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세요 주무세요 / 이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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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늦은 저녁을 먹을 때
가끔 아내에게
장모님한테서
심심한 전화가 온다
일은 끝났느냐
별일 없느냐
애들은 잘 있느냐
네, 저녁 먹어요
별일 없어요
잘 지내요
오늘도 비슷한 이야기가
수화기 어깨 너머로
살살 들리는데
늘 아내의 마지막 인사는
엄마 이제 쉬세요
주무세요, 인데
갑자기,
쉬세요 주무세요
저 쉬운 말을
나는 왜 엄마에게
못했을까
밥을 먹다 멈춘다
엄마 이제 쉬세요
주무세요
저 가벼운 인사를
엄마 중환자실에서
엄마 입관할 때
엄마 화장할 때
나는 왜 못했을까
엄마 이제 쉬세요
주무세요
이성필
2018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으로 『한밤의 넌픽션』 『달이 달다』가 있음.
듣기를 멈춘 뒤에도 한참을 남아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읽기를 멈춘 뒤에도 맴맴 계속 맴도는 시가 있습니다. 노래의 힘이고 시의 힘입니다. “엄마 이제 쉬세요/주무세요”. 나는 어땠을까 생각하니 글쎄 했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전화 좀 드리라는 아내의 독촉에도 응 대꾸만 하고 안부 전화조차도 잘 드리지 않았으니 저런 인사할 일이 없었지 싶습니다. 영영 가시기 전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엄마 고맙습니다 하는 인사는 드린 것 같기는 한데, 가신 뒤 생각하니 그마저도 속으로만 했는지 밖으로 말을 꺼냈는지 아리까리합니다. “저 가벼운 인사”라고는 해도 시인도 결코 가볍게만 느끼지는 않았을, 이제는 더 이상 드릴 수 없는 인사를 요즘 들어서야 가끔 합니다. “엄마 이제 쉬세요/주무세요”. 새삼스러운 이 인사, 늦어도 너무 늦었지요. /남태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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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이성필 기자님의 댓글
다시 읽고 제 시에 다시금 울컥해지네요. 이 시를 짓고도 그랬지요.
제가 쓰고 제가 뜨거워지는 시, 잘하는 건지는 알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