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문효치
본문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허공에 태어나
수많은 촉수를 뻗어 휘젓는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될
온몸을 태워서
찬란한 한 점의 섬광이 될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빛깔이 없어 보이지 않고
모형이 없어 만져지지 않아
서럽게 떠도는 사랑이여,
무엇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선명한 모형을 빚어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되어라.
―문효치 시집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에서
문효치
1966년 <서울신문>,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왕인의 수염』 외. 계간 미네르바 주간.
누구나 가슴속 깊이 품고 사는 게 있다. 함부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비밀스럽게 감추고 사는 게 있다. 혹시라도 때가 묻을까, 상처라도 받지 않을까, 하여 영영 꺼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순수하고 깨끗하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단히 우리로 하여금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뜨거운 열정을 갖고 불처럼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바로 사랑이다. 살아있는 존재라면 풀이나 꽃이나 벌레나 짐승이나 가릴 것 없이 사랑을 갖고 있다. 그것이 그들의 종족이 존재하는 이유이므로.
그런데 인간의 경우에는 그들과는 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성적이다. 조심성이 많다. 때로는 소극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넘치는 사랑과 열정을 세상에 흩뿌린다. 우주에 쏘아 올려 별을 만든다. 온 세상과 온 우주가 그의 사랑 노래로 채워진다. 날아간 사랑은 기필코 불이 되어야할 숙명을 갖고 있다. 그래야 그 사랑은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이다.
사랑의 생명과 존재성은 타오르는 불에 있으므로. 사랑은 실체가 없는 허구의 존재이다. 그러나 이 허구적 존재가 실체를 지배한다. 보이지 않는 허구적 존재가 엄연히 존재하는 실체를 모조리 태워버리기도 한다.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서이다. 사랑은 영원을 꿈꾸는 가장 강력한 존재이다. 신을 닮아가고자 하는 가장 무서운 도전자이다./장종권(시인)
Copyright © 한국문화예술신문'통' 기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