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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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이었을지라도 가당치가 않지만 그날의 대화는 논쟁이 아니었고 대화의 주제 또한 관련이 없었는데 다짜고짜 그가 소리를 쳤습니다. 저와의 관계에서 오래 마음에 품은 심사가 있었을까요. “당신이 경험해봤어요? 나는 경험해봤어요. 당신이 알아요?” 그가 겪었다는 대학에서의 운동권 시절의 경험이 고졸 출신인 제가 겪을 경험이 아니었음을 알 만한 관계였음에도 갑자기 흥분해서 내지르는 그의 목소리에 저는 그냥 어안이 벙벙해져서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헤어져 돌아온 다음부터 저는 그와의 절교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단연코 그날의 대화는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시작은커녕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으며 제가 대화라고 했습니다만 대화가 제대로 시작도 되기 전의 찻자리였습니다.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닐지라도 안 볼 수도 없는 활동 반경 안에 있어서 이후 저는 그를 볼 때마다 불편합니다. 그도 그럴까요.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는 저에게 그때의 일에 대해 아무런 얘기도 없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만 타인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말은 종종 혐오와 차별과 비하를 야기합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면 돌아봐야 할 건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입니다. 어쩌면 그 마음속에는 의도와 비의도를 구분하지 못 할만큼이나 의식을 잠식하고 있는 무의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무의식은 차별에 기반한 자만과 교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니 결과가 그러했다면 의도의 유무를 떠나 만 심사 다 제쳐놓고 하는 사과가 우선입니다.
이때 사과에 따르는 변명은 훗날의 일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상처 입은 자는 변명까지 들을 여유가 없습니다. /남태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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