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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無常한 세계에 솟는 無常한 산들

-난쟁이들이 사는 동네에서는 산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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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 호수공원, 이하 2025년 7월 9일의 청라 호수공원 이미지들.
 
장종권 | 시인·본지 발행인
 
어려서 세상천지가 넓은 들뿐인 줄 알았다.
점차 셈드니 산도 보였다. 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스승이신 강우식 시인의 이행시 「김제평야」이다. ‘장종권에게’라는 부제가 달려 있으며, 시집 『살아가는 벽』에 실려 있다.
 
필자는 김제평야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보냈다. 아침이면 들판 위로 떠오르는 함지박만 한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고, 동진강 하구로 달려나가 밀려드는 바닷물을 지켜보며 거대한 자연의 힘에 몸서리치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 세상은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이지 않던 나지막한 산들이 들판 너머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쓰디쓴 인생도 시작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웬만하면 고향을 떠나서 살 일은 아니다. 고향이라면 제 밥 고스란히 찾아 먹을 일도 타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집 나가보아야 개고생’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이역만리 타국으로 나가보아야 고생만 죽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그런데 사람은 집에서만 살 수가 없고, 고향에서만 살 수도 없고, 내 나라에서만 살 수도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저마다 살아가야 할 사정이 있고, 떠나야 할 이유가 있다. 그래서 내 집을 떠나고, 내 고향을 떠나고, 내 나라를 떠난 사람들은 남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더 강하게 버텨야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에 시달리곤 한다. 떠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이지만, 동시에 낯선 세상의 산들을 하나씩 넘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화합을 이야기하고 고향 타향이 어디 따로 있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말은 그렇다. 그러나 그 말도 상황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고, 더구나 그 마음속은 가히 짐작하기도 어렵다. 누구나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같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이 달라서 옳다는 기준도 다르고, 그르다는 기준도 다르다. 세상의 기준이 따로 존재하고 개인의 기준도 따로 존재한다. 어제 옳았던 것이 오늘은 그르기도 하고, 오늘 그르다고 여겼던 것이 내일은 옳은 것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세상의 답이다.
 
여기에는 근거가 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이다. 흔히 인생은 덧없는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常)의 진리로 들어가면 그 의미는 훨씬 깊어진다. 주역에서 말하는 역(易)의 이치와도 다르지 않은 무상 본연의 의미가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리 영원을 말해도 우리의 경험계 안에서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의 진리이다. 우리의 몸이나 모든 물질 현상은 순간적으로 명멸하는 그 무엇들의 일시적인 집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지극히 짧은 순간도 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우리의 마음은 몸보다도 더 무상하게 변하는 불안정한 흔들림에 지나지 않는다. 기쁨이 슬픔으로 바뀌고,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며, 확신이 의심으로 바뀌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들조차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상하다는 것은 인생무상이라는 말에서 흔히 느끼는 염세적인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나의 진실한 모습을 인정하는 일이다. 세상이 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며, 사람이 변하는 것도 반드시 비난받아야 할 일은 아니다. 이 논리는 그대로 세상만사에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무상이라는 말은 '상(常)한 것, 즉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뜻이다. 그러니 전혀 무상하지 않은 척 자신을 다잡아가는 세상 사람들을 지켜보며 변하라, 바뀌어라 주문할 일도 아니다. 그들이 우주적 원리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지 지켜보는 일이 오히려 더 의미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생기는 산 하나, 눈 감았다가 뜨고 나면 어느새 또 서 있는 산 하나.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산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러나 그 산들을 억지로 넘다 보면 다 넘기도 전에 먼저 쓰러지기 십상이다. 산을 넘는 일이 인생의 전부일 수는 없다. 산이 생겨났다고 해서 반드시 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 산들을 부담스럽게 생각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늘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이라고 해서 영원히 그 자리에 서 있으리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산들 역시 어느 날 갑자기 거품처럼 소멸될 것이므로. 내 어린 시절의 드넓은 김제평야는 언제나처럼 끝없이 펼쳐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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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이성필 기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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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이 덧없음으로만 알고 있었네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로 생각하니 참, 마음이 가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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