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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는 무엇을 먼저 회복해야 하는가

―경제적 안정, 사회적 신뢰, 그리고 내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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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 | 시인·본지 발행인

 

사람들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살기가 어려워졌다고도 하고,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고도 한다. 젊은이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세상이 낯설어졌다고 말한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저마다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경제적 안정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일까. 아니면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는 희망일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어느 하나도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불안한 사람에게 신뢰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경제가 성장해도 삶이 평안하지 않다.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면 오늘의 풍요조차 오래 누릴 이유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삶을 이루는 세 얼굴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랫동안 잘사는 나라를 꿈꾸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공장을 세우고 도시를 건설했다. 짧은 시간에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적 성취를 이루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출발한 나라가 첨단산업과 문화예술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 성취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충분히 인정하고 다음 세대에 전해 주어야 할 역사다. 그러나 나라가 부유해졌다는 사실과 국민 개개인이 안정된 삶을 누린다는 사실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거대한 기업이 성장해도 작은 가게의 주인은 내일을 걱정할 수 있다. 도시에는 높은 건물이 들어서지만 그 도시에서 태어난 청년은 자신의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렵다고 느낄 수 있다. 사회 전체의 경제적 성과가 개인의 삶에 고르게 전달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성장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경제적 안정은 단순히 돈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으며, 늙어서도 인간다운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믿음에 가깝다. 갑작스러운 실패가 곧 삶의 파멸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 다시 일어설 기회가 있는 사회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안정만으로 충분할까.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서로의 노동에 기대어 살고, 서로의 약속을 믿으며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타는 버스부터 저녁 식탁에 오르는 음식까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책임과 성실함이 우리의 생활을 지탱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신뢰가 약해지면 평범한 일상조차 불안해진다. 누군가의 친절을 의심하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부정한 결과로 여기며,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할 이웃이 아니라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물론 의견이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오히려 다양한 생각이 자유롭게 표현되어야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 문제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존재와 존엄까지 부정하는 태도다.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기보다 먼저 어느 편인지 확인하게 되었을까. 어떤 주장을 접하면 그 내용의 옳고 그름보다 누가 말했는지를 먼저 따지지는 않는가.

 

정치적 갈등뿐만이 아니다. 세대와 지역, 직업과 소득에 따라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도 달라진다. 젊은 사람은 기성세대가 기회를 독점했다고 느낄 수 있고,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고생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각자의 경험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순간 상대방의 삶은 보이지 않게 된다.

 

신뢰는 서로 좋아해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의견이 달라도 약속은 지킬 것이라는 믿음, 경쟁하더라도 최소한의 규칙은 지킬 것이라는 믿음, 잘못된 일이 발생하면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이 적용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신뢰는 개인의 착한 마음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정한 제도와 책임 있는 공공기관, 투명한 절차가 함께 있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서로 믿으라고 요구하기 전에 믿을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은 어떠한가. 나는 이 문제가 경제적 안정이나 사회적 신뢰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희망은 단순히 내일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자신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젊은이가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능성이 지나치게 제한되지 않는다면 미래는 여전히 열려 있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느낀다면 사람은 도전하기 어려워진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보다 현재의 자리를 지키는 데 몰두하게 되고, 타인의 성공을 축하하기보다 자신의 몫을 빼앗긴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약해지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불안이 공동체의 불안으로 번져간다. 그렇다고 오늘의 젊은 세대가 희망을 잃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에서 기회를 찾고, 누군가는 작은 도시에서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며, 또 누군가는 예술과 창작을 통해 이전 세대가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여기서 국가의 역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은 바뀔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권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국가가 해결해야 할 모든 과제가 정권의 변화에 따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어서는 곤란하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지역의 쇠퇴, 교육의 변화, 미래 산업의 육성, 기후와 환경 문제는 어느 한 정부의 임기 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러한 과제에 대해서는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장기적인 목표와 기본 원칙을 합의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물론 정책의 방법까지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정당과 정부에 따라 우선순위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다음 세대가 살아갈 나라의 토대를 마련하는 일만큼은 선거의 승패를 넘어 지속되어야 한다.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특정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역할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의 문화예술은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의 음악과 영화, 드라마와 문학이 국경을 넘어 많은 사람과 만나고 있다. 문화예술에 몸담아 온 사람으로서 반가운 변화다.

 

그러나 한편으로 묻게 된다. 문화산업이 발전한 만큼 우리 국민의 문화적 삶도 풍요로워졌는가. 세계적인 가수가 탄생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노래를 즐기며 사는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가 국제적인 상을 받았다고 해서 동네의 작은 극장과 지역 예술가들의 삶까지 넉넉해지는 것은 아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것과 평범한 시민이 일상에서 시 한 편을 읽을 여유를 갖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문화예술의 가치는 산업적 성과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지친 사람이 노래 한 곡으로 위로받고, 외로운 사람이 시 한 편에서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며,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 편의 연극을 보고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 그 또한 문화예술의 중요한 역할이다.

 

문화예술은 사람을 경쟁에서 이기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때로는 경쟁을 멈추고 자신과 타인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 안정이 삶의 바닥을 받쳐 준다면 사회적 신뢰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그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문화예술은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묻게 하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에게도 물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자신이 누리는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 비용은 다른 세대가 부담하기를 바라지는 않는가. 성공한 사람에게는 박수를 보내면서 실패한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냉정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너무 좁은 기준으로 판단해 온 것은 아닐까. 높은 자리에 오르고 많은 재산을 모은 사람만 성공한 것은 아니다. 평생 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한 사람, 아픈 가족을 돌본 사람, 작은 마을에서 이웃을 지켜 온 사람, 이름 없이 예술을 이어 온 사람도 이 사회를 만들어 온 주인공이다.

 

그들의 삶이 존중받을 때 사회는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성찰만으로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좋은 일자리와 안정된 주거, 공정한 제도, 신뢰할 수 있는 정치와 행정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따뜻한 말이 정책을 대신할 수 없고, 경제성장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채울 수도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 온 경험이 있다. 산업을 일으켰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으며, 교육과 과학기술, 문화예술에서 새로운 성취를 이루었다. 앞으로의 변화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축적한 경험과 역량은 분명 소중한 자산이다.

 

이제는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신뢰, 미래에 대한 희망 가운데 어느 하나를 먼저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 가지는 서로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국가가 성장하는 이유도, 제도를 개선하는 이유도, 문화를 발전시키는 이유도 결국 사람이 조금 더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잘사는 나라를 꿈꾸었다. 이제는 그 나라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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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강귀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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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합니다!
사상이 자기와 같지 않다고 하여 틀렸다고 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다름을 인식하는 것이 기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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