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잃다/최서연
본문
집게손가락 눈만 보다가 달을 잃었다.
달만 잃은 것이 아니라 밝음도 어둠도 잃었다.
아니, 달과 밝음과 어둠만 잃었을까?
손가락마저 잃었다.
한참 후에 알았다.
-계간 ≪시와 사람≫ 2025 여름
최서연
2014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으로 『물은 맨살로 흐른다』 『흩어지면 더 빛나는 것들』
함께 올리는 사진은 지난겨울에 경북 청도의 하늘아래마을 풍각면 상수월리에서 찍은 밤 풍경입니다. 청도를 처음 간 것은 30대 중반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처음으로 칠흑의 밤을 알았습니다. 바다가 가까이 보이는 동네에서 살아서인가 “달”도 별도 없는 밤일지라도 늘 “어둠”만큼 흐릿한 “밝음”은 있어서 그것이 “어둠”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날 밤 청도에 도착해서야 “달”도 별도 없는 밤은 그야말로 깜깜 어둠인 것 알았습니다. 그래도 별이라도 있어서일까요. 지난겨울의 밤도 처음에는 칠흑의 “어둠” 속에 있는 줄로만 알았더니 시간이 지나니 어렴풋하게라도 밝은 기운이 보여서 어쩌면 이런 기운으로 우리 모두 살아가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이 있지요. 애써 한 일을 남에게 빼앗기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이로운 일을 한 결과가 되었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달”을 보라고 가리키니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도 있습니다. 자칫하면 모두가 빠질 수 있는 허방입니다. “손가락”만 보고 있으면 결국 “달”을 못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손가락마저 잃”게 된다는 시인의 말을 새삼 더 생각하게 하는 때입니다. 애써 한 일이 있기는 있었던가 의심되기는 하지만 “손가락”만 보다가 “한참 후에”야 봐야 할 것을 다 “잃었”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 죽 쒀서 개 주는 일이 이번에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멀스멀 칠흑의 밤을 밀어내고 걷어내면서 일단 빛이 왔습니다./남태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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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 기자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