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를 보다 > 취미여행

본문 바로가기

취미여행


백두산 천지를 보다

남태식 기행·2

본문

남태식백두산10-1000.jpg

 

 

백두산에, 백두산 천지를 보러 갔다. 백두산에 간다는 것이 백두산 천지만 보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백두산에 간다는 것은 우선 천지를 보러 가는 것이다. 나머지는 천지를 본 이후에의 일. 첫 등반은 2016년에 있었다. 50대 중반이었다. 애초에 해외여행은 예순 지난 은퇴 후에나 하자고 다들 입을 맞췄었는데 갑자기 일정을 당겼다. 더 늦으면 다리에 힘 풀려서 가고 싶어도 못 갈 수도 있다고들 해서였다. 처음 해외여행 이야기가 나온 50대 초반에는 체력이 떨어질 거라는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었는데, 몇 년 새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첫 여행지는 백두산으로 잡았다. 날짜는 1년 후 광복절 연휴. 여유 시간을 충분하게 잡았으나 의외로 선뜻 동행이 가능한 친구는 많지 않았다. 8. 그래도 그때는 여행사에서 이 인원으로 우리끼리 한 팀을 꾸렸다. 최소 2년을 한 반에서 공부한 고등학교 반창들과 함께 하는 첫 해외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남태식백두산4-1000.jpg

 

중국에서 백두산 천지를 오르는 길은 서파, 남파, 북파가 있다. 남파는 인원이 몇백 명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일반 관광객들이 선택하기는 어렵고, 대부분 서파와 북파를 택해서 오르는데 우리는 두 코스를 다 오르기로 계획되었다. 도착한 다음 날인 첫날에는 서파를 먼저 올랐다. 서파는 1400여 계단을 걸어서 오르는 길이다. 호텔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내리던 비는 산에 다 올랐을 때도 그치지 않았고, 천지는 어디에 있는지 말 그대로 천지분간도 되지 않았다. 안개 짙은 저기 어디쯤 천지가 있으리라 대충 눈대중만 하고 조중경계비 이쪽저쪽을 돌면서 이렇게 북녘땅을 다 밟아 보네 실없는 소리들을 하면서 사진만 찍고 내려왔다.

 

 

남태식백두산5-1000.jpg

 

둘째 날에는 북파를 올랐다. 북파는 서파와는 달리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가이드 말로는 아래위의 기온 차가 심해서 일단 가 봐야 안다고는 했지만 언제 비가 내렸던가 싶을 정도로 하루 전과 달리 날이 활짝 개어서 은근하게 기대를 했다. 그래도 그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백두산 천지 정류장에 내렸을 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한국의 가을하늘처럼 맑고 높았다.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서 기다렸다가 올라가서 천지를 보았다. ! ! ! 감탄사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그 맑고도 푸른 물빛이라니! 내려오는데 몇몇 친구들이 이야기하기를 천지를 보려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저 말을 어떻게 이때껏 참고 있었을까. 삼대가? 처음 듣는 말이기도 했고 의아해서 괜히 집안 내력을 혼자 곰곰 따져보다가 웃었다. 그만큼 어렵다는 거겠지.

 

 

이렇게 시작한 해외여행을 코로나 팬데믹 터지기 전까지 매년 갔다. 일단 여행지는 중국으로 잡았다. 2017년에는 황산, 삼청산 트레킹, 2018년에는 장가계 트레킹 및 봉황고성 관광, 2019년에는 백석산, 항산 트레킹에 북경 관광을 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멈췄다. 여행에 동행한 친구들은 매년 늘어서 12, 14명 그리고 2019년에는 18명이 동행했다. 중국 여행 중 우리의 첫 여행이었던 백두산 여행에 함께 하지 못한 친구들 중 일부가 백두산 이야기를 했다. 천지를 봤다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백두산 여행을 갔다 온 주변인들로부터 대부분 천지를 못 보고 왔다는 이야기만 줄곧 들었다고 했다. 팬데믹 풀리면 바로 가자고 했다가 언제가 될지 모른다고 미뤘다가 또 갑자기 일단 적립부터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 준비가 반이다. 준비하고 1년이 안 돼서 기회가 왔다.

