 동안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오페라 작업에만 몰두해 오시면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우리나라 오페라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 오신 거네요. 모든 작업이 다 소중하겠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2007년에는 아시아판 오페라 <리골레토>의 공연(제1회 오페라대상 연출상 수상)으로 주목을 받았어요. 특히 2008년에는 ‘한국오페라 60주년 기념오페라’로 오페라 <모세>를 공연하여 뛰어난 음악적 앙상블로 제2회 오페라대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그게 기억에 남습니다. 또한 북경국제음악페스티벌 초청 오페라<리골레토>, <춘향전>으로 중국에서의 오페라의 한류 붐을 조성하기도 했지요. 오페라 <운명의 힘>으로 제6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 금상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창작오페라 <운영>(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모세>(예술의전당)를 공연했고, 2017년에는 창작오페라 <붉은 자화상>와 윤이상 탄생 100주년기념오페라로 <나비의 꿈>을 공연했어요. 2018년에는 한국오페라70주년기념오페라로 <라트라비아타>, <토스카> 등을, 2019년에는 <돈조반니>의 전국순회공연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지요. 2020년에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음악극 <굿모닝 독도>, 오페라 <개구쟁이와 마법>,<카르멘> 등을 공연하였고, 2021년에는 새롭게 현대적으로 해석한 <돈 조반니>와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는 가족환경오페라 <빛아이 어둠아이>를 공연해서 주목을 받기도 했지요.


가족환경오페라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아이들을 위한 오페라예요. 그런데 사실, 아이들에게 음악극이 어디 있고, 오페라가 어디 있고, 뮤지컬이 어디 있겠어요. 그냥 사람의 목소리 하고 악기의 울림이 만나는 공연이지요. 아이들에게는 이런 공연을 통해서 이거는 바이올린 소리야, 이거는 하프 소리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면서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30분 짜리 작품을 만들어서 그런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작업의 일환으로 알퐁스 도데의 <별>이라는 작품을 아이들 시선으로 바라보는 오페라 작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들을 보니, 우리나라 오페라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가족환경오페라는 특히 의미가 있는 것 같네요. 오페라를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아이들이 나중에 우리 오페라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이 듭니다. 더 나아가서는 오페라의 수용층을 확대한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선생님의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에게 오페라는 무엇인가요?


세상을 보는 큰 거울입니다. 누구나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거울이 있잖아요. 저는 오페라를 통해 세상을 보고, 그냥 오페라를 사는 거지요. 오페라가 바로 접니다. 그래서 오페라를 살다 보니, 지금까지 근 40여 편의 작품을 올릴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러지 않으면 이렇게 못할 거에요. 돈을 따지고 이해관계를 고려하면서 저의 안위만 생각했다면, 접어도 한참 전에 접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제 삶이었거든요. 오페라를 그만둔다는 것은 제 삶을 그만둔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자부심을 갖는 것은 제가 무대에 올린 어떤 작품도 모두 우리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창작 오페라의 경우도 우리의 주체성과 개성을 살리면서 세계인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작품들이어야 한다는 원칙하에 제작하였습니다. 대중음악과 드라마, 영화 등 K-컬쳐가 세계에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오페라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날도 반드시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응원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오페라 환경이 어렵다고 하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가령, 유럽은 의상, 소품, 세트가 다 극장에 있어요. 오페라단마다 자기 극장이 있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매번 극장을 대관해서 공연을 해야 하거든요. 지금, <돈 조반니>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세트는 파주, 소품은 광명의 창고에서 그때그때 가져옵니다. 아주 비효율적이죠. 연습하다가 안 맞으면 그때그때 필요한 소품들을 가져다가 바로 연습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요. 우리는 그게 어렵습니다. 올해 예술의전당 30주년이거든요. 처음에는 세트장과 의상실이 다 있었어요. 오페라 극장으로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없어요. 이게 말이 되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오페라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에 300개 이상의 소극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극장을 채울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한 실정이거든요. 소극장오페라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온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힘을 키워서 대규모 오페라로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지요. 


선생님의 창작 오페라공연 작업을 하시는 것을 보면, 작품 하나 하나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나 역사적 사실을 철저하게 체크하시더라구요. 물론 창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특별히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나요?


오페라 작품의 실존적 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작업업니다. 단순한 소재 차원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 작품이 해당 지역과 해당 주민이나 국민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창작 공연을 했을 경우에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인지,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평가를 해 봐야 하거든요. 가령, <돈 조반니>는 고령에서 공연하고, <붉은 자화상>은 해남에서 하거든요. 고령에서 오페라를 한다니까 모두 기대하며 환영해 주셨어요. 해남에는 3번 갔었는데, <붉은 자화상>의 주인공인 윤두서가 지낸 녹우당이 있고, 근처에 대흥사도 있어요. 멋있는 숲길도 있어요. 해남 일대를 관광 문화벨트로 가꿀 수도 있는 거거든요. 황지우 시인, 고정희 시인도 그 지역 출신이고, <붉은 자화상>도 관광문화 상품이 될 수도 있는 거거든요.

