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자의 시간/김차영
-김차영 시집 '댓글'에서 퍼옴
본문

면사무소 직원의 입에서 노광자란 이름이 불려지면
칠순 때 처음 가본 제주도 같이 생경하다
용식이 며느리, 철환이 각시, 미자 엄니로
덧칠된 세월에
물설은 내 이름
장성해서 자식들 제 갈 길 가고
남겨진 반쪽마저 시름시름 가버린 뒤
노광자로 불리어진다는 건
오롯이 홀로 서야 한다는 것
이제는 광자의 시간
고생으로 가득한 속주머니 꺼내놓고
경로당의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쓴다
초대합니당
노광자 82세 생일인디
실한 한우 등심으로다 준비도 했쓴께
같이 밥 한 끼 묵자
5월 8일 점심, 노광자 집으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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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느끼는 감성은 읽을 때의 감정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읽느냐는 태도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눈으로 읽을 때와 소리 내어 읽을 때가 다르고, 읽을 때와 필사할 때가 또 다릅니다. 읽을 때 저는 “장성해서 자식들 제 갈 길 가고/남겨진 반쪽마저 시름시름 가버린 뒤”에서야 “용식이 며느리, 철환이 각시, 미자 엄니로/덧칠된 세월에” 말 그대로 낯설고 서먹서먹해진 찾은 “이름”에 집중했었는데, 옮겨 적는 동안 갑자기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불리어진다는 건/오롯이 홀로 서야 한다는” 문장이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니 어디 “물설은” 것이 “이름”만이겠습니까. 남은 세상사 어쩌면 이제부터 다 “물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찾은’에 집중했던 생각이 갑자기 싹 사라졌습니다. 새삼 찾은 “이름”에 기쁨은 없고 서러움과 체념의 마음이 먼저 들어섰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우리의 “노광자” 여사는 재빠르게 쓰잘머리 없는 마음 확 버리고 체제 전환을 하네요. “초대합니당” 그날 집을 나서는 분명 다들 잃었던 “이름”으로 다시 불려서 다시 “이름”을 찾았을 “경로당의 친구들”은 마음도 걸음도 가벼웠겠습니다. 어쩌면 바빴겠습니다./남태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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