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암 방명록을 뒤적이다ㆍ2 / 정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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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산>
사인암 아래 난간에 바람의 방명록을 묶어 둔다.
바람에 넘겨진 페이지들이 출렁다리에서 흔들린다.
수천 번 다녀간 이름들이 천천히 페이지를 덧씌운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과 시험을 앞두고 새기는 기도다.
오늘은 여기까지 왔다, 돌보다 먼저 풍화되는 문장들,
삼성각 난간에서 내려갈 길을 오래오래 바라본다.
사인암은 한 글자도 읽지 못하면서 모든 사연을 받아 적는다.
절벽에 매달린 사람들의 마음은 차마 소리 내지 못한 것들,
방명록 한 페이지를 보며 펜을 꺼내 들었다가 집어넣는다.
사인암 암벽은 여전히 서 있고 더 많은 말들은 침묵 중이다.
돌벽에 새긴 방명록을 덮으면 바람이 한 차례 지나간다.
사람들은 이야기 하나씩을 돌무더기에 올려놓고 돌아간다.
정치산
2011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으로 『바람난 치악산』 『그의 말을 훔치다』가 있음.
그것이 인정욕구든 소망이든 과시욕이든 수백 수천 번을 절벽에 매달려 쪼고 새긴 형상과 이름이라면 구태여 이런저런 하잘것 없는 말 보탤 수는 없겠습니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과 시험을 앞두고 새기는 기도”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이름 한 자 남기겠다는 의지 역시 구차하다고 치부하고 넘길 일만은 아니겠습니다. “한 글자도 읽지 못하면서 모든 사연을 받아 적는” 돌벽처럼 때로는 침묵이 위로와 응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 남태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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