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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도문대교, 우리는 못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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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본지 발행인

사진:편집부(두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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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에서 도문대교를 바라보며 출렁거리는 관광용 뗏목에 몸을 실었다. 강물이 출렁거리니 덩달아 가슴도 마냥출렁거린다. 형제도 어쩌다가 갈라서면 남남처럼 살 수는 있다. 제아무리 피가 섞였다고 해서 한데 어울려 한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법은 물론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남남처럼 살다가도 어쩌다 형제네 동네에 들어서면 가슴이 짠해지는 것을 어쩌랴. 형제네 집 담벼락에서 혹은 대문간 근처에서, 안으로 들지 못하는 가슴만 태우게 되는 꼴이다. 결국에는 아무래도 화해가 어려운 놈이라고 애써 발길을 돌리고 말 것이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고, 발을 내디디면 얼마든지 디딜 것처럼 지척이다. 여름이 익어간다고 바람은 시원스럽게 불어제끼고, 미루나무는 푸르게 서서 이파리를 흔들어 댄다. 생계형 벌목과 개간으로 인해 헐벗었다는 산 역시 당장은 풀빛으로 가득하다. 자기네들끼리 주고받는 초병들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릴 것만 같다. 중국인 안내자는 거듭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댄다. 쟤들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단다. 이미 자기들끼리는 얼마든지 소통하였을 관광지라 별다른 위험은 아마도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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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일이다. 남의 나라를 몇 군데 다니면서도 이처럼 공포스럽거나 괴기스럽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 이런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을까. 정말 어디 힘든 나라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힘든 거 외에는 뭐 별다른 것이 있을까 싶다. 왜 우리는 동족의 나라에 접근하기만 하면 죽을 수도 있다라는 공포심에 빠져들어야 할까. 어느 민족보다 가까운 핏줄인데 이토록 서로 원수처럼 경계하며 살아야 할까. 도대체 언제까지 이 국제적으로 창피스러운 일은 계속될까. 내 살아생전에 좋은 꼴 보기는 아마도 어려울 성싶다.


연변 진달래광장에서 진행되던 진달래축제를 떠올린다. 남의 땅에서 바라보는 내 민족의 성대한 여름축제였다. 똑같은 한복에 똑같은 언어에 똑같은 춤을 지켜보면서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같은 핏줄도 이렇게 남처럼 살 수는 있는 것이구나. 허구헌날 역사교육 받으면 무엇하나. 내 민족이 동아시아를 제패한 적 있었다고 큰소리 치면 무엇하나. 나는 아직 금강산에도 가보지 못했다. 백두산에 모처럼 올라보려 했으나 날씨가 방해를 부려 천지도 보지 못했다. 내 나라 내 땅도 가지 못하는 신세이니 멀리 다른 나라 다른 땅 열심히 돌아다녀 무엇하나.


멀찌감치 20여미터의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도문대교 위로 사람들이 서성인다. 현재는 차단된 상태이나 중국인들은 왕래가 가능하다고 한다. 도문대교 오른편으로는 2018년에 설치된 신도문대교가 서 있다. 뗏목에 바짝 주저앉은 채로 건너편 강변의 비릿한 풀냄새를 맡는다. 키 큰 풀들도 이미 자랄 만큼 자라 있다. 내 고향마을의 여름풍경처럼 미루나무 이파리가 반짝이며 연신 나풀거린다. 그 풀밭 사이로 금방 북한 초병의 얼굴이 나타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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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 뗏목 위에서 숨을 죽이는 우리들의 가슴을 마음껏 열어 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상기된 낯빛까지 근거리에 숨어서 모조리 살피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문대교가 코앞으로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손바닥 가득 강물만 퍼 던져 본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았으니 여름이 온들 여름 같으랴. 가을은 가을처럼 넌지시 와 겨울 골짜기로 모든 것을 끌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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