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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마이한반도


함께 돌을 드는 손이 아름다운 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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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라는 말이 있다. 전쟁터에서 적이 두려워 오십 보 달아난 사람이 백 보 달아난 사람을 비웃을 수 있느냐고 맹자가 묻자, 양혜왕은 오십 보든 백 보든 달아난 것은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비록 달아난 거리는 달라도 적이 두려워 도망쳤다는 본질은 같다는 뜻이다. 맹자는 이를 통해 제후들이 정치를 조금 잘한다고 자랑하더라도 왕도(王道)라는 근본에서 벗어났다면 서로 잘났다고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의와 진실을 지키는 일에서 과연 얼마나 달아나고 있을까. 누구도 부끄러울 것 없이 철옹성처럼 지키고 있다면 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모든 잘못이 같을 수는 없다. 오십 보와 백 보는 비슷하다고 해도 오십 보와 천 보는 분명 다르다. 작은 실수와 중대한 범죄를 같은 저울에 올려놓을 수는 없다. 이른바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잘못의 크기에 따라 책임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잘못의 크기가 다르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무자비하게 돌을 던질 자격까지 주는 것은 아니다. 죄를 판단하는 일과 사람을 짓밟는 일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간음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던 시대가 있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누구도 선뜻 돌을 던지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죄인을 용서하라는 가르침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심판하려는 사람 역시 자신의 허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물론 그 말을 한 사람이 예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돌을 내려놓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말했느냐보다 그 말이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을 심판할 만큼 스스로에게 엄격한가.

 

오늘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오히려 반대의 풍경이 펼쳐진다. 누군가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고 외쳐도 돌은 사방에서 날아들 태세다. 돌을 던지라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먼저 돌을 집어 드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이 정의로운 행동인 것처럼 여겨지고, 비난에 동참하지 않으면 오히려 잘못을 감싸는 사람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특히 연예인이나 공무원, 정치인처럼 대중의 시선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잘못이 드러나는 순간 수많은 돌멩이가 날아든다. 사실관계가 충분히 밝혀지기도 전에 판결이 내려지고, 해명은 변명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때로는 당사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야 겨우 돌팔매질이 멈춘다.

 

공인의 잘못은 일반인보다 사회적 파급효과가 클 수 있다. 그만큼 높은 책임과 윤리의식이 요구되는 것도 당연하다. 잘못을 비판하고 책임을 묻는 일은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정당한 비판과 무자비한 공격은 다르다. 법에 따른 처벌과 사회적 책임의 요구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끝없는 인신공격이나 가족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면 또 다른 폭력이 된다. 법적인 처벌과 사회적 비판을 무조건 이중처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책임의 범위를 넘어선 집단적 응징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잘못의 유무와 책임의 정도는 사실과 증거, 법과 절차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여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부당함을 바로잡는 중요한 힘이지만, 그 힘이 법과 절차를 대신하려 한다면 위험해진다. 다수의 분노가 언제나 정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집단적 비난이 습관이 되는 사회다. 누군가 돌을 던지면 이유도 묻지 않고 함께 돌을 집어 든다. 돌을 던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돌을 드는 손이 많아진다고 해서 그 손들이 모두 정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잘못한 사람의 체면이 아니라 사회의 정의와 법치주의이다. 동시에 잘못한 사람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정당한 절차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 원칙이 무너지면 오늘은 남에게 날아간 돌이 내일은 우리 자신에게 날아올 수도 있다.

 

정의는 분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진실을 확인하는 신중함과 책임을 묻는 엄정함, 그리고 사람을 함부로 짓밟지 않는 절제가 함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에 침묵하자는 말이 아니다. 잘못은 잘못대로 밝히고 책임은 책임대로 물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마저 정의의 자리에서 달아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십 보를 달아난 사람이 백 보를 달아난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세상이라면, 과연 누가 마지막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함께 돌을 드는 손은 아름다운 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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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남태식 시인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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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돌을 드는 손은 아름다운 손이 아니다." 성찰이 없다면 다 사이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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