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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바야흐로 봄바람은 불고 있다, 제일 먼저 피는 꽃

―봄꽃보다 먼저 피어나는 인간의 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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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군 송산면 삼산리 회화나무 밑

 

장종권 | 시인·본지 발행인

 


“얘야, 저기 저 관모봉 위에

울긋불긋한 것이 벌써 진달래냐?”

 

“아이 엄니도

무슨 진달래가 벌써 피겠어요.

오늘 아침 애기씨가

빨간 블라우스를 찾더니

그 블라우스가 보이지 않네요.”

 

 

산본 수리산 아래에 사는 김동호 시인의 시집 『수리산 연작』에 실린 「제일 먼저 피는 꽃」이다.

 

봄이 오면 먼저 피는 꽃들이 있다. 목련,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 같은 이름 있는 꽃들만 피는 것은 아니다. 이름 모를 들꽃들도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일으키며 앞다투어 피어난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흔히 소생(蘇生)이라고 말한다.

 

소생은 죽어가던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소생이라는 말 앞에는 언제나 견디기 어려운 겨울이 숨어 있다. 혹독한 추위와 긴 침묵을 견뎌낸 뒤에야 비로소 생명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봄꽃이 우리에게 주는 환희는 어쩌면 일종의 빙의(憑依) 현상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생명력이 되살아나는 듯한 기쁨을 느낀다. 꽃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고, 꽃의 소생을 자신의 소생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꽃보다 우리의 몸이 먼저 봄을 알아차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이 물러가기도 전에 몸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잠들어 있던 감각이 깨어나고, 무심하던 마음에 까닭 모를 설렘이 찾아온다. 이것이 바로 애기씨의 빨간 블라우스다.

 

시인은 진달래보다 먼저 피는 꽃을 산에서 찾지 않았다. 애기씨의 몸에서 찾아냈다. 관모봉을 붉게 물들인 것은 진달래가 아니라 봄을 맞이한 젊은 생명의 눈부신 몸짓이었다.

 

봄은 생명이 눈뜨는 계절이다. 만물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과 번식의 활동을 시작한다. 생명은 자신을 유지하고 다음 생명으로 이어가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 본능의 가장 강력한 표현 가운데 하나가 성(性)이다.

 

성은 단순한 육체적 욕망에 머무르지 않는다. 생명이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근원적인 충동이며, 존재가 자신의 힘을 밖으로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봄을 맞이하여 피어나는 어떤 꽃보다도 인간의 몸속에서 깨어나는 생명의 에너지가 더욱 뜨겁고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것은 꽃보다 먼저 피어나는 우리의 몸꽃이다.

 

꽃은 무엇을 위해 피는가. 아름다움을 자랑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꽃은 식물이 번식하기 위한 생식기관이며, 수분을 매개하는 생명체를 끌어들이는 색채와 향기를 지니기도 한다. 그러므로 꽃의 아름다움에는 생존과 번식을 향한 절실한 움직임이 숨어 있다. 꽃은 유혹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겨울이 채 물러가기도 전에 서둘러 피어나겠는가. 때로는 뒤늦게 찾아온 추위에 꽃잎이 얼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꽃은 추위가 완전히 끝나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피어야 할 때가 오면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연다.

 

그것은 무모함이 아니라 생명의 방식이다. 살아 있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또 다른 생명을 향해 나아간다. 봄꽃은 그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그래서 봄꽃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강렬하다.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짜릿하게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그 꽃에 반응하는 인간의 몸속에도 그에 못지않은 생명의 힘이 숨어 있다. 어쩌면 우리는 꽃이 아름다워서 설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설레고 있는 자신의 몸으로 꽃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감추는 방법을 터득한 영물이다.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이성과 품격을 갖추었다고 믿으며, 본능을 드러내기보다 절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그래서 인간은 때로 자신의 생명력을 다른 대상에 옮겨놓는다. 꽃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하고, 봄바람을 맞으며 가슴이 설렌다고 말한다. 정작 자신의 몸속에서 피어나는 꽃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의 몸꽃을 숨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살며시 눌러두는 방법도 안다. 사회적 규범과 도덕, 체면과 품격이라는 이름으로 그 에너지를 다스리기도 한다.

 

그러나 감춘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억누른다고 생명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절제된 모습으로, 때로는 눈부신 열정으로, 때로는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충동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이 인간의 생명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육체를 지닌 존재다. 아무리 점잖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그 몸속에는 계절을 알아차리고 생명에 반응하는 본능이 살아 있다.

 

김동호 시인의 「제일 먼저 피는 꽃」은 바로 그 사실을 짧고도 유쾌하게 보여준다. 관모봉의 진달래를 기다리는 노인의 눈과 빨간 블라우스를 찾아 입은 애기씨의 몸은 서로 다른 봄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결국 같은 생명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진달래는 아직 피지 않았다. 그러나 애기씨의 봄은 이미 시작되었다. 산에 꽃이 피기 전에 사람의 몸에 먼저 꽃이 핀 것이다.

 

봄은 달력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산과 들에 꽃이 피었다고 비로소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생명이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느끼는 순간, 그곳에서 이미 봄은 시작된다.

 

꽃보다 먼저 피는 것은 생명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생명의 꽃은 바로 자신의 몸속에 있다.

 

아무리 감추고 억누른다 하더라도 봄을 맞이한 생명의 에너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겨우내 잠들었던 몸꽃은 다시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바야흐로 봄바람은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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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남태식 시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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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30도에 육박하다가 영하로 뚝 떨어지는, 널뛰듯 하는 봄바람에 마음이 조마조마한 날들입니다. 오늘은 땀 뺐습니다. 내일은 어찌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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