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이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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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지중해를 향하고 몸은 전철에 실려 일하러 가고
그러다가 만난 사람 중 혹자는 사랑하고 혹자는 미워하고
귀여운 카톡 이모티콘 아래 깨알 지시가 담긴 문자가 오고
모가 난 지적질에 풀이 죽고 서류뭉치에 눌려 숨이 막히고
마음은 전원생활을 꿈꾸고 몸은 전철에 실려 집으로 가고
집에 오면 씻지도 않고 소파에 드러누워 티브이를 켜고
가시 돋친 알람이 머리채를 흔들어 억지로 눈꺼풀을 열고
맨발로 초원을 달리다가 깨고 싶지 않은 꿈을 억지로 깨고
마음은 태평양을 건너가고 몸은 전철에 실려 일하러 가고
보이지 않는 손이 머리에 칩을 심고 매일 원격조종을 하는
-계간 ≪열린시학≫ 2024년 겨울호
이외현
2012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전국계간지작품상, 리토피아문학상 수상, 현재, 계간 ≪아라쇼츠≫ 부주간, 시집으로 『안심하고 절망하기』, 『바다에 꽃을 심다』가 있음.
장마 지나고 폭우 쏟아져 곳곳에서 물난리로 몸 고생 마음고생들 하는 이들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휴가철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 절호의 기회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저는 여름 휴가철 외에도 필요할 때 수시로 휴가를 신청해서 산에도 가고 여행도 다녀오고는 했지만, 제가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이런 휴가 보내는 이들은 드문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없어서 휴가 신청할 때마다 눈총을 받고는 했습니다.
여름철 휴가 외에 휴가를 신청할 때 사유는 거의 일정했습니다. ‘가사 사정’ ‘개인 볼 일’. 쉬면서도 쉰다고 말을 못 하는 시절 이야기입니다. 월, 년으로 쉴 수 있는 기간을 정해놓고 휴가는 정기적으로 여름철에만 이용하는 것으로 못 박아 놓듯 한 환경이 저는 처음부터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어서 눈치 없는 저는 몸으로 저질렀습니다. 사유는 ‘등산’ ‘여행’ 등으로 당당하게(?) 적었습니다. ‘묻지 마 여행’이라고 적은 적도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 벌써 어느 곳에선가 돌 날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배부른 소리 하네, 뭐 이런. 다들 순응하며 살았습니다. 좋은 게 좋다고 하면서요. 이렇게 살다가 퇴직을 한 우리 세대는 쉴 줄을 모릅니다. ‘쉰다’는 말도 ‘논다’고 하지요. ‘쉼’을 ‘놂’으로 이해하는 세대와 지금 젊은 세대는 아마 모르긴 해도 많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퇴직하고 길지 않은 기간 그나마 쉼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던 이들도 6개월이나 1년을 겨우 넘기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갑니다.
쉴 줄도 쉬는 방법도 모르고 수십 년을 일에만 매여서 살아온 우리 세대는 막상 즐길 시간이 왔을 때도 즐기지 못합니다. 쉼을 즐길 줄은 모르고 되려 ‘일을 즐긴다’고 했지요. 일도 즐기면서 한다면 나쁠 것은 없지만, 즐기면서 하던 그때의 성취감이 퇴직 후에도 이어지던지 저는 의심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다들 다르겠지만 제 경우는 안 이어졌습니다. 신기하게도, 딱! 끊어졌습니다. 몇십 년의 세월이 한달음에 사라지는 느낌이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리하여 “동상이몽”의 세월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요. 어쩌면 더 혹독해졌나요. “지중해를 향하고” “태평양을 건너”며 “맨발로 초원을 달리고” “전원생활을 꿈꾸”던 마음은 정녕 꿈으로만 남겨두면서, “풀이 죽고” “숨이 막히고” “원격조종”까지 당하며 사는 삶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가는 마음은 이번에도 접나요. 쉼은 삶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라는 상투적인 말이 아니더라도 더 지치기 전에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놂이 아닙니다. 쉼입니다. 힘! /남태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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