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바스/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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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무대왕암)
거대한 빙하가 내게로 넘어온다
사랑한다, 안 한다
당신과 나
좁힐 수 없는 간극
사랑한다, 안 한다
물결자국이 날카롭게 지나가는 순간
미끄러지며 날개 돋듯 눈물겹게 솟아오르는 찰나,
사랑한다, 안 한다
빗금을 치며 투신하는 눈부신 잔설의 결정들
선긋기를 한다
슬픔을 가르듯
사랑한다, 안 한다
얼음조각에 금이 간다
고영숙
2017년 《제주작가》 신인상, 2020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으로 『나를 낳아주세요』 『꿈을 나눠 먹어요』가 있음.
“사랑한다, 안 한다” 자꾸 생각에 생각을 더하기 전에 이미 의심의 파도가 오래전부터 너울너울 일렁였겠습니다. “사랑한다, 안 한다” 이별의 일은 마침내 한순간이지만 이리저리 삐걱대는 이별의 길목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사이 아마 한참도 전에 여러 번 꺾였겠습니다. “사랑한다, 안 한다” 혼자서 자꾸 묻는 마음은 아까시나무 이파리를 따내면서 애써 한곳으로 끝을 몰아가는 주문 같이 들려도 처음부터 끝이 예고된 것은 아니었겠습니다. “사랑한다, 안 한다” 감추고 있어도 꺾어진 길목 곧게 다시 세우고 싶은 마음, 마저 다 숨겨지지는 않겠습니다. “사랑한다, 안 한다” 긋기도 어렵겠지만 그어진 금 메꾸기는 더 어렵겠습니다. “사랑한다, 안 한다” 어쩌다 어쩌다 어쩔 수 없이 결국 “얼음조각에 금이” 갑니다. 쩍! 갈라집니다. “사랑한다, 안 한다” 어쩌면 오래 남아 더 깊이 쌓일 슬픔으로 치자면 “슬픔을 가르듯” 하는 이 매몰찬 “선긋기”가 차라리 방편으로는 윗길이겠습니다. “사랑한다, 안 한다” 반성 없는 반동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겠습니다. ‘반성한다, 안 한다’ 방심은 금물이겠습니다. 이미 사랑은 떠났습니다. / 남태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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