 

6a129c354910408e62377d379b56a722_1742199932_4171.jpg선생님이 오페라를 바라보는 관점이 잘 드러나는 말씀이네요. 오페라가 단순히 예술작품이라는 층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바꾸고 개선하며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는 촉매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만든 창작 오페라가 40여 편이나 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도 있고, 창피한 작품도 있습니다. 저의 직계 스승인 오현명 선생께서 “야, 수동아, 우리 오페라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었어요. 창작 오페라를 하면서 보람 있었던 것은, 젊은 작곡가들에게 오페라를 작곡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에요. 뛰어난 젊은 작곡가들이 많지만 무대 전체를 관객 눈높이에서 보는 안목이 부족한 게 사실이거든요. 그들이 연습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그런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요. 그들에게 지속적인 훈련과 무대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 오페라가 융숭해지고 세계에도 진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종합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소양도 필요해요. 무대에서 뒹굴며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하고 영화, 무용, 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소통해야 합니다. 그냥 음악에만 갇혀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너희들 삶의 스펙트럼이 넓어야 우리 오페라도 달라지지…….” 그런데 이것은 말로만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젊은 작곡가, 대본작가, 연출가들이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오페라 제작극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베르디, 푸치니가 그냥 나온 게 아니거든요. 모두 극장에서 이뤄진 겁니다. 그들에게 기회를 줘야 해요. 그런데 우리 문화예술 행정과 극장 시스템이 너무 아쉬워요.


문제가 뭔가요?


오페라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합니다. 협업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소통하고, 계속 수정하면서 창조해 나가야 하거든요. 그런 작업의 결과, 무엇보다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대중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오현명 선생께서 창작 오페라는 소극장에서 시작해야 된다고 하셨어요. 걸음마도 못 하는데 장거리 뛰라고 하면 할 수 있겠느냐는 거에요. 저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온 게 공석준 <결혼>, 박영근 <보석과 여인>, 요즘 자주 하는 이건용 선생의 <봄봄> 같은 작품이에요. 창작 오페라는 작은 공연장에서 출발하는 게 나아요. 7명이 노래하고 7명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나실인의 <나비의 꿈> 정도가 ‘찾아가는 오페라’에 적합합니다. 큰 극장에서는 이틀밖에 못 하는데, 대학로처럼 1주일, 2주일 하려면 소규모가 낫다는 거에요.


오케스트라 피트를 갖춘 극장이 별로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구로, 마포, 토월극장, 국립박물관 극장 용, 그리고 강동아트센터 정도가 갖춰져 있어요. 오페라는 자연스런 악기 소리와 무대 위 성악가의 소리가 잘 섞인 그 음악을 들으러 오는 거지요. 관객들이 제대로 된 감동을 맛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극장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관객과 오페라를 이어주는 문턱이 높게 느껴져요. 관객의 접근이 어려워요.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오페라의 매력을 대중화시킬 수 있어요? 작년 대학로에서 <장총>을 공연할 때, 문예회관 관계자에게 “원래 여기 오케스트라 피트 있었다”고 알려주니까 거기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피트를 찾아서 보여줬는데, 열어보니까 쥐가 다니고 엉망이더라구요. 얼마나 답답하던지. 지금 생각해도 울컥합니다. 문예회관 연 뒤 한번도 쓴 적이 없었던 거지요. 문예회관은 무용, 연극 하느라 바쁜 극장인데, 그때 제대로 된 오페라를 처음 한 거에요. 창작 오페라나 ‘찾아가는 오페라’는 그런 데서 해야 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오페라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부족해 보이는데요.


우리나라 음악계가 다같이 고민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음악비평가들이 베르디, 모차르트 얘기는 하는데, 창작 오페라 얘기는 안 해요. 비평가는 창작물과 대중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줘야 하거든요.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비평가의 직무입니다. 여기서 좋은 작품은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작품성이 확보되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품은 누구나 비평할 수 있어요. 그런데 창작 오페라는 그렇지 않거든요. 아무리 좋아도 대중의 관심을 못받아요. 그 연결고리 역할을 비평가가 해줘야 하는데, 그게 없어요. 작품성이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비평을 해줘야, 작품이 좋아질 거 아니에요. 비평은 비평가의 몫이고, 우리 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거든요. 잔잔한 수면 위에 아무리 돌을 던져도 파문이 안 일어요. 그러면 돌 던지는 사람도 맥이 빠지는 거거든요.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비평가들의 쓴 얘기를 듣고 싶은데,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니……. 대중의 관심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는 거지요. 오페라는 작곡자를 앞세우거든요. 베르디의 오페라라고 하지, 연출자나 대본작가의 이름이 붙는 게 아니잖아요. 작년에 안효영의 <장총>을 보고 관심을 가졌던 지방 팀이 있었는데, 결국 안 됐어요. 다음에 다시 하면 됩니다. 나실인 <나비의 꿈>, 신동일 <빛아이 어둠아이>, 고태암 <붉은 자화상> 등으로 ‘레퍼토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요. 창작 오페라를 한번 하고 버릴 게 아니라 여러 단체, 여러 장소에서 계속 공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오페라계의 동향은 어떤가요?