 

 

남태식백두산6-1000.jpg

 

7년 만에 백두산 여행이 결정되었다. 동행하는 친구는 14. 첫 여행 때 동행했던 친구 전부에 6명이 늘었다. 날짜는 역시 광복절 연휴로 잡았다. 처음엔 중국의 결정에 조마조마했는데 출발하기 전 막바지에는 태풍 카눈 때문에 마음을 졸였다. 태풍의 속도를 알리는 기상 정보가 매일같이 바뀌어서 더 속을 태웠지만 예정대로 출발했다. 카눈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서 우리 백두산 오를 때는 지나갔으리라 예상했는데, 속도가 느려져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카눈이 우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이번에도 7년 전과 같이 서파와 북파로 두 번 올랐다. 7년 전에는 한정 없이 기다리는 것도 꽤 큰일이었는데 팬데믹 기간 중에 정비를 대대적으로 했던가 거의 기다리는 일 없이 바로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분위기가 7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달라진 건 백두산뿐만이 아니었다. 오며가며 들른 휴게소 등 거의 모든 시설들이 달라져 있었다. 깨끗하고 상쾌해졌다고 표현하면 되려나.

 

 

하지만 7년 전과는 달리 이번 북파에서는 천지를 보지 못했다. 아래에서 출발할 때는 맑은 날씨였으나 올라갈수록 날씨가 궂어져 도착하니 비바람이 다 거셌다. 7년 전 북파에서의 가이드의 말은 기우였지만 이번에는 말 그대로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준비하라고 해서 넣어간 우의를 부랴부랴 꺼내 입고 우산까지 쓰고 나섰다. 7년 전과는 달리 천지 주변의 언덕이 다 정비가 되어서 사고 위험이 없어져서인가 대기 없이 바로 천지 쪽으로 올라갔으나 이번에 북파의 천지는 7년 전의 서파의 천지와 거의 같은 안개 천지였다. 서 있기가 버거울 정도로 바람이 세차서 몇몇 보이는 친구들끼리 그래도 기념은 하자면서 사진을 찍고 한 바퀴 다 돌지도 않고 중간에 내려왔는데 이번에 합류한 친구들 중 몇 명이 내려오지 않고 버텼다. 그 친구들뿐만은 아니었다. 혹시나 하고 천지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천지 주변이 사람들로 꽉 차 있기는 했다.

 

 

이건 아마 하루 전 서파에서의 횡재(?)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전날 서파에서는 올라가는 동안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은 거셌고 오르면서 점점 더 안개가 짙어져 정상 가까이에서는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이번에도 서파에서는 천지를 못 보겠구나 포기하면서 막 세는 계단을 지나 오르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천지가 열린다. 바람이 광장 맞은편에 있는 큰 바위의 안개를 걷으면서 천지를 질러갔다. , 천지가 열렸다. 거짓말같이. 부랴부랴 쫓아 올라가니 이미 주위에는 사람들이 빼곡하여서 눈으로 바로 볼 수는 없었지만 휴대폰을 높이 들었더니 안개가 일부 천지를 덮고 있기는 했어도 윤곽이 뚜렷하게 천지가 보였다. 북파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의 천지였다. 나중에 여럿이 찍은 사진들을 올려놓고 보니 먼저 올라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친구들이 찍은 사진 속의 천지는 푸른 물빛이 짙었다. 그런데 이 횡재의 시간이 딱 20여 분이었다. 그리고 천지는 다시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췄고 몇 번의 바람이 더 있었어도 우리가 머무는 동안 천지는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제서야 천지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걸 실감했다. 그러면 나는? 이번에도 웃었다.

 

 

남태식백두산11-1000.jpg

 

34, 45일의 백두산 여행을 하면서 오며가며 한국인들이 기념할 만한 장소도 다녔다. 2016년에는 연길공항으로 들어가 가는 길에는 두만강, 오는 길에는 용정을, 이번에는 심양공항으로 들어가 오는 길에 광개토대왕비와 왕릉, 장수왕릉 등이 있는 고구려 유적지 집안과 압록강을 들렀다. 백두산에 또 갈 수 있을까. 백두산 천지를 또 볼 수 있을까. 보기는커녕 가기도 쉽지 않겠지만, 돌아와 가끔 생각한다. 백두산 천지를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행운일까. 삼대가 쌓은 덕의 보은일까. 결론 내릴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두 번이나 보았던 백두산 천지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만은 마음이 뿌듯하다. 아마 이것도 사는 동안 사는 힘이 되겠지.


  

Copyright © 한국문화예술신문'통' 기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4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추천한 회원 보기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
상담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