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칼럼2-떠나지 못한 여행, 돌아오는 항공권은 누가 책임지는가
-천재지변과 저가항공권, 소비자 보호의 새로운 과제
본문
해외여행이 일상화되면서 항공권을 구입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한 항공사에서 왕복 항공권을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출국편과 귀국편을 서로 다른 항공사에서 예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저가항공사의 등장과 온라인 예약시스템의 발달로 소비자가 가격과 시간을 비교하여 자유롭게 항공편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항공여행의 문턱을 낮추었다. 그러나 항공권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편리함 뒤에는 소비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위험도 숨어 있다. 특히 태풍이나 폭설, 지진 같은 천재지변으로 항공편이 결항되었을 때 그 위험이 드러난다.
가령 한국에서 해외로 출국하는 항공편과 며칠 뒤 귀국하는 항공편을 서로 다른 항공사에서 예약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출발 당일 태풍으로 출국 항공편이 결항되었다. 여행자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고, 예정된 여행이나 행사에도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
당연히 며칠 뒤 예약된 귀국 항공편도 이용할 수 없다. 출국하지 못했으니 돌아올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귀국편 항공사가 정상적으로 운항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당 항공사는 자신이 판매한 항공권의 운송 의무를 이행할 수 있으므로, 다른 항공사의 결항을 이유로 환불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특히 예약 당시 환불 불가 조건으로 판매된 저가항공권이라면 소비자는 항공권 대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법률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다. 서로 다른 항공사와 체결한 운송계약은 원칙적으로 별개의 계약이기 때문이다. 한 항공사의 결항으로 다른 항공사가 반드시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의문이 남는다. 항공사에는 두 개의 계약이지만 소비자에게는 하나의 여행이다. 소비자가 출국편과 귀국편을 구입한 것은 각각의 비행기를 타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어서가 아니다. 목적지에 가서 일정한 활동을 하고 다시 돌아오기 위한 하나의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그런데 천재지변으로 그 여행의 출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면, 돌아오는 항공권을 이용하지 못한 책임까지 전적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합리적인가.
여기서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항공사가 법적으로 반드시 환불해야 하는 문제와 소비자 보호를 위해 어떤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는 서로 다르다. 현재의 계약조건에 따라 환불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 조건이 예상하기 어려운 모든 상황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항공사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사정이 있다. 항공기는 승객 한 사람이 탑승하지 않는다고 운항을 중단할 수 없다. 예약된 좌석을 비워둔 채 운항하면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발생한다. 저가항공사는 이러한 위험과 비용을 고려하여 운임을 낮추고 환불이나 예약 변경을 제한하기도 한다.
소비자 역시 저렴한 항공권을 선택하면서 일정한 제약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천재지변으로 발생한 모든 손실을 소비자가 감당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일 수는 없다. 문제는 어느 한쪽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있지 않다.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재해로 여행 자체가 불가능해졌을 때 항공사와 소비자가 위험을 합리적으로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출국 항공편의 공식 결항확인서를 제출하고, 귀국편 출발 전에 예약 취소를 신청한 소비자에게는 일반적인 개인 사정에 따른 취소와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항공권 전액을 환불하기 어렵다면 일정한 수수료를 제외한 부분 환불을 검토할 수 있다. 현금 환불 대신 일정 기간 사용할 수 있는 항공권 크레디트를 제공하거나, 추가 비용을 최소화하여 다른 날짜로 변경할 기회를 주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출발까지 남은 시간과 항공권의 종류, 좌석의 재판매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차등 적용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안이 현재 모든 항공사에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앞으로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는 개선 방향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항공권 판매업체와 온라인 예약 플랫폼의 역할도 중요하다. 소비자가 서로 다른 항공사의 항공권을 조합하여 구입할 때, 한쪽 항공편이 결항되어도 다른 항공편의 환불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안내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작은 글씨로 환불 불가라고 표시하는 것만으로 소비자가 모든 위험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자연재해로 출국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처럼 일반 소비자가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은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항공권을 구입하는 순간에는 누구나 여행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태풍이 발생하거나 공항이 폐쇄되어 출발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구체적으로 예상하며 항공권을 구입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사전에 충분히 알리고,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구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은 항공산업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저가항공사의 경쟁력은 저렴한 가격에 있다. 그러나 가격이 저렴하다는 사실이 소비자 보호까지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저렴한 항공권과 합리적인 소비자 보호는 반드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위기에서 소비자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항공사의 신뢰와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소비자 보호기관 역시 이러한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서로 다른 항공사의 항공권을 결합하여 여행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현실에 맞추어, 천재지변으로 인한 연계 항공편의 취소와 환불 문제를 어떤 기준으로 다룰 것인지 논의할 때가 되었다.
모든 항공사에 일률적인 환불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항공사의 정상적인 영업활동도 보호해야 하고, 소비자가 선택한 계약조건 역시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계약의 독립성만 강조한 나머지 소비자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까지 모두 떠안도록 하는 것 또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소비자가 구입한 것은 두 장의 항공권이지만, 소비자가 기대한 것은 하나의 완성된 여행이었다. 천재지변으로 그 여행의 출발이 막혔다면, 돌아오는 항공권에 대해서도 일정한 구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자 보호의 출발점일 수 있다.
떠나지도 못한 여행에서 돌아오는 비용까지 모두 부담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항공권 한 장의 환불 문제를 넘어, 우리가 어떤 소비자 보호제도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계약이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합리적인 계약문화란 권리와 의무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위험을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분담하는 데서 더욱 성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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