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하 의사 순국 98주기 추모식, 국립서울현충원서 엄숙히 거행
- 10월 10일 현충관에서 유족·보훈 관계자 등 참석… 추모사와 헌정무용으로 순국정신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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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 청년의 항일정신 되새기며 독립운동의 숭고한 뜻 기려
일제강점기 대만에서 일본 왕실의 핵심 인물을 겨냥해 항일 의거를 일으킨 조명하(趙明河·1905\~1928) 의사의 순국 98주기 추모식이 지난 10월 10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엄숙하게 거행됐다.
사단법인 조명하의사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날 추모식은 국가보훈부와 황해도 중앙도민회, 한안주씨 대종회, 보성고 64회 동기회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행사에는 조명하 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모인 유족과 기념사업회 관계자, 보훈·사회단체 인사, 시민과 학생 등이 참석해 조국 독립을 위해 젊은 생애를 바친 독립운동가의 뜻을 되새겼다.
현충관 무대 중앙에는 대형 태극기 아래 조명하 의사의 영정과 국가훈장, 추모 제단이 마련됐으며, 양옆에는 각계에서 보내온 추모 화환이 놓였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조명하 의사의 순국정신을 기리는 추모사와 함께 전통무용을 통한 헌정 공연이 펼쳐져 참석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흰색 한복을 입은 무용수가 영정 앞에서 펼친 추모무용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청년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넋을 기리는 의미를 담았다.


일본 제국주의 권력의 중심을 겨눈 청년
조명하 의사는 1905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한 항일 독립운동가다.
그는 1928년 5월 14일 대만 타이중에서 일본 육군 대장이자 히로히토 일왕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를 습격하는 의거를 일으켰다.
당시 구니노미야는 일본 황실과 군부를 대표하는 핵심 인물이었다. 따라서 조명하 의사의 의거는 일본 제국주의 권력에 정면으로 저항한 사건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체포된 조 의사는 일제 당국의 조사와 재판을 거쳐 사형을 선고받았다.
1928년 10월 10일 오전 10시 27분, 그는 대만 타이베이 형무소에서 23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항일 의거는 한국 독립운동이 한반도를 넘어 해외 각지에서 전개됐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남았다.
98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독립의 정신
이날 추모식은 조명하 의사의 희생을 기리는 동시에, 독립운동의 역사를 후대에 올바르게 전달해야 한다는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였다.
조명하 의사는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등과 함께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맞서 직접적인 항일 의거를 실천한 독립운동가다.
특히 그의 의거가 대만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한국 독립운동사의 활동 무대가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장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조명하 의사의 항일투쟁은 한국과 대만의 근현대사가 만나는 역사적 접점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 있던 대만에서 한국 청년이 일본 제국주의 권력에 맞섰다는 점에서 두 지역이 공유하는 역사적 기억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최근에는 당시 일본 측 기록과 관련 자료를 토대로 조명하 의거의 준비 과정과 역사적 의미를 재검토하려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조명하 의사의 행적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의 항일정신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추모를 넘어 역사 계승과 교육으로
조명하 의사의 순국 98주기를 맞아 마련된 이번 추모식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와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독립운동의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희생을 기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들이 어떠한 시대적 상황에서 조국의 독립을 결심했으며, 무엇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는지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날 현충관에서 진행된 추모 행사는 조명하 의사의 삶과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뜻깊은 자리가 됐다.
특히 학생과 젊은 세대가 함께한 모습은 독립운동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교육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줬다.
한편 같은 날 대만 타이베이의 옛 형무소 터에서도 조명하 의사 순국 98주기 추모식이 열려 현지 교민과 학계 관계자들이 그의 항일정신을 기렸다.
한국과 대만에서 같은 날 이루어진 추모는 조명하 의사의 독립운동이 양국이 함께 기억해야 할 역사적 유산임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1928년 10월 10일, 스물세 살 청년 조명하의 삶은 타이베이 형무소에서 멈췄다. 그러나 그가 남긴 항일정신은 98년이 지난 오늘에도 서울과 타이베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조국의 독립을 향한 결단과 희생은 한국 독립운동사의 지워지지 않는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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