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다시 미래를 이야기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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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 | 시인·본지 발행인
희망이라는 말은 때로 너무 쉽게 쓰인다. 어려운 사람에게 힘을 내라고 하고, 앞날이 막막한 청년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말만으로 삶의 형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희망을 이야기할 때마다 한 가지를 먼저 묻고 싶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할 만큼 그가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가.
희망은 먼 곳에 완성되어 있는 선물이 아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고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생겨나는 가능성이다. 그렇다고 희망을 오직 개인의 의지에 맡길 수는 없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이라도 실패 한 번에 생활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면 선뜻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일은 개인과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성공을 지나치게 좁게 정의해온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소득, 더 큰 성취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에게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의 가치는 자주 놓친다. 작은 가게를 오래 지켜온 사람,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일을 늦게 시작한 사람, 지역의 오래된 기술을 이어가는 사람도 저마다의 삶을 완성해가고 있다. 희망은 모두가 같은 결승선에 도착하는 데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일이 희망이고, 누군가에게는 오래 미뤄둔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일이 희망이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병든 가족을 돌보면서도 하루에 한 시간만큼 자기 시간을 갖는 일이 절실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정을 하나의 성공 기준으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사람은 내일을 기다릴 이유를 얻는다.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데에는 구체적인 조건이 필요하다.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배울 기회가 있어야 하고, 일하려는 사람에게는 일할 통로가 있어야 한다. 한 번 실패한 사람이 영원히 뒤처지지 않도록 다시 시작할 기회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은 특정 세대만을 위한 요구가 아니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든 누구나 방향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희망은 사회의 제도에서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태도 역시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시기하기보다 축하하고, 낯선 선택을 조롱하기보다 들어주며, 실수한 사람에게 회복할 시간을 허락하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작은 경험이 쌓여야 사람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 미래를 향한 도전은 쉽게 위축된다.
문화예술에 몸담아온 나는 여기에서 예술의 역할을 생각한다. 한 편의 시가 당장 일자리를 만들거나 집값을 낮출 수는 없다. 한 곡의 노래가 사회의 불평등을 단숨에 없애지도 못한다. 그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예술은 우리가 타인의 삶을 상상하고, 익숙한 현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보이지 않던 사람의 고단함을 알아보게 하는 것, 그것도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필요한 변화의 시작이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 우리가 만든 언어가 사람들의 삶과 너무 멀어져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독자가 시를 찾아오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시가 독자의 일상에 다가갈 방법도 찾아야 한다. 작은 도서관의 낭독회나 동네의 공연,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시 한 편이 사람의 하루를 조금 바꿀 수도 있다. 예술이 희망을 말하려면 먼저 사람 곁에 있어야 한다.
물론 따뜻한 마음과 아름다운 시만으로 현실의 어려움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좋은 제도와 지속적인 정책이 필요하며, 그것을 실제로 작동하게 할 사회적 책임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다른 한쪽의 대안으로 내세우지 않는 일이다. 제도는 사람이 다시 일어설 자리를 만들고, 사람 사이의 신뢰는 그 자리를 함께 지키게 한다. 문화예술은 그곳에서 우리가 왜 서로의 삶을 존중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묻게 한다.
우리는 미래를 말할 때 거대한 청사진부터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미래는 오늘의 작은 결정들로도 달라진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일,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웃을 응원하는 일,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선택을 인정하는 일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이런 일들이 사회 전체의 문제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변화가 지속되게 하는 바탕은 될 수 있다.
나는 희망을 낙관과 같은 말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 근거 없이 내일은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태도보다, 내일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도록 오늘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묻는 태도에 더 가깝다. 현실의 어려움을 똑바로 보는 사람도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오히려 무엇이 부족한지 알기 때문에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찾아낼 수 있다.
희망은 경쟁에서 이긴 소수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가능성이다. 그것은 한 사람의 선의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정책 하나로 단번에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자기 몫의 작은 변화를 시작하고 사회가 그 노력을 뒷받침한다면, 희망은 추상적인 구호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희망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만의 희망보다 함께 만들어가는 희망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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