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의 일/홍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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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역 횡단보도 빨간 신호등 앞에서 소나기 만난 엄마는 쪼그려 앉아, 아기 옷에 달린 모자를 씌워주고 있었다.
파란불에 건너온 할머니기 허리 굽혀, 손녀를 감싸안은 외동딸을 감싸자 지나가던 우산 둘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우산이 옹그린 삼대三代를 감싸주고 있었다.
홍성란
1989년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당선으로 작품활동 시작, 단시조집 『그 새』 『애기메꽃』, 연시조집 『황진이 별곡』 등이 있으며, 사설시조 「금낭화」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
“기후가 변화하면서 전 세계 평균 강우량은 조금 더 증가한다. 그러나 비는 잘못된 곳에, 잘못된 시기에 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 비는 억수같이 퍼부을 것이다.”(케이트 마블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비가 잦습니다. 이곳에서는 매일 약한 비 예보가 뜹니다. 어느 날은 예보의 약한 비가 폭우로 쏟아지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기상 변동 때문일까요. 어느 곳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데 어느 곳에서는 가뭄으로 물 부족을 겪습니다. 어제는 안동에 우박이 과수원을 덮쳤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국지성 호우, 게릴라성 호우, 야행성 호우에 최근에는 송곳 호우라고 불리는 비가 한 곳을 집중적으로 내리는 것을 넘어 때립니다. 때린다로 비를 표현해야 하다니 낭만은 한참 전에 먼 여행을 떠난 듯합니다.
비 오는 날 한 편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면서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 시는 그림이 환하게 그려집니다. 아름다운 풍경은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낳습니다. 급하게 아기 옷에 달린 모자를 씌워주는 엄마에, 분명 급하게 달려왔을 딸과 손녀를 몸으로 감싸안는 할머니에, 지나가던 길을 멈추고 기울여주는 두 개의 우산이 주는 감동은 아름답습니다. 각박해지는 세상살이에도 이런 아름다운 풍경과 이야기가 있기에 우리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남태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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