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알사탕’이다
-사진 : 정치산(위봉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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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 보면 매사에 물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은 맞는 말로 보인다. 그런데 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생각이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까울 수 있다. 세상 일에는 아무리 내가 옳다고 주장해 봐도 그에 대한 반론이 반듯이 존재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자주 깨닫는다. 내가 아무리 정답이라고 우겨보았자 그것이 사실 정답이든, 아니든, 절대로 정답으로 인정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정황도 많다.
그래서 그런지 말이야 되거나 말거나 세상은 우격다짐 일색이고, 목소리 큰 사람이 마지막에는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바뀌어 가는 듯하다. 이 사회가 현재 옳으냐, 그르냐, 라는 질문은 질문 자체가 이미 잘못된 질문으로 되어가고 있다.
다시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어차피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도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매사 내가 틀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틀릴 수도 있는 것이며, 또한 매사 내 생각이 맞아 보이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생각도 맞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타인의 생각에 끼어들면 대단히 위험해지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내 생각에 끼어들어도 사실은 둘 다 위험에 빠지는 일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비정상이야말로 지극히 정상인 것이다.
어쩌면 세상은 진실로는 밥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진실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없는 진실을 들먹이며 다른 사람들을 현혹시키는데 혈안이 되어 이미 익숙해 있는 상태이다. 정작 진실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오면 이미 그 진실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진실이란 어쩌면 어린아이들을 달래거나 현혹시키는데 사용하는 알사탕 같은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시인들이 세상과 인간의 진실을 찾기 위해 부단히 탐구하며 시를 쓴다고도 한다. 지나가던 소가 들으면 박장대소할 일이다.
세상의 얼굴은 착각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또한 세상의 속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무수한 변화로 도무지 답이 없는 지경에 와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 수백 년 수천 년을 그렇게 굴러왔고 앞으로도 인류가 살아남는다면 아마도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그러니 세상이 왜 이러냐고 세상에 묻지 말자. 그러니 사람들이 왜 이러냐고 사람들에게 묻지 말자. 세상도 세상을 잘 모르고 사람도 사람을 잘 모른다. 우리도 세상도 의혹 투성이의 존재들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무엇이라도 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의 착각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많을 테니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몰랐음을 깨닫고 남몰래 부끄러워할 수도 있을 테니까. 내 눈과 내 지식과 내 상식으로는 당장은 그렇게밖에 판단할 수가 없지만, 당연히 그것은 정답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고, 더욱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공자님의 말씀 중, ‘안다’는 것은 기껏해야 내 현재의 판단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과연 누가 ‘안다’ 할 수 있을까. ‘안다’는 것은 ‘착각한다’는 말의 다른 말이 아닐까.
-아라쇼츠 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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