올해는 정말 힘들어요.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발도 우리 오페라단은 작년에 돈 조반니 출연을 했기 때문에 자격이 없어서 참가를 못하는데, 올해는 예산이 한 푼도 안 나왔어요. 올해 참가하는 오페라단들은 정말 힘들게 생겼어요. 우리 오페라인들이 피켓 들고 거리로 나서야 하는 건지 참 착잡합니다. 오페라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봐요. 오페라의 가치를 몰라서요. 그것은 우리 잘못도 있다고 봐요. 우리가 노력을 많이 하고 국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애써야 되는 것도 많거든요. 우리 오페라계가 힘을 모으고 더욱 노력해야 할 거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오페라의 이런 문제점들을 고쳐나가면서, 궁극적으로 선생님이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 것 같은데요. 


결국 작품성이지요. 영화를 보세요. 예전에는 열악했잖아요. 미국 영화들에 대항해서 데모를 하기도 했죠. 국내 영화계를 위태롭게 한다고. 그런데 지금 보세요. 시스템도 잘 돼 있고, 장비도 탁월하고, 그만큼 시장이 커졌잖아요. 이젠 오히려 우리가 세계 영화계로 나가고 있잖아요. 오페라도 시장의 파이를 키워야 해요. 그것은 대중성 확보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피가로의 결혼> 같은 작품을 우리 식으로 리메이크해서 동아시아에 돌려보면 어떨까요? 한국, 중국, 일본만 해도 인구가 10억이 넘어요. 최근에는 대만도 오페라를 시작했어요. 동아시아 극장 문화가 비약적으로 확장되고 있어요.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우리 오페라에 그런 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범 내려온다>가 조회수 1억이 넘었어요.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푸치니를 우리 악기로 하거나, 국악 어법으로 작곡하면 어떨까요? 그것이 우리 K-오페라의 개성이 될 겁니다. 외국인들에게는 참신하고 신기한 경험이 될 거에요. 우리 문화는 용광로와 같은 힘을 갖고 있어요. 비빔밥처럼 여러 소재를 융합하여 맛깔나는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오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판소리, 아악, 민속악, 남도민요 하는 사람도 출연하고, 서양악기와 퓨전으로 할 수도 있고……. 전혀 색다른 K-오페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거지요.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대기업들이 지원해 주면 좋겠습니다. 하노이에서 <황진이>를 공연하는데, 하노이 교향악단 악기가 전부 일본제였어요. 우리는 LG전자 삼성전자 옥외광고판 걸고 냉장고나 TV를 엄청 파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오페라 같은 건 몰라요. 한국은 그냥 물건 팔아먹는 나라로만 생각할 거 아니에요.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 앞에 삼성 전광판이 있고 라스칼라 메인 스폰서에도 삼성이 들어 있었어요. 그러면 삼성에서 라스칼라에서 한국 오페라 공연을 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잖아요. 일본은 거기서 <투란도트>를 공연했거든요. 일본 기업이 자본을 대고 관객을 다 채워 줬어요. 심지어 중국에서도 와서 했어요. 우리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성악가들이 많잖아요. 라스칼라 측도 환영하지 않을까요? 우리 오페라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줄 때가 됐다고 봐요.

6a129c354910408e62377d379b56a722_1742200008_5603.jpg
 

올해 계획은 어떤가요?


올해가 서울오페라앙상블 창단 30주년이 됩니다. 4월이나 5월쯤 우리 창작 오페라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려고 합니다. 이때에는 오페라의 예술적 측면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도 살펴보려고 해요. 오페라의 경우도 뮤지컬처럼 제작자도 있어야 하고 투자자도 있어야 하는데, 이를 실현할 방안은 무엇인가, 우리 오페라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서로 지혜를 모아야지요. 오페라 단체 사이의 정보 교환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일본만 해도 도요다에서 매년 4월 오페라 포럼을 한다고 합니다. 전국의 오페라 관계자들이 다 모여서 서로 부족한 걸 도와주고 보충하면서 그해의 공연계획을 세우는 거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협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획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오페라에 대한 열정과 오페라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오페라의 세계화 가능성과 과제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Copyright © 한국문화예술신문'통' 기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4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추천한 회원 보기

댓글목록1

박준범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장수동 감독님의 열정과 정신 존경하며 정말 멋집니다!이모티콘


게시판 전체검색
상담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