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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보/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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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졌으니 이제
너를 잊도록 하겠다
 
창밖 꽃밭에서 밤새
목 터지도록 통곡소리 들려와
 
저렇게 꽃들마저
이승의 짐을 싸는 봄밤인데
 
모질게 들러붙던 눈빛, 두근대던 미련
모조리 버리도록 하겠다
 
간밤 꿈보다 쉽게 꽃이 졌으니
그만 짐을 싸고 너에 대한 기억은
이승에 두고 가야겠다
 

 

김동호
1998년 계간 순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별들은 슬픈 눈을 가졌다』, 『기억의 우물』, 『알맞은 어둠과 따뜻한 황홀』이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예전에는 수년을 따라다니면서 마침내 사랑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대단한 성공담처럼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아닙니다.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었든 끝낼 수밖에 없는 결말을 맞았으면 미련은 얼른 툴툴 털어내야 합니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순애보였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순애보였다면 더더구나 사랑했던 그대를 위해 빨리 그만 짐을 싸야 합니다. 집착은 나에게도 에게도 결국에는 낭패를 부릅니다. “꽃이 졌으니 이제/너를 잊도록 하겠다지는 에 기대어 슬며시 마음을 정리하겠다는 오늘의 시적 화자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지혜롭기까지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오늘 그야말로 진정하고 영원한 사랑을 얻었습니다. 때로 사랑은 잊거나 버림으로써 완성되기도 합니다. /남태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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