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남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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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산비탈 아래
허물을 벗은 새끼 뱀이 떨어졌다.
멈칫거리는 사이
비탈 위 풀숲으로 던져졌다.
이제 허물을 벗은 뱀은
뱀의 길을 갈 것이다.
허물을 벗지 않은 뱀은
허물이다.
“허물을 벗을 수 없는 뱀은 파멸한다.”(니체《서광》 573절,고병권 『언더그라운드 니체』) ‘허물을 벗을 수 없는 뱀’은 ‘허물을 벗지 않은 뱀’입니다만, ‘허물을 벗지 않은 뱀’이 곧 ‘허물을 벗을 수 없는 뱀’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서의 ‘어쩔 수가 없다’는 어쩌면 ‘어쩔 수가 있다’의 역설일 수도 있습니다. 후지노 토모아키의 다큐멘터리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시비 이전에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어쩔 수가 없다’ 이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허물을 벗을 수 없었든, 벗지 않았든 결국 결과는 동일합니다. 파멸입니다. 남는 건 허물뿐입니다. 의지가 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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