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필요한 순간/김혜주
-산문
본문

#시가 필요한 순간
너의 시를 훔쳐도 될까?
“나의 작은 시인에게The kindergarten teacher”는 제목에 이끌려 감상하게 된 영화이다. 지루하고 반복된 일상에서 예술적 감성을 채우기 위해 시 창작 교실을 다니게 되는 주인공 리사는 유치원교사이다. 시에 대한 열정을 언제 어디서나 메모장을 펼쳐 적어두는 모습으로 보여주지만 재능이 부족함을 깨달아 가고 있는 섬세하면서도 정이 많은 리사에게 다섯살 반의 어린 지미가 나타난다. 신이 내린 듯 중얼거리며 시를 읊는 천부적 재능에 리사는 애를 태우며 지미에게 집착하게 되고 욕망으로 인한 광기마저 느껴지기 시작한다. 시의 한계에 부딪치고 있던 리사는 지미가 시를 읊는 소리를 듣게 된다.
―애나는 아름답다
나에게는 충분히 아름답다
태양이 그녀의 노란색 집을 두드린다
마치 신이 보낸 신호처럼―
신을 얘기한다는 자체가 어린아이의 시라고 생각지 못할 정도로 시의 변화가 크다. 아마도 감독은 어린 지미를 통해 순수한 시의 정령을 이입시키지 않았나 싶다. 시의 정점을 향해 가고 싶은 열망을 나 아닌 작은 시인의 존재를 통해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리사는 시 창작 교실에서 편견없이 지미의 시를 평가받고자 자신의 시로 발표를 해서 놀라운 변화라는 찬사를 받게 된다. 적은 요소로 매우 복잡한 것들을 느끼게 해준다는, 사소한 것에서 감상을 끌어낸다는 평을 받고 지미의 시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작은 시인의 시를 한 편 더 소개해 보자.
―황금은 녹슬고 온기는 부서진다
아침이 밝아오자 경찰은 평소처럼 식당으로 향하는데 3차 대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흙먼지 날리는 때
기도하라 , 예식의 날이 머지않았으니
난 여기서 시를 읊는다ㅡ
지미의 시에 빠져든 리사는 평범하게 크기를 바란다는 지미의 아버지를 무시하고 욕망으로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된다. 아이와 함께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면서 판단이 흐려진 리사의 광기는 시에 미친 납치범으로 남게 되고 반면 지미는 다섯살 반의 정서를 지닌 어린 아이일뿐, 영화는 계산없이 순한 지미의 눈망울로 “지금, 시가 떠올랐어요. 시가 떠올랐다구요.” 라는 독백으로 끝이 난다.
리사는 시에 대한 분별없는 사랑으로 길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맞이하게 된다. 깊은 우물 바닥까지 두레박이 내려가야 숨구멍을 통해 물이 숨을 쉬며 정화되어 올라오듯 시는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발 끝 까지 감각이 순환되어 체에 내려지는 정화수이다.
우린 어느 자리에서 시를 쓰고 있을까?
왜 우리는 시를 얘기하고 있는 걸까?
전쟁 중에도 시를 읊고 있는 절실한 사랑의 밑바닥에 이르지 않고서는 시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시인인 줄 모르고 순간순간마다 시를 일상으로 말하고 마주치는 그 순간을 느꼈을 때, 인간의 기색과 숨결로 익혀낸 문장이 시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순간을 훔치고 싶을 때 시적인 것과 교감을 나누는 긴장된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시는 찾아서 오는가? 또 돌아서기도 하는가? 시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시가 이미 존영을 드리우기 시작한다. 시를 사랑하기 때문에 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일순간의 소음과 풍경이 나늘 잡아끄는 귀신같은 존재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그 끝을 따라가다 보면 우울하면서 섬광 같은 한줄기를 품어내는 창백하면서도 따스한 향기가 감돌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이다.
