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편지/이성필
본문
소백산에서 편지를 쓴다
천동계곡 길에서 쓰고
주목군락지 길에서 쓰고
비로봉 갈림길에서 쓰고
비로봉에서 쓴다
소백산 하늘이 얼마나 푸른지
지금 무슨 양떼들이 지나가는지
먼 능선에 햇살이 몇 겹으로 쏟아져 내리는지
물봉선에게 물어 모데기풀에게 쓰고
동자꽃에 쓰고
층층나무에게 물어 함박꽃나무에게 쓰고
철쭉에게도 쓴다
그늘 한 점 없는 가을 소백산
길에게 물어 구절초에게 쓴다
어쩌다가 땡볕 길에서 편지를 쓴다
그러다가 축복처럼
구름이 잠시 해를 가린
순간의 밑에서 땅바닥에 쓴다
빛별 자고 있을 하늘에게 쓴다
목마름에 간간한 바람을 맞으며
단 허기에 찬물을 마시며 편지를 쓴다
비로봉에서 제1연화봉 연화봉
첨성대 내리고 오르고 내리며
미리 정한 곳 이를 때까지
편지는 걸어서 편지를 쓴다
지금 소백산은 모두 깊숙한 여백
바라보면 마음이 아득히 떨어져서
문장이 되고
내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쳐다보면 글이 되어 편지가 된다
제2연화봉대피소 맛소금을 뿌린
밤하늘 아래 홀로 누워서
잠길을 뒤척이며 쓴다
깜박 썼다 깜빡 잊었다 하면서 쓴다
어떻게 가 닿을지 알 수도 없는
우표도 없는 편지를
별에게도 어둠에게도 덜컹거리는
밤바람에게도 쓴다
아침이 올 때까지
먼 겨울에서 밤눈처럼 쌓이는
이성필
2018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한밤의 넌픽션』. 전국계간지작품상, 아라작품상 수상.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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