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를 벗기듯 역사의 상처를 벗기다—조희 첫 시집 『양파 유령』’
-달아실 발간. 192쪽, 정가 12,000원.
본문

개인의 상실에서 사할린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적 애도로
시인 조희의 첫 시집 『양파 유령』이 달아실출판사에서 출간됐다. 2022년 『내일을여는작가』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이후 내놓는 첫 시집으로, 달아실시선 119번이다. 4부에 걸쳐 모두 55편의 시를 수록했다.
『양파 유령』을 관통하는 중심어는 ‘상실’과 ‘기억’, 그리고 ‘애도’다. 그러나 시인이 들여다보는 상실은 한 개인의 내면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상처와 이별에서 출발한 시선은 사할린 강제동원 한인들의 삶과 디아스포라의 역사로 나아가고, 다시 오늘의 일상과 유년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조희는 「시인의 말」에서 “어제를 추모하는 병을 앓고 있다”며 “이 길 끝에 빛이 있으리라 믿으면서/참꽃과 헛꽃 사이를 오간다”고 말한다. ‘어제를 추모하는 병’은 지나간 시간을 단순히 그리워하는 감상이 아니다. 사라진 사람과 잊힌 역사를 현재의 언어로 다시 불러내려는 시인의 태도에 가깝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2부 ‘사할린 아리랑’이다. 「사할린」, 「사할린 아리랑」, 「눈은 겨울을 믿지 않는다」 등의 작품을 통해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으로 사할린에 끌려갔다가 해방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한인들의 삶을 시의 언어로 소환한다. 일부 작품에서는 사할린 동포 시인 이채인, 장윤기, 김 마르타의 문장을 인용하고 출처를 밝힘으로써 개인의 목소리와 역사적 증언을 연결한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방민호 서울대 교수는 이러한 방식을 개인의 애도라는 사적 언어가 역사적 애도라는 공적 언어에 빚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윤리적 제스처’로 평가한다.

시집의 제목을 이해하는 열쇠는 1부에 수록된 「양파 또는 은유」에서 찾을 수 있다. 양파는 껍질을 계속 벗겨도 여전히 양파다. 사람 역시 자신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기억의 껍질을 벗겨내지만 끝내 자기 존재의 실체에 완전히 도달하지 못한다. 이 ‘양파’의 이미지는 사라진 뒤에도 기억 속에서 떠도는 ‘유령’의 이미지와 만나면서 시집 전체의 중요한 은유를 형성한다.
1부가 이별과 사고 이후 몸에 남은 감각을 통해 개인적 상실을 들여다본다면, 3부는 병원과 편의점 등 일상의 공간에 탈북과 이산의 기억을 겹쳐 놓는다. 마지막 4부에서는 부여 금강을 중심으로 유년의 기억과 자신의 근원을 찾아간다. 개인의 몸에서 역사로, 역사에서 일상으로, 다시 고향과 존재의 뿌리로 돌아오는 여정인 셈이다.
문학평론가 이숭원은 조희의 시에서 “강물이 내 몸에 은린(銀鱗)을 유전으로 남겼다”는 구절에 주목하며, 삶이 모래처럼 부서지는 순간에도 견뎌내는 시인의 강인함을 읽어낸다.
시집 밖에서 이어지는 실천도 눈길을 끈다. 조희 시인은 『양파 유령』의 인세 일부를 독립운동가인 고려인 후손을 지원하는 데 기부하기로 했다. 시 속에서 불러낸 역사적 상처와 기억을 현실의 작은 실천으로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양파 유령』은 결국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잊었으며,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겹겹이 벗겨내도 사라지지 않는 양파처럼 사람에게는 끝내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조희의 첫 시집은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 개인의 아픔과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상처를 한 자리에서 만나게 한다.
조희 시인은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2024년 아르코 문학창작산실 지원금을 수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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