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조를 이야기할 때 홍성란이라는 이름은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작품은 오래전부터 교과서에 수록되며 대중과 만났고, 평단에서는 '시조미학의 전위'이자 '현대시조의 중요한 표지'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단순히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홍성란은 시조라는 오래된 형식 속에서 현대인의 감각과 사유를 가장 자연스럽게 호흡하게 만든 시인이기 때문이다.
『즐거운 징후』는 제목부터 독특하다. '징후'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를 예감하는 미세한 신호이며, '즐거움'은 그 신호를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이다. 시인은 거대한 사건보다 일상의 작은 움직임 속에서 생명의 숨결을 발견하고, 그 미세한 떨림을 시조라는 가장 절제된 언어로 포착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화려하게 외치기보다 조용히 번져나간다. 한 줄의 언어가 끝난 뒤에도 독자의 마음속에서는 오랫동안 울림이 이어진다.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가장 큰 특징은 '관계의 미학'이다.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 사물과 생명, 시간과 공간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순환 속에서 연결된다. 꽃 한 송이, 곤충 한 마리, 바람 한 줄기, 빗방울 하나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서로를 향해 기울어지고 감싸며 우주의 질서를 이루는 하나의 존재가 된다. 이러한 세계관은 불교적 사유와 동양적 자연관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현대인의 감각으로 새롭게 번역된다.

홍성란의 시조를 읽다 보면 작은 사물들이 거대한 우주와 연결되는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된다. 시인은 사소한 일상 속에서 생명의 원리를 발견하고, 평범한 풍경을 존재론적 질문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것은 거창한 철학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아니라 사물을 끝까지 바라보는 시인의 깊은 시선에서 비롯된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스승이며,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질서 속에 함께 숨 쉬는 생명으로 자리한다.
그의 시조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언어의 절제에 있다. 현대시는 종종 설명과 해석으로 넘쳐나지만 홍성란의 시조는 가장 적은 언어로 가장 깊은 세계를 보여준다. 한 편의 시조는 짧지만 그 안에는 긴 침묵과 여백이 살아 있다. 독자는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뒤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시조라는 형식이 지닌 본래의 힘이며, 홍성란은 그 미학을 현대적으로 가장 성공적으로 계승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번 시집에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도 곳곳에 스며 있다. 경쟁과 속도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도 시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누군가를 앞지르기보다 함께 걷는 삶을 선택하고, 작은 생명 하나도 함부로 지나치지 않는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승자와 패자의 세계가 아니라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들의 공동체이다. 이러한 시선은 독자에게 위로를 주고, 잃어버린 감각을 다시 일깨운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시대이다. 그러나 홍성란의 시조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 줄의 시를 천천히 음미하게 만들며, 소리 내어 읽고 다시 침묵하게 한다. 눈으로 읽는 시가 아니라 귀로 듣고 마음으로 되새기게 만드는 힘이 그의 작품 속에 살아 있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가 잃어버린 느림과 고요의 미학이며, 현대인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치유이기도 하다.
평론가들이 그의 시를 황진이의 시조와 나란히 언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황진이가 고전시조의 미학을 완성했다면, 홍성란은 현대시조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전통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살아 있는 현재로 되살려 놓은 것이다. 그의 시조는 형식은 가장 오래되었지만 감각은 가장 현대적이며, 언어는 가장 절제되어 있지만 사유는 가장 넓다.
『즐거운 징후』는 단순한 시조집이 아니다. 시인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삶의 사유와 자연에 대한 경외, 인간에 대한 사랑, 우주를 향한 깊은 신뢰가 응축된 한 권의 문학이다. 시집을 덮고 나면 독자는 세상이 이전과 조금 달라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무 한 그루와 바람 한 줄기, 곤충 한 마리와 빗방울 하나가 이전보다 더 깊은 의미를 품고 다가온다. 그것이 바로 좋은 시가 가진 힘이며, 홍성란 시조가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즐거운 징후』는 시조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학이며, 가장 한국적인 형식으로 가장 현대적인 감각을 담아낼 수 있음을 증명하는 귀중한 성과이다. 빠른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이 시집은 잠시 걸음을 늦추고 자신과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고요한 쉼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쉼표 끝에서 우리는 낭창거리는 우주의 도(道)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한 사람의 시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너에게 가는 길
물처럼만 흐른다면 이르지 못할 길 없으리 빙 돌아가더라도 막아서 넘치더라도
장쾌壯快한
폭포처럼 닿으리, 나 아닌 나에게
즐거운 징후
해안가 거미집도 저런 집은 처음이라 지나가던 대충大蟲이 들여다보고 있으니, 잘생긴 저 호랑거미 들인 공 있었네
발길 붙들어 맨 건축술 하며 처세술 하며 사로잡힌 대충이야 보건 말건 자는 시늉, 우주의 누가 또 알까 바닷가 이 소식을
알고도 속아주는 그 즐거움이 즐거워 범[虎]은커녕 벌레도 날벌레로나 낚여서, 고요한 호랑거미 가까이 거듭 돌고 돌았네
향낭香囊
눈 녹듯 스러지는 건 눈사람뿐 아니다
너라는 빈자리 그리움도 아득하니
편안한
슬픔이라고 널 불러도 좋을까
우산의 일
한티역 횡단보도 빨간 신호등 앞에서 소나기 만난 엄마는 쪼그려 앉아, 아기 옷에 달린 모자를 씌워주고 있었다
파란 불에 건너온 할머니가 허리 굽혀, 손녀를 감싸안은 외동딸을 감싸자 지나가던 우산 둘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우산이 옹그린 삼대三代를 감싸 주고 있었다
바람만
달맞이꽃 향기 코끝에 묻히고 온 밤
나를 보내지 못해 바람만 보냈다
너 몰래
너에게 안기는 아름다운 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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