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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 롱 메리안느/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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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바닷가 마을 지하 음악실에서 듣던 코헨의 노래

그녀는 이 노래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지

아침, 저녁 한 시간씩만 전기가 들어오는 그리스 외딴 섬 아파트에서

만난 메리안느와 사랑에 빠져 10년을 살았다던 코헨이

연인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 쏘 로옹 메리아아안느

지중해의 젊음과 아름다움과 방심과 그 모든 것의 끝이었던,

비가 오던 날도 듣고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건네 주며 들었지

2만 편의 시를 쓴 중저음의 음유시인이 읊조리듯 부르는 노래

메리안느의 장례식에서 번지던 그 노래

시인도 가고 그녀도 가고 혼자 남은 내가 듣는 노래

비도 오지 않고 수요일도 아닌데

페리를 타고 아테네에서 두 시간이면 간다는 히드라 섬에서 바람이 분다

쓸쓸한 파도가 쏘 롱 메리안 쏘 롱 메리아아안느

물밀 듯 마음을 훑고 뭉쳤다가 물안개처럼 흩어진다

쏘 롱 메리안 쏘 롱 메리아아안느

홀연히 사라진 사람들은 서로들 만났을까

곁에 있어도 알 수 없는 메리안느

찬란한 슬픔은 물을 먹어 힘이 쎄지는가

쏘 로옹, 쏘 로옹 메리안느 어디쯤 갔니

 

 

자하

2013년  《다층으로 등단.

 

 

노래에는 장소성이 뒤따른다. 더스트 인 더 윈드를 들으면 물의 도시 광장 앞 카페가 생각나고 아이 네버 윌 메리를 들으면 철길 너머 하얀 날개를 펼치던 집이 떠오르고 더 세디스트 씽을 들으면 비포장 미루나무 길을 걷고 있고 소롱 메리엔은 동쪽 바닷가 마을 지하 음악실로 공간을 이동한다. 그 각각의 장소에는 은은하게 살갗을 건드리던 선율이 있다. 그 먼 장소를 노래는 지금의 여기 뭉클한 가슴으로 데려온다. 

 

유리상자 안에서 음악을 틀던 때가 있었다. 음악실 한구석에 앉아 가수가 빠진 제비꽃을 적어 넣던 소녀가 있었다. 조영남의 제비를 잘못 적었나, 틀어주었다. 며칠 후 또 제비꽃이 들어왔다. 그렇게 얼마 후 소녀는 보이지 않고 나는 조동진의 제비꽃을 틀었다. 노래는 음악실 빈 한구석을 지나 나지막이 흘렀다. 쏘 롱 메리안 쏘 롱 메리아아안느. 홀연히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쯤 갔니. 쏘 로옹, 쏘 로옹 메리안느. /이성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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