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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구절초는 어쩌다 피어 흔들릴까

-민주화공원에 잠든 장기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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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편집부(민주화공원)

중간

생전의 장기표 선생

  

강연 후 잡아본 김지하 시인의 손은 어머니 손처럼 따뜻했다. 행사 후 잡아본 김근태 의원의 손은 아이의 손처럼 부드러웠다. 김씨돌 병실에서 뵌 장기표 선생의 얼굴은 딱 동네아저씨였다. 어쩌다 부닥친 인연들이지만 따스하게 다가왔던 세 분이 모두 떠나셨다. 나는 민주화를 외치다 거리에서 돌멩이에 맞아 죽을 뻔하기도 했으나, 이후 나는 민주화를 외치던 그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볼 기회가 없었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의 변화가 소용돌이친다.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러나 절대로 변화하지 않으려는 항심恒心도 대나무뿌리처럼 질기게 살아있다.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도 당장에는 필요한 변화가 아니라는 것이며 어쩌면 잘못된 변화라는 것일 터이다. 변하지 않으면 앉아서 죽을 수도 있다지만 그것은 죽어가는 순간에나 닥쳐야 비로소 통감할 부분일 것이다. 어쨌거나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들에게 매서운 돌팔매질 하는 일로 우리 사회는 한없이 바쁘다.


5b66bce030d4d2c0a16448e85413990d_1742119093_8326.jpg2019년 5월 어느날, 김씨돌 선생의 깜짝 영상을 찍기 위해 SBS가 마련한 프로그램(이큰별 PD) 중 몇 분을 김씨돌 선생이 입원 중인 성모병원으로 모신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예기치 않게 장기표 선생을 처음 뵈었다. 김씨돌(본명 김용현) 선생은 불행하게도 산 속 집 근처 나무에서 떨어져 한참 늦게서야 발견되어 겨우 뇌수술을 받았고 당연히 수술 후 상태는 좋지 않았다. 나는 그의 책을 출판하고 있던 관계로 이 PD로부터 병원으로 동시에 호출을 받았다. 휠체어에 실려있는 김씨돌 선생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였다.


장기표 선생에 대해 엇갈린 평가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장기표 선생에 대한 선입견이나 특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김씨돌 선생은 장기표 선생을 뜻밖에 만나자(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다.)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만남 자체가 감동적이기도 하였으나 평생 동안 참고 있었던 설움이나 울분도 한꺼번에 터졌을 것이다. 김씨돌 선생의 글들에는 줄곧 보살핌을 받았던 이승훈 신부만큼은 아니더라도 장기표 선생의 이야기도 여러 번 등장한다. 장기표 선생은 마치 가족처럼 김씨돌 선생의 어깨를 감싸안아 주었다. 


5b66bce030d4d2c0a16448e85413990d_1742119113_1449.jpg인생은 드라마이고 그래서 연출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매번 고도의 연출을 시도하기도 하고, 혹은 그러다 저급한 수준의 연출로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판단에 장기표 선생의 인생에는 이 연출이 아예 빠져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인간적인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는 듯 보였고, 자신의 본능적인 판단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래서 성공이고 출세이고 대권이고 할 것 없이 어느 것 하나 그분을 향해 다가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방송을 통해 장례식장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컴퓨터를 열고 그분과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아직도 나는 내 할말을 다하지는 못할 것이다. 할말 다하고 사는 세상은 물론 어디에도 없겠지만 그래도 할말은 하고 사는 세상이 되어야 비로소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게 아니면 아직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든 그 무엇으로든 후진국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잘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직 후진국이다. 서로 싸움질에 빠져 내 편이 아닌 상대는 무조건 죽일 놈이 되는 야만적 후진국이다. 증오와 저주로 물든 나라, 이해와 사랑과 양보가 빠진 나라,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절대 빛을 보지 못하고 음지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사라지고 마는 안타까운 후진국이다.


왜 우리는 인물을 키우지 못할까. 왜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일까. 그러면서도 저만이 지식인인 양, 지성인인 양, 선구자인 양, 선각자인 양, 거드름을 피우는 것일까. 세상에는 답도 방향도 없다. 세상에는 진리도 진실도 없다. 세상에는 정의도 불의도 없다. 그래서 마구잡이 주장도 있을 법한 이유가 되기도 할 테지만, 서로서로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그러고서도 쓸만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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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하게 살아있어야 할 문학마저 이미 정치 속으로 스스로 헤엄쳐 들어간다. 시조차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는 판이 되어가고, 어딘가에 들러붙어야만 겨우 목숨과 체면을 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와 있다. 어차피 세상도 인류도 그 끝이 뻔히 보이는 지경이라면 어찌한들 무슨 상관이랴만. 한국시는 이대로 그냥 썩고 말 것인가. 제 혼자 잘난 맛으로 무엇을 살려낼 수 있을까. 아주 팍 썩어야 훗날의 밑거름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구절초는 어쩌다 피어 흔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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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이현성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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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장기표선생을 뵐 줄 몰랐네요.
미국에서 공부할 때 1년여 뵈며 좋은 말씀 들었었는데, 그리고 얼마전 돌아가셨다는 소식 듣고 안타까워 했는데 여기에서 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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