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순 첫 시집 『늘 푸른 나무』 출간
―소박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정겨움과 생명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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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강봉순의 첫 시집 『늘 푸른 나무』가 리토피아포에지 174번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2023년 《사상과 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자연과 일상, 가족과 이웃, 여행과 신앙을 꾸준히 시로 기록해 온 강봉순 시인이 그동안의 작품을 한 권에 묶었다. 시집에는 삶의 소박한 순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안에 깃든 생명과 사랑의 의미를 발견하는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강봉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설렘”이라고 밝힌다. 쉽게 흘려보낼 수 없었던 세월의 여러 가닥을 씨실과 날실처럼 가슴에 쌓아두었다가 비로소 글이라는 바람에 실어 보낸다는 것이다. 시인은 삶의 소박한 일상과 자연 속 만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찰나를 표현하는 일을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시가 화려한 관념이나 난해한 언어보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구체적인 풍경과 사람의 체온을 중심에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늘 푸른 나무』는 모두 4부로 구성되었다. 제1부 ‘햇살’에는 봄과 꽃, 햇살, 가족과 그리움, 밥과 사랑을 노래한 작품들이 실렸다. 제2부 ‘녹우’는 비와 무더위, 말과 편견, 장터와 여행 등 일상의 다양한 풍경을 담았다. 제3부 ‘천고’에서는 가을과 여행, 우정과 정, 예술과 신앙을 통해 삶의 성숙을 돌아본다. 제4부 ‘백치’에는 병실과 죽음, 노년과 시간, 어머니에 대한 기억, 역사와 문명에 대한 사유가 깊이 있게 펼쳐져 있다.
표제작이 암시하듯 이 시집의 중심에는 오랜 세월 변함없이 푸른빛을 지키는 나무와 같은 생명 의식이 자리한다. 시인은 자연을 단순한 관찰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꽃과 나무, 비와 바람, 갈잎과 눈은 저마다 사람과 같은 표정과 목소리를 지닌다. 「밤꽃」에서는 밤꽃을 수줍은 새아씨로 바라보고, 「봄날의 향연」에서는 햇살과 이슬방울, 제비와 동네 아이들까지 모두 봄의 축제에 참여하는 존재로 그려낸다. 자연은 강봉순의 시에서 인간과 분리된 배경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말을 건네는 생명의 이웃이다.

강봉순 시의 또 다른 미덕은 일상적인 말과 소재를 시적 언어로 바꾸는 친근한 감각이다. 「밥은 삶이다」에서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안부이자 인정이며 인생을 이어주는 힘이다. “밥 먹었니”, “밥 한번 먹자”, “밥 잘 챙겨 먹어라” 같은 익숙한 표현 속에 한국인의 생활과 정서를 담아낸다. 「장터국수」에서는 저렴한 잔치국수 한 그릇에 담긴 시장 사람들의 허기와 인심을 포착하고, 「금자 씨의 행복한 밥상」에서는 고춧잎, 도토리묵, 죽순, 오이소박이 같은 음식들을 한바탕 흥겨운 공연의 주인공으로 되살린다.
시집에는 재치와 유머도 풍성하다. 「꼬리뼈 없는 것이 다행이야」에서는 낙타를 타다 생긴 통증을 익살스럽게 풀어내고, 「노벨상과 천상」에서는 노벨문학상과 신앙의 ‘천상’을 대비해 자신을 낮추며 웃음을 자아낸다. 「편견의 방」에서는 편견을 아무도 드나들 수 없는 좁은 방의 방장으로 형상화하고, 「말·1」과 「말·2」에서는 무책임한 언어가 사람에게 남기는 상처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공격적이지 않다. 시인은 타인의 결함을 고발하기보다 그 결함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돌아보며 반성과 성찰의 자리로 나아간다.
가족과 고향을 다룬 시편에서는 강봉순 시의 진솔한 감정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버지 마음」은 자식이 제 길을 잘 걸어가기를 말없이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렸으며, 「임연수 한 마리」는 딸이 온다는 소식에 장터를 돌며 생선을 준비하던 어머니의 마음을 담았다. 자신은 생선의 머리와 꼬리만 먹으면서 흰 속살을 딸에게 내어주던 어머니의 모습은 한 끼의 밥상에 새겨진 오래된 사랑을 되살린다. 화려한 수사보다 구체적인 기억 하나가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행은 시인에게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통로다. 내몽골의 초원과 사막,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나일강, 강릉과 욕지도, 여수와 동묘시장이 시의 공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시인의 여행은 명소를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낙타의 선한 눈망울에서 순리를 발견하고, 피라미드 앞에서 인간의 유한함과 영원에 대한 욕망을 성찰하며, 낯선 시장에서는 서민들의 삶과 자유를 만난다. 「나일강의 침묵」은 거대한 문명과 인간의 짧은 생을 대비하며 역사의 유구함 앞에 선 인간 존재를 돌아보게 한다.
신앙은 강봉순 시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정신적 축이다. 그의 시에서 신앙은 관념적인 교리나 일방적인 찬양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삶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이며, 다시 희망을 찾게 하는 내면의 힘으로 작용한다. 「나의 리더」에서는 흔들리는 자신을 붙잡아주는 절대자를 찾고, 「카네기 홀의 찬양」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삶의 선물을 감사와 은혜로 받아들인다. 병실과 노년, 죽음과 시간의 문제를 다룬 시들에서도 절망에 머물지 않고 삶의 마지막까지 의미와 기회를 찾으려는 자세가 이어진다.
해설을 맡은 장종권 시인은 강봉순 시의 작품세계를 ‘정겨움의 미학’과 ‘생활 서정과 생명의 영성’으로 설명한다. 강봉순의 시는 완벽하고 매끄러운 것보다 조금 굽고 서툰 것, 손해 보는 듯 살아가는 사람, 사람 냄새가 밴 풍경을 가까이한다. 「어설픈 정겨움」에서 시인은 곧게 뻗은 나무보다 굽은 등 나무를, 곧게 흐르는 수로보다 굽이굽이 흐르는 냇물을 더 따뜻하게 바라본다. 이는 효율과 경쟁을 앞세우는 시대에 인간적인 온기와 공동체적 정을 되찾으려는 시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시집의 후반부로 갈수록 시간과 노년, 죽음에 대한 성찰도 깊어진다. 「다섯 밤 남았네」, 「인생의 길이」, 「막장 달력」, 「끝점」 등은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남겼는지 묻는다. 그러나 시인은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지금 이 순간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 시집의 푸르름은 단순히 젊음의 빛깔이 아니다. 상처와 노년, 상실과 고통을 지나서도 생명을 향해 마음을 여는 지속적인 희망의 색깔이다.
강봉순은 2023년 하나로 선 《사상과 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2025년 강원시조시인협회 신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강원문인협회와 홍천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교육공무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한 뒤 2025년 퇴직했으며, 교육 현장과 일상에서 만난 사람과 자연, 여행과 신앙의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늘 푸른 나무』는 삶의 거창한 사건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작은 순간을 오래 바라보게 하는 시집이다. 봄날의 햇살, 비 오는 날의 상념, 장터국수 한 그릇, 어머니가 구워주던 생선 한 토막, 낙타의 맑은 눈동자와 굽은 나무 한 그루가 시인의 언어를 통해 새롭게 살아난다. 이 시집은 삶이 비록 완전하지 않더라도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오래 푸르게 남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서명: 『늘 푸른 나무』
지은이: 강봉순
총서: 리토피아포에지 174
펴낸곳: 리토피아
발행일: 2026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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