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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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참 흔하시지. 휴일 아침 회색빛 하늘은 기어이 후드득후드득 눈물을 떨구기 시작한다. 문득 ‘자크린느 뒤 푸레’의 연주가 듣고 싶어진다. 그래, 이런 날은 첼로가 제격이지. “삶을 어떻게 견뎌야 하느냐”며 말년을 다발성 경화증으로 어렵게 살다 갔다는 ‘자크린느 뒤 푸레’, 그녀가 연주한 ‘오펜바흐’의 ‘자크린의 눈물’을 고른다. 턴테이블에 디스크를 얹고 조심스레 먼지를 닦아낸다. 그녀가 가슴을 후빈다.
즐겁거나 기쁠 때 우리는 곧잘 노래를 부르고 듣는다. 외로울 때나 슬플 때도 음악으로부터 위안을 얻곤 한다. 특별히 흥과 한이 많은 민족이 아니던가? 일상에서 결코 뗄 수 없는 음악, 어떤 장르를 즐기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클래식이든, 재즈든, 팝이든, 뽕짝(?)이든……. 더불어 좋아하는 장르를 어떤 음원으로 어떻게 재생시키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리라. 왜, 어느 날 낡은 자동차 안에서 듣는 유행가 한 소절이 가슴 저 깊은 곳을 건드릴 때도 있지 않던가.
나는 개인적으로 lp를 즐겨 듣는다. 이런 나를 어떤 이는 번거롭게 아날로그를 고집한다며 핀잔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에 일리 있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스크래치도 있을 수 있으며, 또 일일이 디스크를 고르고 먼지도 닦아내야 하고, 조심스레 다루어야 하는 등 일련의 작업(?)이 필요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디스크 생산이 중단된 지도 이미 오래전이지 않은가.
‘자크린의 눈물’이 끝났다.
‘에드워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이어 듣는다. (e-minor op-85 ‘자크린느 뒤 푸레’ vc, ‘존 바비롤리’ 경 지휘, 런던 orch emi)
개인적 의견이 분분한 터라 cd와 lp디스크를 한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lp디스크의 다이나믹 레인지는 소리의 깊이에서 느껴지는 감동인 반면, cd에서의 감흥은 깊이보다는 폭넓은 명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한다. 내가 굳이 lp디스크를 고집하는 이유는 cd에서 느끼지 못하는 깊숙한 소리의 질감과 더불어, 적당한 기계음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게 하고 또 향수에 젖게 한다는 것이다. 또 lp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랙에서 디스크를 고르고 재킷을 열고 먼지를 닦아내고 턴테이블에 올리고 조심스럽게 카트리지를 얹고……, 일련의 과정까지 즐기는 일이다. lp디스크로 재생하는 음악에는 분명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손칼국수와 기계 칼국수 차이라고나 할까? 콤팩트한 것만 추구하는 요즘 번거로운 일임이 분명하지만, 재킷 표지의 그림 감상은 덤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축음기, 바늘을 숫돌에 갈고 sp라는 겨우 한두 곡 정도 수록된 음반을 듣지 않았던가? ‘임방울’의 ‘쑥대머리’,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에 우리는 울고 웃지 않았던가? 유성기 시대를 지나 ‘별표전축’ ‘독수리전축’ ‘인켈전축’과 월남 파병용사들이 귀국할 때 들여온 일명 ‘야전(야외전축)’이라 불리었던 포터블 오디오와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하던 lp디스크, 1982년에 cd의 출현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4년 6월 우리나라 마지막 lp디스크 공장 ‘서라벌 레코드’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요즘 희귀 lp디스크는 수십, 수백만 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물론 생산이 끊긴 디스크를 구하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긴 해도, lp를 희소성 상품으로 생각하는 것만 같아 씁쓸한 마음 지울 수 없다.
컴맹은 아니지만 나는 분명 아날로그형이다. 가능한 한 음악은 lp디스크로, 그것도 진공관 오디오만 고집하고 있으니. 지난 세월을 함께해온 lp디스크가 이천여 장이다. 이사 때마다 아내에게 핀잔을 듣곤 하지만 내가 아끼는 것들이다. ‘파블로 카잘스’가 눈물을 흘렸다는 ‘에드워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이 3악장 adagio로 이어진다. 역시 ‘자크린느 뒤 푸레’다. 재능 많은 사람은 신이 일찍 데려가신다던가? 오후에는 오랜만에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어봐야겠다. 비는 그칠 기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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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이성필 연구원님의 댓글
판이? 그렇게 불렀지요. 판 좀 틀어줘라고요.
이천장이 넘으시다니 대단하세요! 부럽습니다.
사모님께 이사 할 때나 집 정리 할 때면 핀잔 많이 들으셨겠어요. 책처럼요.
모으지 못하고 남들 주고 버린 LP들이 뒤늦게 아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