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날/서정주
본문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오늘 그리워하자. 청춘들이여 “저기 저기 저, 가을 끝자리/초록이 지쳐 단풍” 든다지 않은가? ‘짙어’도 아니고, ‘깊어’도 아니고 ‘지쳐’ 단풍 든단다. 푸르른 여름이 어느새 가을 된다니, 지치기 전에 당장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해야지 않겠는가. 망설이지 말고, 아끼지 말고, 미루지 말자. 겨울이 가고 봄이 또 오고…… 내가 죽으면, 네가 죽으면 혼자 남아 어찌할 건가? 5연 10행의 짧은 시, 5연이 1연 반복이다.
미당(未堂)을 빼고 한국 현대 시를 말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혹자는 <푸르른 날>을 현대 시 다섯 손가락 안에 꼽기도 한다. 미당을 ‘부족 방언의 연금술사’라 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미당만큼 과오 많은 시인도 드물다. 그래서 未堂인가? 친일 행적에 전두환 군사정권 찬양까지 겹겹이다. 남의 입장까진 대변할 수 없는 요량이니, 내 말만 한다. 정신까지 행적까지 참 시인이었으면 오죽 좋았으랴. 이해까지는 말고 그냥 인정해 버리면 안 될까? 행여 미당을 증오하고 그의 시를 배척하는 것이 자신이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라는 착각은 아닐 터, 그저 웅얼웅얼 혼잣말이다. 나라면 그때 어땠을까?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안성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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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이성필 기자님의 댓글
하지만 행실이 일상이 안 좋은 안 좋았던 시인의 시는 읽지 않는 게 좋겠다. 그 시인의 시를 읽고 감탄하게 되면 어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