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로 소통을 꿈꾸는 시장
-원적산 야외무대의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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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 | 시인·본지 발행인
지난 주말 원적산 야외무대에서 열린 라이브공연 중 인상적인 풍경 하나가 펼쳐졌다. 등산복 차림의 인천시장이 무대에 올라 시민들 앞에서 시를 낭송하고 노래를 부른 것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결코 짧지 않은 두 편의 시를 원고도 없이 완벽하게 암송했다는 사실이다. 한 편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었고, 다른 한 편은 이어령 선생이 쓴 정서진 관련 시로 기억된다.
시장의 시낭송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시를 외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행정의 책임자가 시민들 앞에서 문학을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도 공식적인 연설문이 아니라 시인의 언어를 빌려 시민들의 마음에 다가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없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지방정부가 문화도시를 이야기하고 축제를 개최하며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문화예술을 행정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과 예술을 직접 향유하고 시민들과 나누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문화예술은 예산과 시설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시는 문학의 꽃이며 노래는 음악의 바탕이다. 누구나 시를 쓰고 낭송할 수 있으며 누구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그렇다고 시와 노래가 가벼운 예술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보편성이야말로 시와 노래가 지닌 가장 큰 힘이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특별한 자격이 없어도 한 편의 시와 한 곡의 노래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시가 아름다운 까닭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노래가 오래 살아남는 까닭도 사람의 마음속에 머물기 때문이다. 행정의 언어가 제도와 정책을 설명한다면 시의 언어는 사람의 내면을 향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들도 한 편의 시 앞에서는 같은 감동을 나눌 수 있다. 이것이 기초예술이 지닌 소통의 힘이다.
그날 원적산에는 시꽃이 피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시를 낭송하는 시장과 그 목소리를 듣는 시민들 사이에 잠시나마 문학이라는 다리가 놓인 것이다. 인천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인으로서, 오랫동안 시노래 운동에 참여해 온 사람으로서 반갑고 자랑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동이 일회성 행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무대 위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술가들의 창작환경을 개선하고 시민들의 문화적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오늘날 지역 문화예술의 흐름을 살펴보면 대규모 공연과 축제, 군중이 참여하는 행사에 지나치게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화려한 무대와 많은 관객은 행정의 성과를 보여주기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문화예술의 발전을 관객 수와 행사 규모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문화예술의 뿌리는 창작에 있다. 한 편의 시를 쓰는 시인,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 한 곡의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자신의 언어로 세계를 탐색하는 소설가가 있어야 문화예술의 토양이 풍요로워진다. 이들의 고독한 창작이 쌓이고 축적되어야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도 형성된다.
특히 개인 창작예술은 대규모 행사에 비해 행정적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 홀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은 조직력이나 홍보 능력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역문화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주체들이다.
대형 축제와 공연도 필요하다. 시민들이 함께 즐기고 문화적 활력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행사들이 개인 창작예술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창작의 토양이 메마른 상태에서 행사만 화려해진다면 문화예술의 외형은 커질지 몰라도 그 내면은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문화정책은 보여주는 예술과 만들어지는 예술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문화행사와 소수의 예술가가 치열하게 몰두하는 창작활동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창작에서 출발한 예술이 시민들에게 전달되고, 시민들의 관심이 다시 창작의 힘으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인천시단의 활발한 창작활동 역시 인천시민의 문화적 자긍심과 무관하지 않다. 지역에서 생산된 문학이 시민들의 삶에 스며들고, 그 문학이 다시 인천의 역사와 정서를 담아낼 때 인천은 비로소 자신만의 문화적 얼굴을 갖게 될 것이다.
기초예술은 당장의 경제적 성과만으로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한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거대한 행사장의 규모가 아니라 그 도시에서 태어난 작품과 예술가들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소비성 지출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위한 정신적 투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시로 시민과 소통하려는 시장의 모습은 그런 점에서 반갑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시인을 이해하는 정책으로 이어지고, 노래를 즐기는 마음이 음악가의 창작을 지원하는 관심으로 발전한다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다.
좋은 문화도시는 예술가들만의 도시도 아니고 축제에 참여하는 시민들만의 도시도 아니다. 예술가가 자유롭게 창작하고 시민들이 그 성과를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도시이다. 행정은 그 두 세계를 연결하는 든든한 다리가 되어야 한다.
원적산에 피어난 시꽃이 잠시 피었다 지는 꽃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한 편의 시를 낭송하는 작은 행위가 기초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고,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 성장하는 문화정책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시로 소통하는 시장이 아름다운 까닭은 시를 잘 외우기 때문이 아니다. 시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예술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해가 정책과 실천으로 이어질 때 인천의 문화예술은 더욱 깊어지고, 시민들의 자긍심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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