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승/강인규(소설가) > 신문통산문

본문 바로가기

신문통산문


1승/강인규(소설가)

-짧은소설/사진 윤은한

본문

KakaoTalk_20250104_124937506.jpg사진/윤은한 시인

 

강인규

1997년 제주 출생. 2020년 청소년성장 소설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 2020년 조선일보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 작가부문 선정. 2021년 부산국제 영화제 아시아아콘텐츠&필름마켓 스토리 부문 선정. 2021년 코로나19 예술로 기록사업 선정. 계간 《아라쇼츠》 편집위원.

 

 

현실은 여전히 냉혹했다. 연습경기마다 패배가 이어졌고, 승리에 대한 희망은 점점 사그라들었다. 1승을 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매 경기 후 버스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태생이 잘못된 것인가? 은근히 팀을 해체해주기를 바라는 교장 선생님과 학교 운영위원님들,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들까지 우리 편은 아무도 없었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명언은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우리는 다음 해를 대비한 겨울 훈련을 하고 있었다. 성적이 좋은 다른 학교들은 날씨가 따뜻한 남부지방이나 제주도로 전지훈련을 갔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재정적 지원이 없었기도 했지만, 안전상 이유라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전지훈련을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이미 잊혀지거나 불편한 존재일 뿐이었다. 감정은 전염된다고 한다. 그러한 주변의 시선 속에 담긴 감정들은 고스란히 우리들 가슴 속으로 전염되고 있었다. 패배감과 수치심. 미안함과 자괴감. 모멸감과 슬픔같은 감정들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러니 훈련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훈련할 때, 운동장 홈플레이트 쪽 한 구석에는 드럼통에서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훈련을 하다가 손이 시려운 아이들이 잠깐 불을 쬐고 오기 위한 용도였다. 감독님은 우리를 가르치는 사람인지 장작을 구해다가 불을 지피는 사람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야구부 학부모님 중에 건축일을 하는 분이 있어서 폐자재로 남는 나무들을 가져다 쌓아놓은 것을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 감독님과 코치님이 번갈아가면서 나무를 드럼통에 집어 넣으며 불을 때 주었다. 세상에 동네 조기축구 동호회도 아니고. 이게 뭐냐는 볼멘 소리와 불만들이 쏟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야간 훈련이 끝나자, 주장이 우리를 모아 앉혔다. 마치 죽음을 앞둔 사자가 마지막 처절한 절규를 하듯이, 망망대해에서 폭풍우에 떠밀려다니다 침몰을 눈앞에 둔 배를 바라보는 눈빛이 우리들 가슴에 박히고 있었다. 

“우리 정말 열심히 했잖아? 올해가 다 가도록 1승도 올리지 못했지만, 나는 우리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우리가 야구를 시작한 이유를 잊지 말자. 내년에는 반드시 좋은 성적 거둬야지. 끝까지 해 보자.”

 

그 목소리가 슬프게 들렸다. 다들 숙연해졌다. 우리 팀의 개그맨으로 알려진 2학년 수근이도 이때만큼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동네 사회인 선수 수준도 아니라고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던 순간들이 갑자기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다들 같은 심정이었을까. 

“서로를 믿고! 한 걸음만 더 뛰고! 포기하지 말자! 자, 내일부터는 다시 한 번 일어서 보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주장의 절박함이 우리에게 전해졌을까.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도 3학년 선배들처럼 야구특기생으로 진학을 포기하거나, 기껏해야 후보 선수가 되어 진학을 해야할 것이다. 그것도 감독님과 부모님들이 일일이 고등학교 감독님들을 찾아다니며 애걸복걸해야 가능한 일이 아닌가. 우리 모두 숙소로 들어가면서 굳은 의지를 다졌다. 내일부터 다시 해 보자. 이제 마지막 한 계단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 계단만 넘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우리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우리는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폭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운동장은 간밤에 내린 눈이 차갑게 얼어붙어, 어디에도 생명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던 드럼통 속에도 눈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 역시 안 되나 보다. 하늘이 우리를 버렸다. 우리는 뭘 해도 안 된다. 마음 먹고 하려고 해도 하늘이 허락하지 않다니. 저 눈이 모두 녹고 운동장이 마르려면 이번 주 운동은 이미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은 듯이 풀이 죽은 채 숙소 바닥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사춘기 소년들처럼 낄낄거리며 운동이 취소될 거라 기대하며 들떠 있었다.

 

프로복서들의 스파링 상대와 마라톤 선수의 페이스 메이커. 그들과 우리의 공통점이 있다. 승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승리하는 것을 잊고 산다는 것이다. 다른 선수를 도와주는 사람. 다른 팀을 도와주는 팀. 그게 우리들이었다. 우리 상대 팀들은 대진표 추첨에서, 우리 학교 이름이 불리면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환호성을 질러댔었다. 다음 시즌에도 그 저주는 계속 될 것 같았다. 

 

그때였다. 운동장 쪽에서 감독님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전원 훈련 준비! 운동장으로 집합!”

 

이 눈 속에서 무슨 훈련이냐며, 불만을 가지고 운동장으로 나간 우리는 눈이 치워지고 있는  광경을 보고 말을 잃었다. 감독님과 코치님, 그리고 야구부 학부모들이 삽과 리어카를 들고 운동장의 눈을 치우고 있었다. 손과 머리카락에 얼음이 맺힌 눈사람이 요정처럼 내려와 눈을 치우고 있었다. 

 "너희는 운동만 해라. 이번 시즌에는 꼭 1승 하자. 우리가 힘든 건 괜찮아. 자신감을 잃어가는 너희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힘들어.”

 

학부모님 중 한 분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은 차갑게 식어있었던 우리 마음에 뜨거운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봤고,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을 개시했다. 우리도 창고에서 삽을 들고 운동장 정리에 동참했다. 손바닥이 얼어붙고 발이 시렸지만, 이상하게도 춥지 않았다. 우리가 한 팀이라는 사실이, 우리가 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출처를 알 수 없는 확신이 온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훈련 분위기가 달라졌다. 연습이 끝난 후에도 남아 지옥훈련을 했고, 손에는 칼로도 베어지지 않을 굳은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또 다시 패배의 아픔으로 우리를 믿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칼날을 들이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적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간절한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날, 한겨울의 차가운 운동장에서, 우리는 이미 1승을 거두고 있었다.

 

강인규2-1000.jpg


  

Copyright © 한국문화예술신문'통' 기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3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추천한 회원 보기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
상담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