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 민주주의는 건강한가/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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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위축되어도 민주주의라고 한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천하에 죽일 놈이 되어도 민주주의라고 한다.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몰아붙여도 민주주의라고 한다. 불순분자로 낙인찍어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엉뚱한 희생양을 만들어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일이라고 한다.
철학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지성은 침묵한다. 시인들마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듯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생각이 달라 가정이 분열되고, 남편과 아내가 정치적 견해 때문에 등을 돌린다. 친구끼리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술맛을 잃고, 직장 동료끼리 의견이 달라 말조심부터 해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 민주주의는 아직 어린 새싹이므로 잘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은 옳다. 그러나 그 새싹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생각을 억압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일까지 정당화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잠시 유보하자는 주장이야말로 얼마나 위험한 역설인가.
편을 가르면 얻는 것이 많단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사회이므로 결국 숫자 싸움이 아니냐고 한다. 숫자가 많으면 이기고, 이기면 옳은 것이 된다고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소수로 만들어 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여긴다.
세상에 널려 있는 돌들의 정체가 불분명하니 옥석부터 가려야 한단다. 흑이든 백이든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게 하고, 흑돌들을 모조리 치워 버리면 백돌로 가득한 순수한 낙원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반대하는 사람도 없고 불평하는 사람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라니, 얼마나 기막힌 민주주의의 낙원인가.
민주주의는 속전속결이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의견을 들어보아야 말만 많아지고 시간만 허비한단다. 듣기 싫은 소리는 스트레스만 쌓이게 하니 귀를 닫자고 한다. 문을 닫자고 한다. 귀를 닫아도 민주주의는 자라고, 문을 닫아도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미래를 확신하는 사람들도 있다. 준비만 잘하면 밝은 내일은 반드시 찾아오므로 오늘의 고통쯤은 참아야 한다고 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일 뿐이란다. 마치 인간이 신처럼 내일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듯이 말한다.
말 많은 소수들이여, 분열을 일삼는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그대들을 한 배에 태우고 싶지만 배는 작고 파도는 거칠다. 그러니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태우고 가겠다. 우리야말로 민주주의의 수호자이므로.
이런 생각들이 정말 민주주의를 위한 것일까.
선거에서 이겼다고 국민의 뜻을 독점할 수는 없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도 여전히 국민이다. 다수결은 공동체의 결정을 내리는 방법이지 진실을 판별하는 기준이 아니다. 백 사람이 찬성하고 열 사람이 반대한다고 해서 백 사람의 판단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다수가 소수의 권리를 마음대로 짓밟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이름을 빌린 지배일 뿐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는 쉽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끝까지 듣고 그 가운데 옳은 부분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그 어려운 일을 피하면서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인간은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정치 지도자도 틀릴 수 있고 전문가도 틀릴 수 있으며 다수의 국민도 잘못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는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이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만든다.
민주주의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사는 세상을 만드는 제도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제도이다. 상대방을 이기는 일보다 상대방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
함께 탔던 배에서 내몰린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함께 갈 자격을 잃는다면, 그 배는 과연 누구의 배인가.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고 말하고, 민주주의를 지켰다고 말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정작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가장 어려운 일은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자유를 자신의 자유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민주주의여, 민주주의여.
부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죽이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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