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부터/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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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김수영(1921-1968)
1945년 시 「묘정의 노래」를 ≪예술부락≫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1959년 시집 『달나라의 장난』 출간.
요즘 일상적으로 듣는 말인 트라우마는 외부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신체적, 정신적 외상을 말합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대형사고와 같은 대규모 참사에서부터 타인에게 당한 폭력이나 강간 등 신체적, 성적, 정서적 학대 모두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이 언제 나타날지 역시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만 몸에 새겨진 상처는 몸이 먼저 말합니다. “다시 내 몸이 아프”지요. 제 경험으로는 그랬습니다. 몸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아파 왔습니다. “먼 곳에서부터/먼 곳으로” “조용한 봄에서부터/조용한 봄으로” “여자에게서부터/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능금꽃으로……” 일상은 다시 원위치하여 돌아가더라도 한 번 새겨진 상처는 늘 “다시” 어김없이 돋아났습니다.
치유가 되었다고 다 아무는 상처는 없겠지만 그래도 치유가 된 상처는 그나마 나았습니다. 참사는 대부분 처리 과정에서의 미숙에서 일어납니다. 사건이나 사고로 끝날 수도 있는 재난이나 재해를 제대로 대비하거나 대처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우습게 이야기하지만 소를 잃었어도 다시 소를 제대로 키우려면 외양간은 고쳐야 합니다. 일상이 ‘참사에서부터 참사로’, ‘재난에서부터 재난으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후에라도 고쳐진 제대로 된 외양간을 가져야 합니다./남태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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