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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당신은 지금 황무지로 가는 열차에 탑승했다

―문화예술 지원정책과 기득권의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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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 | 시인·본지 발행인 

 

옳은 게 무엇이냐? 없다. 틀린 게 무엇이냐? 없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냐? 모른다. 사회의 정의란 무엇이냐? 개떡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이 아리송해져 간다. 배운 대로 살다 보면 억울한 일 천지이고, 그동안 옳다고 믿었던 것조차 잘못 배웠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는 환멸을 넘어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다음 세대에는 무엇을 남겨주어야 하는가. 길도 빛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예술작품을 평가한다는 것은 본래부터 무모한 일인지도 모른다. 예술의 가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대중의 평가와 후세의 판단도 서로 다르다. 오늘 인정받지 못한 작품이 훗날 걸작이 되기도 하고, 당대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예술의 가치를 서둘러 결정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난한 예술인들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예술 지원정책을 시행하면서, 작품의 가치를 심사하고 지원금을 배분하는 일이 제도화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창조적인 문화예술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자칫 지원사업을 운영하는 기관과 심의위원들에게 새로운 권력을 부여하는 장치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의 문화재단을 살펴보면 심의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들이 있다. 심의위원 선정 기준을 마련하고 이해충돌을 방지하며 평가 결과를 공개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마땅히 박수를 보낼 일이다.

 

그러나 일부 지원사업에서는 심의위원 선정 과정과 평가 기준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거나, 심의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진다. 심사위원의 전문적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 판단이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는지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의 가치를 수치로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평가 절차까지 불투명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작품의 우열을 판단하기 어려울수록 오히려 심의의 원칙과 절차는 더욱 분명해야 한다.

 

지원받는 예술인에게 문화재단과 심의위원이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원금은 심의위원의 사유재산도 아니고 문화재단의 시혜도 아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 재원이다. 그러므로 지원의 권한에는 반드시 설명과 책임이 따라야 한다.

 

생명체의 본질에는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욕망이 없다면 생명은 성장하기 어렵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 역시 생존을 위한 본능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 한다면 그 욕망은 타인의 삶을 위협하는 힘으로 변질된다.

 

건강한 욕망은 창의적이고 생산적이어야 한다. 나의 성취가 타인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문화예술 지원정책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사람들의 활동을 유지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예술가들이 성장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기득권은 반드시 부당하게 형성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랜 노력과 성취를 통해 얻은 지위도 있다. 그러나 그 지위를 자신의 권리로만 여기고 다른 사람의 진입을 막기 시작한다면 기득권은 사회 발전의 장애물이 된다. 진정한 실력과 성취를 가진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재능과 도전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새로운 세대의 등장에 박수를 보내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문화예술계에도 이러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미 지원받은 사람이 다시 지원받을 수는 있다. 뛰어난 작품과 지속적인 활동에 대한 지원을 무조건 제한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지원 기회가 일부에게 반복적으로 집중되고 새로운 예술인들에게는 진입의 문턱조차 높다면 그 제도가 건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지원사업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심의위원 선정과 평가 기준은 투명해야 하며, 이해관계에 따른 영향력을 차단할 장치도 필요하다. 심의 결과에 대한 설명과 이의 제기 절차 역시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원받지 못한 사람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다. 한 번의 탈락이 예술가의 가능성까지 부정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민의 혈세로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운영하는 분들에게 간절히 부탁드린다.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권한을 가진 동안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권한이 사라지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이 내린 판단과 그 결과뿐이다.

 

공적 권한은 개인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공정성을 생략하거나, 관행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구조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 편리한 행정이 반드시 올바른 행정은 아니다.

 

내는 사람은 끝없이 내고, 쓰는 사람은 끝없이 쓰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지원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회조차 없고, 지원받는 사람은 반복해서 혜택을 누리는 구조가 과연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길인가.

 

물론 모든 지원사업이 불공정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의 잘못된 관행이라도 오랫동안 방치된다면 그것은 제도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예술가들이 작품보다 심의위원의 성향을 먼저 살피고, 창작보다 지원사업의 선정 가능성을 더 고민하게 된다면 이미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문화예술 지원의 목적은 예술가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자유롭게 성장하도록 돕는 데 있다. 지원기관이 예술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의 주인은 창작자이며, 그 가치를 오랫동안 판단하는 것은 결국 사회와 독자, 그리고 후세의 몫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암묵적인 전횡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황무지로 몰고 가는 열차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공정한 경쟁의 틀을 만들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며,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의 판단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다음 세대에 남겨줄 최소한의 책임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언을 내뱉어도 쉽게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사실 또한 잘 안다. 제도를 바꾸는 일보다 익숙한 권한을 유지하는 일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황무지로 가는 열차에 탑승한 것을 알면서도 창밖의 풍경만 감상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신이 그런 식으로 폼나게 산다고 해서 당장 나라가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지나간 자리에서 누군가의 미래가 사라지고 있다면, 그 나라는 이미 조금씩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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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이성필 시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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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과 기득권이 판치는 세상이 개탄스럽습니다.
공정과 평등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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