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놀다가 가자
-글:장종권 발행인/사진(옥정호):고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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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시나 한국문학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아니 아예 없다. 내게는 그럴 만한 자격도 능력도 별로 없다. 아니 아예 없다. 그래서 내가 문학잡지나 문화예술잡지를 슬렁슬렁 만드는 일은 남들이 보기에는 나의 일로 보이겠지만 내 보기에는 그저 나의 즐거운 놀이이거나 편안한 휴식이기도 하다. 나는 잡지를 만들면서 일도 하고 놀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이 터무니없는 밭에서 논다. 이 엉터리밭은 물론 내가 만든 밭이다. 내 힘으로가 아니라 나를 아껴주시는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태주어 만든 모양도 없고 소출도 없는 밭이기도 하다.
이 밭에서 나는 나와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놀기도 한다. 배짱이 맞기만 하면 아무나 끼어들어 함께 놀 수 있다. 인생은 즐겁게 놀다 가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하다 가라는 말이냐. 죽어라 땀만 흘리다 가라는 말이냐.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그 무언가를 죽을 때까지 추구하다 가란 말이냐. 아니면 기를 쓰고 돈이나 벌고 명예와 권력을 향해 달려 나가다 결국에는 다 놓치고 죽으라는 말이냐. 그렇다고 해도 마음대로 되는 일은 어차피 없기도 하다. 어차피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는 한없는 후회와 절망과 고통만 따라올 것이다. 내가 과연 무엇을 하다 죽어가고 있을까. 내가 과연 누구를 위해 살다가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알고 무엇읋 이루고 무엇을 깨달으며 눈을 감겠느냐. 그냥 눈을 감을 뿐이다.
앞서간다는 말은 뒤처져 간다는 말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앞서 나가다 상처를 받는 것이나 뒤쳐지다가 받는 상처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뒤집으면 바로 역전이라 하는 것이다. 똑똑하다는 말은 바보라는 말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매사가 그렇지 않다면 분명 인류의 역사는 발전해 왔다고 믿는 기반하에서의 일반적이고 상투적인 대답일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발전한 것이 아니라 더 퇴보하거나 위태롭거나 쓸데없는 곳으로 왔다고 판단한다 해도 그게 왜 틀린 말이겠는가. 결국 틀린 말이란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옳은 말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에 홀려서 그저 세뇌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누구나의 별로 차이가 없는 똑같은 별 볼 일 없는 인생인지도 모른다.
역설이 아니라 정설이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데 걸어 한 달이 걸리고 두 달이 걸린들 무슨 상관이랴. 서울에서 부산 가는데 한두 시간에 간다고 발전이라 한다면 이는 별로 수긍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비행기가 없어 미국에 못 가고 유럽에 못 간다고 그것이 답보나 퇴행이라면 수긍할 수 없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어쩔 수 없이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죽을 때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아닐까.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 별로 없다. 날개의 힘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다만 붕붕거리며 허공에서 떠돌다가 땅바닥에 굴러떨어지는 하루살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당신은 당신이 과연 하루살이보다 나은 존재였다고 큰소리칠 수 있을까.
차라리 하루살이의 운명을 부러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차라리 우물 안 개구리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도 창피한 일이 아니다. 그 존재들은 차라리 몰라서 인생이 행복할지도 모른다. 우물 밖의 세상을 알아서 어쩌자는 것이냐. 내일이 있고 미래가 있고 그래서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이냐. 하루살이의 능력이나 우물 안 개구리의 능력이나 우리 인간의 능력이 무슨 차이가 있다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떠드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아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그게 과연 아는 것일까. 수긍할 수 없다.
역설이 아니라 정설이다. 왜냐하면 역설이건 정설이건 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믿지 말자. 믿는다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해서 비정상이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권력자가 되고 지배자가 되기 위해, 평생을 공부하고 꿈꾸어 온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하루살이들에게도 분명 사랑과 전쟁과 인생이 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도 분명 그들만의 삶과 그들만의 사회와 그들만의 꿈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문학이나 한국시도 별 의미가 없는 것이 맞다고 믿는다. 정의와 희생과 꿈이 있어야 인류의 미래가 밝다는 말도 허방에 빠져 발을 허우적거리는 것일 뿐일 터이니, 문학에 무슨 정의와 꿈이 있고, 시에 무슨 정의와 꿈이 있겠는가. 허망한 망상이다. 부질없는 몸부림이다. 아무것도 없다. 어떤 미래도 없다. 그러니 꿈도 꾸지 말자. 본능대로 살다가 때가 되면 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일 수도 있다. 그냥 제 맘대로, 제 맘에나 들도록, 한껏 놀다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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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시인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