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동구/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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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육자배기는 여섯 박 전라도 소리다. 슬픈 심사를 한탄하거나 인생의 회한을 토로하는 내용이 많다. 마흔, 인생도 알고 사랑도 알법한 나이 아닌가. 거기다 미색까지……, 부친의 장례를 마친 허허로운 미당(未堂)이 주모와 취했다던가. 주거니 받거니, 그날따라 손님도 없어 은근한 눈빛 주고받았던가. 모처럼 말이 통하는 사내를 만난 주모는 술기운에 육자배기를 뽑았다던가. 뒤통수에 대고 “동백꽃이 피거든 또 오시오 잉~” 했다던가. ‘내일 오라고 하지’, ‘가지 말라고 하지’ 미당은 은근 화가 났다던가. 떠도는 소문처럼. 십여 년 후 선운사 동구를 다시 찾은 미당, 주모가 전쟁통 빨치산에 희생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던가.
동백은 세 번 핀다는데. 나무에 붉고, 땅 위에 붉고, 마음에 붉다는데. 이른 탓에 꽃은 못 보고 사라져버린 미당의 시비(詩碑) 빈자리만 보았다. 시시비비 가릴 것 없이, 시조차 미워할 수는 없었다. 아직 꽃 안 켠 선운사가 어둑했다./안성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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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2
이성필 시인님의 댓글
올려주셔서 감회로 잘 보었습니다.
정치산 시인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