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시 그 서른 셋/박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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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궤도마다장미밭을일궜네
내생애는바람의도포를입었네
가다오다장미꽃가지를치는
오오인연의칼끝에길이놓였네
바람속으로헤매이는내피의물살이여
흩날리는장미꽃잎이여.
-박제천 시선집 『밀짚모자 영화관』에서
박제천
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장자시』 외.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녹원문학상 수상.
사람은 숙명적으로 바람을 가지고 산다. 바람을 가지고 살아야 그나마 의미 없는 인생길을 의미 있게 걸을 수 있다. 특히 세상의 남자들은 바람을 스스로가 존재하는 징후로 삼는 경우가 많다. 세상 사는 일이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팍팍할 노릇이다. 바람을 따라 바람을 일으키며 바람처럼 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핏속의 바람이야 어떠랴. 바람(風)은 본래 독특한 그만의 냄새라는 의미가 강한 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무슨무슨 풍(風)이라는 말에 익숙하다. 그러니까 바람도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있어야 바람답게 될 것이고 바람으로서의 품위도 생길 것이고 대접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바람은 언제나 장미꽃밭으로 분다. 가능한 한 부드럽게, 가능한 한 거칠게, 가능한 한 최대한의 야성으로 장미꽃밭을 향해 불어간다. 이 세상에 장미향이 없었더라면 바람은 존재나 했을까. 아름답게 피는 장미꽃이 없었더라면 바람은 의미나 있었을까.
바람은 장미향을 한껏 들이마시며 자신의 존재감을 키운다. 바람을 키우지 못하면 병이 생긴다. 바람을 건강한 생명력으로 에너지화할 때 우리는 한 생애를 아름답게 살 수가 있다. 문 닫아걸고 창문 닫고 커튼까지 내리게 되면 바람은 탈출구가 없어 자진한다.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이다 봄에 부는 바람은 춘풍(春風)이고 가장 건강한 바람이다. 대문을 활짝 열고 모든 창문 열어젖히고 새봄에는 한여름의 장미꽃밭을 향해 새로운 핏속의 바람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 장미꽃은 해마다 핀다. 필 수밖에 없다. 장미에게는 바람을 불러주어야 하는 숙명적인 과제가 부여되어 있으므로. 하루도 피지 않으면 장미가 아니다. 그래서 바람은 끊임없이 분다. 온몸의 피를 뜨겁게 달구며./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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