비상식적 문장이 시가 되는 것처럼 현실과 몽환이 교묘하게 겹쳐져 아늑하고 신비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아름다운 패배와 대책 없는 유혹도, 쓸쓸했던 날 이유 없는 눈물과 순정한 웃음도 시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나를 사랑하기에 시가 필요한 순간은 틈새를 가리지 않고 캄캄한 밤 애타게 기다리던 새벽처럼 내 쪽으로 찾아오는 것이리라. 문득 뒤돌아보니 잊고 살아온 날들이 가고자 했던 길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길에서 가슴에 내재된 시편으로는 하루가 부족하다는 자신만의 지독한 고뇌를 성찰했을 때 세상의 충돌이나 소음으로부터 부대끼던 삶이 슬픔, 사랑, 분노, 용서로 몸에서 우러날 때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거나 오지 못할 사람을 기다리는 것처럼 희망과 절망의 확연한 통증으로 시를 견디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슬픔의 자세로 서 있거나 철저하게 방관자가 되었던 거 같다. 사라진 뒷모습을 깊숙이 흘려보내면서 주체할 수 없는 슬픔 때문에 시를 잃어버렸다가 그리워할 대상을 지워나가면서 시적 자아와 만나 갈등하고 화해하면서 시의 순정한 발걸음을 찾을 수 있었다.
소나기기가 퍼붓던 오후 아스팔트에 튕겨 오르는 빗방울이 우후죽순으로 돋아나는 생명력으로 느껴지는 순간, 리사와 지미의 순간처럼 간절한 두 그림이 겹쳐진다. 우리 모두는 순간순간 시가 파장되어 시인이 아닌 시인으로 살고 있는, 지상의 기운과 우주의 기운이 스며드는 절묘한 교차로에서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고 있다.
밧줄 5피트를 산 노인이 컴퓨터에 입력된 6피트 값의 오류를 정확하게 따지는 중에 판매 직원이 “1피트 더 드릴까요?” 나를 잠시 멈추게 하던 이 깜찍하고 유쾌한 한마디는 시인의 직관으로 뒤돌아보는 시간보다 앞으로 나가는 시간을 사색하게 해준다.
여행했던 장소를 티비를 통해 만났을 때 나는 또 멈춘다. 다른 환경과 마주칠 때 낯설은 곳에서의 안개자욱한 몽상을 꿈꾸기도 한다. 여행을 하며 일탈의 자리에 서 있었던 지역을 다시 가볼 수 있을까? 하는 보이지 않는 슬픔에 뜨거워진 가슴에서 시를 꺼내 읽는다. 눈에 보이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경이롭게 보여지는 건 시는 지식으로 쓰는 언문이 아니라 이 지상의 시인들이 순정하게 살아가면서 말하고 싶었던,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아름다운 순간순간을 살아있는 언어로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마주했을 때 좋음과 싫음의 교차로에서 간혹 나는 길을 잃는다. 저 풍경 속의 아련함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독백으로 견디었던 순간을 생각하면서 눈가를 적시는 날에는 불면의 새벽을 기쁘게 맞아들인 시가 깨어난다. 모든 순간과 사물이 시가 되고 일상이 시가 되는 일이 어느 순간 오면 별다른 느낌 없이 창작으로 언어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동이 트는 충만함으로 심정을 고백하고 싶어 시간과 공간의 날선 감각으로 애태우는 시적 발화점은 백색소음 속에서 책을 읽는 즐거움으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읽지 않은 책이 보이는 순간에도 기쁨이 넘쳐 잠시 심장을 지그시 누르며 새로운 문장에 감겨 시를 생각하게 된다.
풀잎은 지는 해를 위해 수평선의 고요를 아꼈던 것
초록이 운명에 휩쓸릴 때
초록은 그곳까지 한달음에 도착하기도 한다
풀잎 속이라면 초록은 일제히 일어나야 할 때를 알고 있다
―송재학 시인의 「풀잎」에서
초록빛깔만으로도, 시의 풍경이 쓸쓸하고 적막할지라도 들판의 두근거림으로 시의 진심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시인으로 살고 있다./리토피아 92호
김혜주
2019년 《시와편견》으로 등단. 시집 『내게 말을 걸었다』. 《시의징후》 편집위원. 《시의시간들》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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