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섬/은정
본문
동천의 한가운데 낯선 섬이 생긴다.
어느새 푸른 이끼와 풀들이 섬을 감고 섬을 이룬다.
주민은 왜가리 한 마리
그마저도 좁아서 맨날 다리 하나로 섬을 지킨다.
누추한 잿빛 두루마기 바람 깃 여미며 미동이 없다.
학보다도 더 흰 새 옷 한 벌 지어 입히면 학이 될까.
먼 산 바라보는 근엄한 눈이 가끔씩 물속에 번뜩인다.
아버지 흰 두루마기 동구 밖 어두운 길 학처럼 오시네.
어린 딸이 뜀박질로 마중을 간다.
은정
2017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으로 『동천의 낯선 섬』이 있음.
“서른여덟에 혼자되어 일곱 남매 품어 안고” 어머니 “세월을 움켜쥐”(「어머니의 은장도」)고 사셨다고 하니, 딸인 시인은 철모르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었겠습니다. 하니 “흰 두루마기” 입고 “동구 밖 어두운 길 학처럼 오시”는 “아버지”를 “뜀박질로 마중을 가”는 “어린 딸”에 대한 서술은 어쩌면 시인의 어린 시절을 늘 감싸고 있었던 꿈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형제자매가 여럿 있었더라도 어린 날부터 아버지 없이 마주한 시인의 세상은 오래 “동천의 한가운데” “생긴” “섬”처럼 낯설었겠습니다. 두 다리로 굳건하게 서서도 살아가기 벅찬 세상에 시인은 “맨날 다리 하나로 섬을 지키”는 “왜가리”마냥 서러웠겠습니다. “학보다도 더 흰 새 옷 한 벌 지어 입”어도 “학”이 되지 못하는 신세에 “학처럼 오시”는 “아버지”를 꿈꾸었겠습니다.
늦은 위로와 응원이지만, 이 꿈, 꿈에서만이라도 한 번쯤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 남태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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