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아닌 말을 자꾸 말이라 우긴다
―문화예술 지원사업의 공정성과 설명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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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 | 시인·본지 발행인
어불성설(語不成說).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말을 꾸며도 논리와 근거가 없다면 제대로 된 설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자에는 말을 뜻하는 글자가 여럿 있다. 언(言), 어(語), 설(說)이 그렇다. 이 글자들은 실제로 다양한 의미와 용법을 지니지만, 필자는 이를 말의 세 가지 모습으로 구별해 보고 싶다.
언(言)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고, 어(語)는 그 사람의 생각과 판단이 담긴 말이며, 설(說)은 일정한 논리와 근거를 갖추어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는 말이라고 해보자. 물론 이것은 엄밀한 문자학적 해석이라기보다 오늘의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비유이다. 이렇게 구별한다면 어불성설이란 단순히 말이 안 된다는 뜻을 넘어, 아무리 말을 그럴듯하게 늘어놓아도 그것이 합당한 설명이 되지는 못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말을 한다. 그러나 말한다고 해서 모두 설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것과 상대방이 제기한 문제에 답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변명을 늘어놓는 것과 사실을 밝히는 것 역시 다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이 구별이 자주 무너진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말은 별다른 근거가 없어도 설명으로 받아들여지고, 힘없는 사람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말해도 불평이나 불만으로 치부되는 일이 있다. 권력자의 언(言)은 순식간에 설(說)이 되고, 힘없는 사람의 설(說)은 한낱 언(言)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대단한 권력도 아닌 작은 권한 하나를 쥐고서 마치 세상의 모든 판단을 독점한 듯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공적 책임이 아니라 개인의 우월한 지위로 착각하는 순간, 그 권한은 전횡의 도구가 된다.
지역 문화재단의 문화예술 지원사업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사례들이 있다. 일부 지원사업의 심의 결과를 두고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예술인들이 있다. 특정인에게 지원이 집중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물론 반복 선정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불공정한 심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작품의 수준과 사업의 성격, 신청자의 역량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혹이 제기되었다면 그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 마땅하다. 결과가 정당하다면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심의의 공정성을 묻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답변이 기껏해야 “탈락한 사람들은 원래 다 그렇다”는 식이라면 어떻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심의 결과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모두 옳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탈락한 사람이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문제의 내용을 살펴보지도 않고 불평으로 몰아가는 태도 역시 옳지 않다. 불만을 제기한 사람의 신분이나 처지가 아니라 그가 제기한 문제의 사실관계와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 심의에 문제가 없었다면 그 사실을 설명하면 된다. 문제가 있었다면 인정하고 개선하면 된다.
그것이 공적 기관의 자세다.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일은 본래 어려운 작업이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고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다. 심의위원 역시 자신의 경험과 미적 판단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완벽한 심의는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완벽한 심의가 어렵다는 사실이 불투명한 심의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평가의 주관성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절차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더욱 엄격하게 확보해야 한다. 심의위원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는가. 작품은 어떤 항목으로 평가되었는가. 각 평가 항목의 배점은 무엇이며 실제 심의에서는 어떤 기준이 적용되었는가. 이해관계가 있는 심의위원은 적절하게 배제되었는가.
이러한 질문에 합당한 답변이 가능해야 한다. 필자는 심의 결과에 대한 평가 항목별 점수와 판단 근거가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충분히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정보와 심의의 독립성을 보호해야 할 부분은 보호하되, 공적 재원을 배분하는 과정의 정당성까지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감추어서는 안 된다.
심의위원도 자신의 전문성과 명예를 걸고 평가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 판단에 대한 직업적·윤리적 책임 역시 감당해야 한다. 심의비를 지급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심의에 참여하면서 그에 따르는 책임은 회피하려는 태도다. 명성은 책임을 감당할 때 비로소 명성이 된다.
문화재단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 심의위원을 선정하고 심의 절차를 설계하며 최종 결과를 발표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심의의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심의위원에게 떠넘길 수도 없고, 심의위원의 판단이라는 이유로 제기된 의혹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문화재단은 예술인 위에 군림하는 기관이 아니다.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지역 문화예술의 발전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공적 기관이다. 지원금 역시 재단의 돈이 아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공적 재원이다. 그 돈을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지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에는 반드시 공정성과 설명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
공정성은 단순히 공정하다고 주장한다고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공정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절차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 심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지원사업의 본래 목적도 흔들린다. 예술인들이 작품을 발전시키는 일보다 심의위원의 성향을 살피고 재단과의 관계를 고민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건강한 문화예술 환경이 아니다.
예술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예술인들의 자유로운 창작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문화재단은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귀찮은 존재로 여길 것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목소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불만이 정당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불만이 부당한 것도 아니다. 비판을 받는 기관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비판하는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의 내용을 검토하는 일이다.
권한을 가진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힘없는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언제나 틀린 것도 아니다. 말의 가치는 말하는 사람의 지위가 아니라 그 말이 담고 있는 사실과 논리, 그리고 책임에서 나온다. 공적 권한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의 말을 더욱 엄격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설명해야 할 자리에서 변명하지 말고, 답해야 할 자리에서 상대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권력을 가졌어도 말이 안 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억지는 억지일 뿐이다. 말 아닌 말을 자꾸 말이라 우긴다고 해서 그것이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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