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야 겨우 미안하다/이성필
본문

날아가는 글자를 잡으려고 언덕에 앉아서 가만히 적는다.
왜 저러지 하던 당신도 그런가보다 하며 조용히 본다.
빨라도 늦어도 우리의 시간이란 같이 늙어가는 것이다.
새카만 당신은 내가 하는 짓의 속을 훤하게 다 보아왔다.
나는 당신의 주름을 속 깊이 안 보고 구름을 사색했다.
시간이 지나가는데 지나가는 것이 붉어지며 건너다본다.
이성필
2018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으로 『한밤의 넌픽션』 『달이 달다』가 있음.
“그런가보다”에서 “왜 저리지”로 갔다가 다시 “그런가보다”로 돌아오는 관계를 생각합니다. “왜 저러지”와 “그런가보다” 사이에 있는 게 믿음일까요, 체념일까요. 연인에서 부부로 마침내 친구의 관계로 발전하는 부부의 관계에 놓인 게 늙음뿐만은 아니겠습니다. 믿음과 체념을 동시에 공존하게 하고 곧 일치에 이르게도 하는 “같이 늙어가는” 존재는 그러고 보면 어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앞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과정은 있습니다. 자기 성찰입니다. 각골난망刻骨難忘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하는 짓의 속을 훤하게 다 보아왔”으면서도 모른 체하는 당신 앞에서 다만 얼굴 “붉어지”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성찰은 가능합니다. 완고함의 틀에 갇히기 쉬운 늙음 앞에서 “늙어서야 겨우”가 아니라 늙어서라도 가질 수 있는 “미안하다”는 마음이야말로 그 아름다움입니다. / 남태식(시인)
Copyright © 한국문화예술신문'통' 기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