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본 대로 믿으면 가마귀 탓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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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 | 시인·본지 발행인
오비이락(烏飛梨落). 가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이다. 가마귀가 날아오른 순간 배가 떨어졌다. 두 사건은 분명히 눈앞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가마귀가 배를 떨어뜨렸는지는 알 수 없다. 우연히 같은 시간에 일어난 두 사건을 하나의 원인과 결과로 연결하는 순간, 가마귀는 억울한 범인이 되고 만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눈을 가장 신뢰한다. 직접 보았으니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듣거나 전해 들은 이야기는 의심하면서도 눈으로 확인한 일에는 쉽게 확신을 갖는다. 눈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이며, 동시에 진실을 판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눈은 가장 쉽게 오독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눈이 잘못 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본 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는 뜻이다.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 자체는 사실일지라도 그 사건이 발생한 원인과 배경까지 모두 확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곧 진실은 아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어떤 사건의 한 장면일 뿐이다. 그 장면의 앞에는 보이지 않는 과정이 있고 뒤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결과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이 목격한 짧은 순간을 전체의 진실이라고 믿어버린다.
문제는 이러한 믿음이 강할수록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다. 보지 못한 사람은 질문할 수 있지만, 직접 보았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질문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눈으로 확인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진실에 접근하는 길을 막기도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보여주는 것을 믿으려 하고, 누군가는 믿게 만들기 위해 보여준다.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많아지는 이유이다.
화려한 행사와 거창한 구호, 카메라 앞에서의 친절한 몸짓, 대중의 시선을 의식한 과장된 행동들이 반드시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실제의 삶이나 행동과 일치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보여주는 장면만으로 그 사람의 진정성까지 판단할 수는 없다.
우리는 때때로 무엇을 했는가보다 어떻게 보였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실질적인 성과보다 사진 한 장이 앞서고, 진지한 실천보다 그럴듯한 말 한마디가 더 큰 주목을 받기도 한다. 그럴수록 본질은 뒤로 물러나고 겉모습이 진실의 자리를 차지한다.
보여주기는 원래 보여주는 사람의 몫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보는 사람의 책임이기도 하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누군가가 마련한 무대의 관객이 된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무대 위의 연기자가 아니라 관객이 광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보여주는 사람은 자신이 연출한 장면의 의미를 알고 있지만, 관객은 그것을 실제의 진실이라고 믿으며 웃고 박수를 친다. 연기자가 관객을 속이는 데 성공할수록 관객은 더욱 열심히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광대와 관객이 뒤바뀌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행동을 의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의심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과 그 현상이 발생한 원인을 구별하는 일이다. 누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보다 왜 그것을 보여주었는가를 살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러한 분별력이 더욱 중요하다. 시민들에게 공개되는 정책과 행정의 성과, 사회적 논쟁의 장면들은 언제나 일정한 설명과 해석을 동반한다. 그러나 설명이 곧 진실은 아니며, 잘 편집된 장면이 전체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럴듯한 결과를 보여주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만들어진 과정도 살펴야 한다. 누가 결정했는지,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갔는지, 그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은 없었는지 질문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진실을 찾아가는 출발점일 수 있지만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실은 때때로 드러난 모습보다 그 뒤에 감추어진 관계와 과정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판단이 언제나 옳다는 확신이다. 우리는 누구나 제한된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같은 사건을 보아도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할 수 있고, 서로 다른 정보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눈을 신뢰하되 자신의 해석까지 절대적인 진실로 믿어서는 안 된다.
잘못된 판단은 때때로 한 사람의 명예를 무너뜨리고 한 공동체의 신뢰를 파괴한다.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의혹이 사실처럼 퍼지고, 우연히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떠안는 사람도 생긴다. 그때마다 또 한 마리의 가마귀가 억울한 범인이 된다.
가마귀가 날아오른 것은 사실이다. 배가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두 사실 사이에 반드시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배가 떨어질 때가 되었을 수도 있고, 바람이 불었을 수도 있으며, 이미 가지가 흔들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모든 가능성을 살피기보다 가장 눈에 띄는 장면 하나로 결론을 내려버린다. 가마귀가 날았으니 배를 떨어뜨렸을 것이라는 단순한 판단이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진실은 보이는 것보다 깊고, 사람의 행동에는 드러나지 않은 사정이 있으며, 사건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원인이 숨어 있다. 눈앞의 장면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태도는 결국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는 능력만큼 읽어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살피고, 쉽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한 번 더 질문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진실을 보는 눈은 눈앞의 장면을 그대로 믿는 눈이 아니라, 그 장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질문할 줄 아는 눈이다.
가마귀는 그저 배나무 가지에 앉아 쉬고 있었을 뿐이다. 날아오른 순간 배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언제라도 그 가마귀가 될 수 있다. 우리 역시 세상이라는 배나무 가지에 앉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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