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건달/정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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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이라 빨간 고추 따는데
이랑 사이 바구니가 더디게 움직인다.
밭에 빨려 들어온 땡볕이 고추한증탕을 만들었다.
백년건달 이랑에 있는 듯하더니 감나무 아래 가 있다.
아가, 그래 덥제.
장모님 덮어쓴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감나무 그림자 흔들리더니 풀잎 눕는 사이 벌렁 눕는다.
아가, 그래 한숨 자라.
장모님 언제 보았는지 벌써 고추를 말아쥔다.
잡아챈 고추가 볕에 달아 꿈틀댄다.
사위는 어디 갔나.
지게를 내려놓으시는 장인어른.
감나무 아래 흘끔 보고 애먼 소리 뱉는다.
감나무 아래는 뱀이 많아.
사위 기겁하여 일어선다.
비실비실 밭고랑으로 향한다.
-계간 <다층> 2015년 봄호에서
정무현
2014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풀은 제멋대로야』, 『사이에 새가 들다』.
장모의 사위 사랑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백년손님이고 백년건달이겠는가. 사위가 처가에 들어가 머슴처럼 일하던 시절도 없었던 것은 아니나, 처가의 사위 대접은 손님 이상이었다. 시대가 변하여 고부 갈등은 아예 말을 꺼낼 필요도 없는 지경이고, 장모 사위 간 갈등도 보통이 아니라고 한다. 여성의 사회적 입지가 나아지면서 생긴 현상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변화는 발전일 가능성이 많다. 긍정적으로 지켜는 보지만 그래도 지난날의 따뜻한 가족관계가 그리운 것 또한 어쩔 도리가 없다./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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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이성필 시인님의 댓글
백년손님이라며 귀한 대접도 받지요.
백년건달이 된 사위에게 농인 듯이 던지는 장인의 말씀에 유쾌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